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 ‘브레이크(Brake)’가 없는 배, 어떻게 정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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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등] ‘브레이크(Brake)’가 없는 배, 어떻게 정지할까

웹마스터


이보영

민주평통 통일전략 전문위원


망망대해 넓은 바다가 점점 좁아지는 느낌이다. 지구촌 3대양 바다를 왕래하는 선박의 숫자도 셀 수 없을 정도로 증가했지만, 선박 자체의 크기와 무게 또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대해 졌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선박 충돌사고가 여기저기서 왕왕 발생하고 있다. 사실 배(舟)는 그 수명이 다 할 때까지 거센 파도와 충돌하며 떠 다니는 것이 숙명(宿命)이다.


해운역사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충돌사고는 1912년 4월 대서양에서 발생한 ‘타이타닉(Titanic)호’의 참사다. 길이 270m, 무게 4만6000톤의 최신 최대 호화여객선이 영국에서 뉴욕으로 항해 중 거대한 유빙(流氷)과 충돌해 침몰한 사고였으며 1500여명이 희생되었다. 영국의 ‘화이트 스타’ 해운사는 타이타닉의 탄생과

처녀항해(Maiden Voyage)를 알리면서 “하나님도 이 배는 침몰시킬 수 없다(God himself could not sink this

ship)” 라는 광고로 승객을 모집했다.


2014년 4월 한국의 서해상에서 발생한 세월호 사고는 충돌사고가 아니라, 선체의 허용 중량보다 훨씬 초과한 과적(過積) 상태로 과속항해 중에 급변침(조타 미숙)으로 중심을 잃어 선체가 전복한 사고였다.

전복된 후 침몰 때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었으나 구조 대책과 장비의 미흡으로 인명피해가 늘어났다.


지난 3월 26일 새벽엔 볼티모어항(港)에서 대형 컨테이너선이 다리 교각을 들이받은 충돌사고가 있었다.

이 사고로 길이 2.6Km, 아치형 트러스교(橋)인 ‘프랜시스 스콧 키 브릿지’ 중심부가 붕괴되었다. 당분간 항구 입구의 일부가 차단되고, 다리 위의 자동차 통행도 중단되게 되었다. 충돌사고 당시 다리 위에서 도로작업 중이던 인부 8사람이 추락했으며, 6명이 실종되었다.


볼티모어(Baltimore)항은 메릴랜드주의 천연항(天然港)으로,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서 50Km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은 수도권 대도시로 대서양으로 유럽을 잇는 주요 수출입항이다. 연간 5200만톤의 화물을

처리하는 미 동부의 관문이기도 하다. 특히, 미국의 최대 자동차 수출입 항구로 매년 약 85만 대가 이곳을 통과한다.


프랜시스 스콧 키(Francis Scott Key : 1779 ~ 1843 )는 미국 조지타운 출신의 변호사이며, 시인으로서

미국의 국가(國歌)인 ‘The Star–Spangled Banner(별이 빛나는 깃발)’ 의 노랫말(歌詞)을 쓴 시인이다.

1977년 이 다리를 개통하면서 ‘프란시스 스콧 키’ 시인을 기념하기 위해 그의 이름을 다리에 붙였다.

미국 국가의 가사 배경인 ‘맥헨리 요새’가 바로 볼티모어에 있으며, 1814년 미·영 전쟁 당시 ‘프란시스 스콧 키’ 는 맥헨리 요새 위에 펄럭이던 성조기에서 영감을 얻어 쓴 시(詩)가 국가의 가사가 된 것이다.

다리 이름이 길어서 보통 ‘키 브릿지’ 로 불리는 이 다리는 볼티모어 퍼탭스코강 하류를 가로질러

볼티모어항 외곽을 연결하는 4차선 대교이며, 하루 평균 3만대 이상의 차량이 통행한다.


사고 선박 ‘달리(DALI)호’는 볼티모어 내항에서 출항한지 45분만에 선박의 전력고장으로 동력을 잃고 밀려가다 ‘키 브릿지’와 충돌한 것이다. 이 배는 2015년 현대중공업이 건조해 싱가폴 선주회사 ‘시너지 마린그룹(Synergy Marine Group)’ 에 인도되었다. 현재 세계 최대 선사인 머스크 라인(Maersk Line, 덴마크)이 용선하여 사용 중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었던 것은 ‘달리호’가 동력을 잃자 바로 ‘Mayday Call(긴급조난신호)’을 보냈기 때문에 다리 양쪽 입구에서 차량진입을 차단했고, 통과 중이던 차량들도 긴급 대피시킨 결과 대형참사를 막았다.


바퀴로 다니는 교통수단에는 브레이크(Brake)가 있어 급정지가 가능하지만, 배는 불행히도 급정거를 할 수 있는 제동장치(Brake)가 없다. 그렇다면 배는 충돌을 피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할까?

첫 번째는 엔진을 조종해 스크류(Screw)를 역회전 시키는 방법이다. 주행중인 자동차가 기어(Gear)를 후진(R)으로 넣는 방식이다. 엔진을 역회전시켜도 선박은 크기와 무게의 관성 때문에 바로 정지하지는 못한다. 상당한 거리를 진행한 후에야 멈추게 된다. 따라서 선장은 자기 배의 엔진 역회전시에 정지거리를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


통상 선박의 정지거리(Braking Distance)는 배 길이의 10배에서 15배에 이르므로, 길이 200m의 선박은 장애물을 발견하고 정지명령에 따라 역회전시켜도 2~3km를 진행한 후에야 정지하게 된다.

만약 선박 앞에 장애물이 있는 경우, 최선의 방법은 방향을 바꾸면서 역회전하는 것이다. 방향을 바꾸어도 통상 배 길이의 5배 정도로 밀려가면서 방향이 틀어진다. 물론 운항 중인 속력에 따라 다소 차이는 발생한다. 선장은 적어도 1~2km 전방을 관측하면서 항해를 명령해야 한다.


두 번째 정지조치는 선수(船首)에 있는 닻(Anchor)을 내려 해저에 박히게 해서 정지시키는 방법이다. 사실 이 정지방법은 일반 선박은 거의 사용하지 않으며, 군함들은 비상시에 사용한다. 배의 무게로 인해 닻줄이 끊어지거나 선수에 큰 손상을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항해에도 ‘정지할까, 또는 계속 진행할까’ 에 대한 속도조절이 필요할 때가 있다. 현대인들의 삶은 참 바쁘다.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가 “요즘도 많이 바쁘세요?” 이다. 물론 바쁘게 사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삶이 바쁘다 보면 정말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거나 간과하기 쉽고, 인간관계에서 자칫 충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끔씩은 나 자신을 멈춰 세우고, 나와 내 주변을 돌아며 마음의 여백, 삶의 여유를 가져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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