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우 근  

변호사 / 숙명여대 석좌교수 

 “인간은 금지된 것을 욕망한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의 명제다. 금기(禁忌)의 베일에 싸인 신비가 오히려 그 베일을 벗겨내고 싶은 일탈의 본능을 자극한다. 그 본능의 정체는 다름 아닌 자기애(自己愛)다. 물욕, 지식욕, 성욕, 권력욕, 명예욕…. 인간의 모든 성취욕은 삶의 본능적‧원초적 욕구인 ‘자기사랑’에서 솟아난다. 금지된 사랑, 금지된 신앙은 떨치기 어려운 힘으로 우리의 마음을 덮쳐온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을 가문의 명예가 막을 수 있었던가? 로마제국의 종교탄압이 그리스도교 신앙을 금지할 수 있었던가? 

터부(taboo)에의 반항과 도전은 자기애의 본성이지만, 사회공동체의 건강한 존속을 위해서는 반사회적 욕망의 분출을 금지해야 할 경우도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패륜이나 범죄에 이끌리는 비뚤어진 자기애의 욕망은 문명사회에서 허용될 수 없다. 인류의 타락은 선악과를 훔친 아담과 이브의 도둑질에서 비롯되었고, 트로이전쟁은 스파르타 왕비 헬레네와 트로이 왕자 파리스의 불륜에서 시작되었다. 뒤틀린 자기애가 금기를 깨뜨린 것이다. 

남의 것을 탐내는 것은 자기애의 인간 본성일 수 있지만, 그것을 훔치는 행위는 그릇된 자기애의 충족을 위해 '도둑질하지 말라'는 금기를 일탈하는 것이다. 근친상간의 터부는 원시사회 이래 인류의 오랜 도덕적 관습으로 자리 잡았는데, <슬픈 열대>를 쓴 레비-스트로스는 근친상간의 터부를 도덕적 관점이 아닌 사회적‧문화적 관점에서 긍정한다. 근친상간은 공동체와 그 문화의 존속을 어지럽히는 일그러진 자기애의 반사회적 일탈행위이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자들의 침략을 당한 대한민국에서 공산주의 사상의 전파는 헌법적 금기다. 그렇지만 자본주의의 부패와 타락을 걱정하며 가난한 민초들을 품어 안는 온건한 사회개혁 운동은 금기의 일탈이 아니라 금기의 교조적 경직성을 완화하는 공동체적 정의로 인정된다. 황금만능의 물신숭배가 깊어질수록 빗나간 자기애의 욕망을 억제하는 사회경제적 정의의 요구는 더욱 절실해진다. 

“자기 자신에 대해 많은 말을 하는 것은 자기를 감추는 수단일 수 있다.” 나르시시즘의 위선을 폭로한 니체의 탁견이다. 지나친 자기선전은 제 잘못을 감추려는 자기애의 비명(悲鳴)처럼 들리기 십상이다. 선거를 앞두고 급히 만든 정당에 자기 이름과 똑같은 발음의 이름을 붙이거나, 자녀 대학입시 부정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당 대표가 ‘대학입시 기회균등 선발’을 당의 강령으로 내거는 모습은 보는 눈에 따라 상상을 초월한 나르시시즘으로 비치지 않을까 모르겠다. 

당내 비판세력을 공천 명단에서 지워버린 어느 정당의 대표도 숱한 범죄혐의로 재판받고 있는 피고인이지만, 자신을 ‘시대정신’으로 떠받드는 무리에 둘러싸여 자기애에 도취된 나르시시스트는 아니기를 바란다. 그런가 하면, 출국 금지된 피의자를 외교사절로 임명하고 나라 밖으로 내보내려 하거나 대통령 부인이 부적절하게 명품백을 받는 등 석연찮은 의혹들이 말끔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도 지지자들만의 박수 소리에 취한 나르시시즘 탓이 아닌지 궁금하다. 

오늘날의 선거는 ‘누구를 뽑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구를 뽑지 않기 위해서’ 투표하는 제도로 변질되고 말았다. 이 당이 싫다는 이유로 저 당의 아무에게나 표를 던지는 무책임한 투표가 선거와 민주주의를 타락시킨다. 선거의 당선이 반드시 자랑스럽지만은 않은 이유다. 

무릇 반사회적 욕망은 음침한 자기애로부터 나온다. 나르시시스트 정치꾼들의 권력욕은 더욱 그렇다. 이번 선거에 나선 후보자들 가운데는 뒤틀린 자기애의 욕망으로 국가적‧사회적 금기를 깨뜨린 나르시시스트들이 적잖이 섞여 있다. 자기의 감춰진 내면을 보지 못하고 호수에 비친 제 아름다운 겉모습만을 사랑한 나르시스는 마침내 그 호수에 빠져 죽는다. 나르시시스트 정치꾼들의 당선이 결국 자기애의 호수가 될까 걱정스럽다.​​ 

정치적 욕망은 나라와 사회의 금기를 일탈해도 괜찮은 것인가? 자아도취에 빠진 나르시시스트 정치인들에게 묻는 것이 아니다. 저들에게 금배지를 달아주려고 안간힘을 쓰는 추종자들에게 던지는 물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