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에 목마른 청춘과 세운 교회, 어느 덧 30여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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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에 목마른 청춘과 세운 교회, 어느 덧 30여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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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용 목사는 "목회를 돌아보면 숨 가쁘게 복음과 주의 사랑을 전했던 뜨거운 날들이었다"고 말했다. 



[믿음의 일꾼과 건강한 사역지를 찾아서] <12> 코너스톤교회 이종용 목사 


어린 시절부터 신앙으로 성장

음악봉사 활동 중 찬양 인도 부름  

'지저스 크라이스트' 예수역 열연 

텍사스 개척교회선 한국군 선교도




이종용 목사는 충청도 홍성에서 자랐다. 할머니 사랑을 받고 자랐는데, 할머니 손에 이끌리어 교회를 다녔다. 자연스럽게 교회 생활이 삶의 일부가 되었다. 교회를 떠날 수 없었고 교회에 가면 평안했고 행복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교회를 섬겼다. 훗날 음악 활동을 하면서도 교회 성가대 지휘를 했다.


음악을 통한 봉사활동을 하다가 YWCA에서 찬양 인도를 했다. 이 시절 함께 기독교 음악 활동을 하던 사람들이 모인 곳이 '청개구리집'이다. 1970년대 YWCA에 젊은이들을 위한 음악 광장을 만들어 보려는 의도로 이백천씨 등이 중심이 되어 YWCA 직원 식당을 개조하여 만든 무대다. 


이미 음악으로 실력을 인정받았고 크리스천으로 알려졌던 청년 이종용도 합류했다. 그 시절 함께 '청개구리집'에서 음악 활동을 했던 사람들 가운데 유명한 가수들이 많다. 서유석, '투코리안즈'의 김도향과 손창철, 김민기, 김형세 등이다. '청개구리집'은 당시 또 다른 음악 공간이었던 쎄시봉과 쌍벽을 이루었다. 


청년 이종용의 음악 활동은 여러 방면에서 빛났다. 우선 연이은 히트곡을 남겼다. 겨울 아이, 고엽, 너,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등등의 히트곡은 아직도 사랑 받는 명곡이다. 그리고 연극 '슈퍼스타 지저스 크라이스트'에서 예수 역을 맡아 열연하며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인기 절정에서 시련을 겪으며 하나님을 깊게 만났다. 늘 동행해 주시던 주님을 '찐하게' 만났다. 그리고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 목사의 고백에 의하면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텍사스 샌안토니오에서 신학교를 다니고 있었단다. 화려한 무대와 인기를 뒤로 한 채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 목사가 신학을 공부했던 텍사스 샌안토니오에 '미국방언어학교(Department of Language Institue/DLI)'가 있다. 각국의 군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학교다. 한국군 간부(장교와 부사관)들이 짧게는 2주에서 길게는 3개월을 머물며 영어 공부를 했다. 이 목사는 한국 군인을 섬기는 군 선교를 했다. 미국방언어학교와 협조하여 모든 군인의 공항 '라이드'를 담당 했다. 


밤, 새벽 시도 때도 없이 공항에 나갔고 다음 교육을 위해 떠나는 그들을 위해 도시락을 준비했다. 1년에 1200여 명의 군인을 섬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모든 수고를 보시고 은혜로 갚아 주셨다. 교회는 건강하게 성장했고 한국군 간부들 3000여 명에게 침례를 베풀었다. 돌아보면 숨 가쁘게 복음과 주의 사랑을 전했던 뜨거운 날들이었다. 행복했었다. 


한국의 경제력이 좋아지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한국군 영어 연수비용을 한국 정부가 부담하게 되었다. 한국군은 자체 영어 연수 프로그램(군사영어반)을 설치했고 미국방언어학교 연수 인원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이 목사의 사역에도 영향이 많았다. 때마침 이 목사도 텍사스를 떠나게 되었다. 


후임자에게 교회를 맡기고 하나님 인도를 따라 남가주로 왔다. 오자마자 대학생들이 찾아 왔다. 예배에 목 마른 젊은이들이었다. 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며 자연스럽게 교회가 시작되었다. 참 예배에 목마른 영혼들과 함께 예배 드리며 시작한 곳이 '코너스톤교회'다. 뚜렷한 계획 없이 시작된 '코너스톤교회'는 하나님 은혜로 수많은 간증을 품은 채 31주년을 앞두고 있다.  

강훈 종교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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