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제주올레와 큐슈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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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제주올레와 큐슈올레

웹마스터


김희식

(주)건축사무소 광장 상무


오래 전, 태국 최남단 도시 나라티왓이라는 곳에 98Km의 1차선 고속도로가 건설됐습니다. 이름하여

빠따니~나라티왓 고속도로입니다. 이 도로에는 다른 이름이 하나 더 있습니다. ‘따온 까올리’, 즉 ‘한국 도로’ 라는 뜻의 이름입니다. 현대건설이 1965년 최초로 해외수주로 완공한 고속도로였죠. 2022년, 미 텍사스주 테일러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부지 인근 도로는 ‘Samsung Hwy’ 로 명명되기도 했죠. 산업 동맥의 역할을 하는 길 이름들 입니다.


사람이 지나가고 만나고 걷는 길 이름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길이 있습니다. 제주올레, 2007년 제주 토박이 서명숙씨가 걷기 시작한 제주도 내 둘레길 이름이지요. 총 26개 코스로 코스당 15~20Km거리 입니다. 뒤이어 일본도 이를 벤치마킹하여 ‘큐슈올레’ 를 개설했습니다. 2012년 사가현의 다케오 제1코스를 필두로 총 15개 코스로 되어있습니다.(2018년에는 도호쿠지역에 세 번째 미야기올레길도 개설).


산천(山川)을 하나의 독법(讀法)으로 설파한 지리학자의 글입니다. “요즘은 등산할 때 예전처럼 정상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한 산행패턴은 좀 줄어 들었다. 그 대신 둘레길처럼 여유롭게 산길걷기가 유행이다. 산을 생각하고 대하는 태도도 많이 바뀌었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유산(遊山)전통을 닮았다. 우리 선조들은 금강산, 지리산, 청량산, 삼각산 등 명산을 좋아했다. 공자가 말한 것처럼 어진 이(仁者)는 산을 즐거이 하기(樂山) 때문이다. 퇴계 이 황에게 산은 책이었다. 산을 좋아하는 그가 산에 가는 것은 책을 읽는 것과 마찬 가지였다. 옛 선현들은 고전의 독법에 많은 글을 남겼다. 산천의 독법도 적잖이 있었다. 조선후기만 하더라도 김정호는 ‘대동여지도’ 로 우리 산천의 체계를 보여줬고, 신경준(1712~1781)은 산수고(山水考)로 우리 산천의 계보와 역사를 일목연하게 제시했다.”(최원석, 산천독법, 2015). 


몇 해 전부터 틈틈히 걸었던 제주올레를 거쳐 지난 주말 연휴, 큐슈올레 15개 코스의 한 곳인 벳부, 유후인코스를 걸었습니다. 코로나 이전에 걸었던 다케오, 아소산 자락의 오쿠분고, 이브스키 가이몬 코스에 이어 네 번째 큐슈올레 코스인 셈입니다. 벳부는 해안에 자리잡은 뱃부만을 따라 도시와 바다가 맞닿아 있습니다. 24시간 사방에서 분출되는 온천수 수증기가 일품인 뱃부 시내를 지나면 구주 아소산 고개 너머

유후다케 산과 쓰루미다케 산이 병풍처럼 벳부 도시를 감싸고 있습니다. 


도착 후, 첫 날은 시다카 호수를 거쳐 유후다케 산(1584M) 등산로 입구에 도달했습니다. 제주도의 오름처럼 산자락 아래, 드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습니다. 거대한 삼나무 군락지를 지나 세 시간 가량 걷다보니 두 개의 유후다케산 쌍봉우리 중간 능선이 나타납니다. 발 아래 펼쳐진 온천마을 유후인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산길로 들어서면서 사슴 비슷한 야생동물들도 만났습니다. 이튿날 아침,벳부 온천장 숙소에서 출발,쓰루미다케(鶴見岳 1375M)방향으로 향했습니다. 벳부 로프웨이 정류장에서 하차, 산길로 접어듭니다. 벚꽃엔딩이 시작된 산과 들이 푸른 삼나무와 어울려 파스텔톤의 신록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산천독법’내용 중 일부를 이어봅니다. “몇 해 전, 중국, 일본 산악문화 연구자들과 함께 토론할 기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중·일에도 한국의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만든 산맥 족보 개념도와 같은 산경표 형식의 책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뜻밖에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일본의 산을 보면 산은 산이고 들은 들이다.그런데 우리는 비산비야(非山非野)라고 하지 않던가? 산도 아니고 들도 아닌 산, 그것이 한국의 산이다. 산과 산이 이어져 있고 그 사이에 사람이 깃들어 산다. 인걸은 지령(地靈)이라는 옛말이 있다. 우리는 인물이 땅의 정기를 타고나는 것으로 생각했다. 논두렁 정기라도 받아야 면장을 한다는 속담도 있다. 이처럼 산과 우리는 산줄기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다.놀 라운 것은 선조들이 한반도의 산줄기 족보까지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뱃부올레길 코스는 제주올레와는 좀 다르게 산과 들판이 구분되어 있고 취락지구와는 단절되어있는 듯한 차이점도 눈에 띕니다. ‘길은 사람이고, 사람이 길을 내고 사람이 길을 걷는다. 길은 인연이다. 사람은 길을 걸어 사람을 만난다. 길이 길을 낳았고 그 길이 또 다른 길을 낳았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주올레, 큐슈올레, 아니 세상 어느 길이든 가릴 것 없이 오롯이 내 발로 내 몸을 움직이는 ‘걷기’ 야 말로 수퍼 AI인공지능 시대, 최고의 아날로그 운동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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