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권의 세상만사] 정년연장의 마법(魔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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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권의 세상만사] 정년연장의 마법(魔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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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중소제조업 경영인들은 속이 타들어 간다. 인력난 때문이다. 경영의 3요소인 사람, 돈, 물자 중에 가장 어려운 게 인력관리다. 젊은 신입사원 구하기는 꿈도 꾸지 못한 지 오래됐다. 그 젊은이들 자리를 메우던 외국인 근로자는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하늘의 별 따기처럼이나 구하기 어렵다. 그나마 있던 외국인 근로자마저 비자가 만료돼 본국으로 돌아가고 난 후 다시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9년 외국인 근로자 입국이 4만9000명에서 올 상반기엔 200명이 채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이달부터 주 52시간제가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되자 임금이 줄어든 근로자들이 줄줄이 퇴사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중소제조업 종사자는 2019년 코로나 이전 359만6000명에서 지난해 말 354만6000명으로 5만 명 이상 줄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 집 건너 휴업과 폐업이 속출한다. 그러나 버틴다고 해도 중소제조업의 정상적인 평균 공장 가동률 80%를 채우는 기업은 없다. 일감은 늘어나고는 있지만 실제로 2019년 코로나 이전 연간 평균 가동률 73.3%는 엄두도 못 낸다. ‘든 사람은 몰라도 난 사람은 안다’라는 말처럼 직원들이 떠난 휑한 공정라인을 바라보며 기업주는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다. ‘중소기업 애로청취’한다며 하루가 멀다 하게 찾아오던 정부 사람들은 이럴 때는 코빼기도 안 내민다.


부평에서 특수강 가공업을 하는 M철강 김 대표는 요즘 한숨 돌리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 입국이 어려워지고 중소기업중앙회가 요구한 주 52시간제 시행 연기를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아 사정이 어려워졌음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묘안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달 과감하게 정년을 없앴다. 전 직원이 모인 자리에서 회사 상황을 소상하게 설명한 뒤 정년 폐지를 전격 발표하고 동의를 얻었다.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올해 정년이 되는 6명과 지난해 정년 퇴직자 중에 희망자 6명을 재입사토록 해 인력 충원을 마쳤다. “우리 회사에 나이 차별은 없다. 건강하다면 일하자. 누구나 장점이 있다. 그걸 잘 살릴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드는 일이 내가 할 일이다”라고 말할 때는 박수도 받았다. 나이와 숙련도를 고려해 이들에게 ‘명장’과 ‘책임’ 직함을 부여하고 5개 공정 팀에 각각 배치했다. 이들에게 결재권이 있는 팀장을 보좌하되 매번 의견을 내도록 제도화했다. 특히 분기에 한 건 이상 아이디어를 제안하도록 의무화했다. 신입사원의 교육과 훈련도 이들에게 맡겼다. 선친에게 기업을 물려받을 때부터 근무한 숙련공들이라 그들은 모두 이를 수용했다.


김 대표는 “무슨 일을 얼마나 어떻게 해야 할지 누구보다 잘 압니다. 일일이 지시하지 않아도 그들은 알아서 열심히 한다”고 평가했다. “공정 특성상 기술력 있는 엔지니어가 경험이 부족한 직원을 가르치면서 함께 신제품을 개발해 나가는 게 회사로서는 큰 이익입니다”란 말도 덧붙였다. 


이래서 공장은 돌아가지만, 아직 할 일은 많다. 다만 성과나 직무급 중심으로 임금 체계를 혁신하는 등 젊은 직원의 손해나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개선하는 일은 서두르지 않는다. 둘러보니 정년을 없앤 데가 많아 선배 기업에서 배우면 되기 때문이다. 제조업계에는 에스틸, 캐프그룹, 한호산업, 한국정밀, 베스텍, 대신제과 등이, IT업계는 유진테크, 마이다스아이티, 제약은 한국웨일즈제약 등이 이미 정년 없는 회사로 정평이 나 있다.


건강해 일할 수 있는 데도 그만두라고 강제하는 일은 잘못이다. 정년제도를 연령차별로 보아 법으로 금지하는 곳이 많다. 미국은 1986년에, 영국은 최근 정년제도를 폐지해 연령 제한을 없앴다. 일본도 정년연령을 연장해 고령자의 일할 권리를 보호해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국은 현행 ‘고령자고용촉진법’에 ‘정년을 60세 이상이 되도록 노력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권고 조항이어서 강제성이 없다. 


인구 전문가들은 올해부터 2031년까지 약 10년간 주요 생산인구(25∼59세)가 약 315만 명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생산인구의 급격한 감소가 가져올 인력난을 해결하자면 정년연장 외에 다른 수단은 아직 없다. 정년 문제는 피할 수 없는 국가 현안이어서 사회적 합의를 서둘러야 한다. 중소기업을 도와주려면 이런 일을 나서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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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권 칼럼니스트: 국민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숭실대학원에서 벤처중소기업학으로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우리은행 홍보실장, 예쓰저축은행 대표를 지냈다. 현재,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사)미래경제교육네트워크 이사, 학교법인 영신학원 감사, 멋있는삶연구소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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