[이우근 칼럼] 아웃사이더, 민주사회의 평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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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칼럼] 아웃사이더, 민주사회의 평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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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우 근 

변호사 / 숙명여대 석좌교수


바닷물의 염분농도는 평균 3.5% 정도라고 한다. 그 미미한 소금기가 드넓은 바다를 두루 정화(淨化)하면서 무수한 해양생물들을 살아 숨 쉬게 한다. 소금기가 너무 많으면 이스라엘의 사해처럼 생명이 살 수 없는 독한 물이 된다. 고통의 파도가 거칠게 일렁이는 바다와도 같은 인생의 고해(苦海)에서 숨을 쉬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미미하나마 정화의 촉매제가 삶 속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 정화제는 괴로운 세상살이를 이어가게 하는 희망일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다. 


그런데 희망보다 사랑보다 더 소중한 정화의 촉매가 있다. 탐욕과 거짓의 쓰레기더미를 뚫고 나오는 자정(自淨)의 목소리다. 그 정화의 외침은 사회의 권력층이나 지배계층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진실의 목소리로 시대와 사회를 정화하는 것은 소외된 양심의 외침, 대중의 오해와 권력의 박해 속에서 목숨 걸고 진실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이름 없는 소수의 무리였다. 


“나는 내 삶을 커피 스푼으로 측정해 왔다.” 엘리엇이 쓴 시의 한 구절이다. 작고 가벼운 커피 스푼 따위로 인생을 되질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그처럼 덧없이 낭비하며 살아간다. 하이데거가 비(非)본래적 실존이라고 부른 ‘잡담‧호기심‧애매함’으로 가득 찬 무의미한 일상이다. 비본래적 실존의 덧없는 일상을 벗어나 본래적 실존의 진실을 찾는 소수의 이방인을 작가 콜린 윌슨은 아웃사이더(Outsider)라고 불렀다. 


아웃사이더는 ‘깨어나서 혼돈을 본 인간’이자 ‘병들어 있는 세상에서 자기가 병자라는 것을 깨닫고 고민하는 소수의 사람’이다. ‘일상의 세계를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아웃사이더는 대중사회의 인사이더(Insider)들로부터 소외될 수밖에 없지만, 역사는 그들 아웃사이더에 의해 정화되고 변혁돼왔다. 


가톨릭 수도사 브루노가 화형대의 장작더미 위에서도 지동설의 믿음을 버리지 않자 예수회 사제들은 그의 혀와 입천장을 쇠꼬챙이로 꿰뚫고 발가벗긴 채 불태워 죽였다. 혹독한 핍박과 고난을 기꺼이 무릅쓴 저 진실의 순교자들을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라고 이름 지었다. 종교탄압을 피해 조국 프랑스를 탈출한 뒤 스위스‧영국 등지에서 정밀공업과 산업혁명의 기틀을 다진 위그노, 국교 신봉을 강요하는 국왕의 칙령을 거부하고 북미대륙으로 건너가 부모형제의 주검 곁에서 땅을 갈고 씨를 뿌린 청교도들도 그 창조적 소수였다. 


다수결을 원칙으로 하는 양적 민주주의(Quantitative democracy)는 다수의 충동적 감성, 대중의 집단적 광기에 휘둘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감성과 광기를 절제하는 균형추로서의 질적 민주주의(Qualitative democracy)가 필요한 이유다. 민주주의라는 배의 평형수 역할을 하는 균형추가 사회의 아웃사이더인 창조적 소수다. 


다수 유권자의 지지로 당선된 대통령이 평형수 같은 소수의 쓰디쓴 충언을 내치고 밀실과 측근의 나긋나긋한 속삭임에 귀 기울인다면, 국회 다수의석을 차지한 정당이 민생 돌보기를 제치고 특정인 한 사람 돌보기에 온갖 입법권력을 휘두른다면, 그것은 양적 민주주의의 폐해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반민주적 후퇴요 질적 퇴보일 따름이다. 


정치집단과 대중사회의 거짓‧위선을 꾸짖는 창조적 소수는 ‘세상에 이끌려가는’ 수동적 다수가 아니라 ‘세상을 이끌어가는’ 능동적 소수의 이방인들이다. 법과 상식을 거추장스럽게 여기며 온갖 궤변으로 대중을 선동하는 정치꾼들, 진실의 이름을 빌려 현실의 안일을 도모하는 사이비 지식인들, 대중의 표피적 인기에 목을 맨 권력욕‧명예욕‧물욕의 노예들은 민주주의의 균형추인 아웃사이더를 소외된 고난의 자리로 내몰기 일쑤다. 


그렇지만 그 소외된 자리야말로 미래의 꿈이 튼실한 열매로 익어가는 생명의 터전이다. 3.5%의 소금기 덕분에 해양생물들이 숨 쉬며 살아갈 수 있듯이, 저들 아웃사이더 덕분에 인류 역사는 정화되고 전진해간다. 오늘의 현실에서 그 창조적 소수는 누구인가? 민주사회의 평형수인 아웃사이더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몹시도 아쉬운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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