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칼럼] 포도주 처럼 부어버린 인생


홈 > 로컬뉴스 > 로컬뉴스
로컬뉴스

[크리스천 칼럼] 포도주 처럼 부어버린 인생

웹마스터


한남옥 권사 

시인·수필가·나성영락교회 권사



자정이 넘었을텐데 잠귀 밝은 남편 옆에서 조심스레 이리저리 몸만 뒤척이고 있다. 벽시계의 초침은 이 밤 더욱 힘차게 발을 구르며 어딘 가를 가고 있다. 엄마 계신 천국에도 시계가 있을까? 엄마! 부르면 딸~ 하며 안아줄 내 엄마가 지금 이 땅에 안 계심이 실감 나지 않는다. 


당신이 아픔 없는 천국에 계심 안다.  모두가 말하는 다시 만날 소망 있음도 안다. 그런데 그런 말들이 이별의 아픔에 큰 위로가 되지 못함을 이제야 알아간다. 그리움은 시계가 달려가는 거리와 비례해 함께 커간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다.



엄마와의 이별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엄마와 19살 차이, 함께 늙어간다고 생각했는데, 노년에는 당신의 친구 같은 딸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건강하셨는데, 생각해 보니 85세가 되시고는 이따금 씩 힘들어하셨다. 엄마 가신 빈집을 치우며 숨겨 놓고 잡수시던 환으로 된 한약 담긴 병들을 보며 마음이 찢어졌다. 


엄마는 이별을 준비하고 계셨다. 찬송가 앞장에 당신 좋아하는 찬송을 꼭꼭 적어 놓으셨다. 말씀 암송 카드 묶음도 나왔다. 성경 말씀을 외우려 하셨나 보다. 하나님과 자손들, 이웃을 더욱 사랑하려 애쓰신 삶의 흔적들이 주님 만날 준비였던 것 같다. 당신은 무식하여 하나님 나라 일 어떻게 할지 모르지만 딸들은 하나님 일꾼들이어서 감사하다고 하셨다. 그렇지 못한 나의 삶을 생각하니 금세 얼굴이 훅 달아오른다. 


요즘은 우리 또래 이웃들의 아픈 소식을 자주 접한다. 나 또한 하나님 부르시면 오늘이라도 가야 하는데 소중한 여생을 바른 길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나님께서 주신 카이로스의 시계에는 배터리를 하나 밖에 넣어주시지 않는다. 몇 년 전 ‘홍정길, 김동호, 이동원, 박호근’ 네 분의 목사님이 쓰신 ‘나의 하프타임’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인생의 후반을 기회로 바꾸어 도전하게 하고, 영생을 주신 소명과 은사를 발견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선물로서의 삶을 살 수 있는 도전을 받게 한다. 이 책에서 이동원 목사님의 메시지 중 ‘주님 앞에 포도주처럼 부어 버린 인생!’이란 표현이 마음을 뜨겁게 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디모데후서 4:6)” 사도 바울이 쓴 서신서 중 죽기 직전에 쓴 바울의 고백이다. 구약 시대의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에서 바쳐드리는 제물로 피, 포도주, 기름처럼 액체를 제물로 하나님께 부어드리는 제사를 전제(drink offering)라고 한다. 바울은 자신이 전제물이 되어 포도주처럼 부어졌기에 하나님을 만남이 얼마나 기대가 되었을까?



인생의 후반전은 누구에게나 반드시 찾아온다. 그리고 심장이 멎는 마지막 순간이 오고 하나님 앞에 누구나 서야 하는데 담대하게 설 준비가 되어 있느냐?고 묻는다. 바울도 예수님 만나기 전에는 예수님을 핍박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후 그는 낙심하지 않는다고 했다. 속 사람이 날로 새로워지기 때문에 자기 인생을 포도주처럼 주님 앞에 부어 버린 귀한 삶을 살았다.



하나님께서 주신 카이로스의 시계가 저벅저벅 혼자 가고 있다. 오늘 밤엔  더욱 큰 발소리를 내며 가고 있다. 이제 그 시계를 가슴에 건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하나님 나라를 향해 걸어가신 엄마, 그리운 엄마를 부끄러움 없이 만나야지. 천국에서 큰 소리로 엄마! 엄마 딸 왔어 외쳐야지,  예수님의 아름다운 신부로 주님 품에 안겨야지, 그러기 위해 건강한 오늘, 생명 주신 오늘 ‘주님 앞에 포도주처럼 부어 버린 인생’을 살아내야겠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