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의회 찾은 탈북 여성들 “장마당서 번 돈 당국이 가로채”


홈 > 로컬뉴스 > 로컬뉴스 > 피플&스토리
로컬뉴스

미 의회 찾은 탈북 여성들 “장마당서 번 돈 당국이 가로채”

웹마스터

19일 오전 미국 워싱턴 D.C.의 연방 의회내 레이번빌딩에서 탈북민 배유진 씨가 북한내 시장경제 경험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DFF 


배급제 무너진 북한 실상 증언 



북한에서 사업을 벌였던 탈북 여성들이 19일 미국 수도 워싱턴DC를 찾아 장마당을 통해 경험한 자본주의 활동에 대해 증언했다. 이들은 북한 내 배급제가 사실상 무너진 상황에서 장마당은 북한 주민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며, 장마당이 사라져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장마당이 활성화돼 굶어죽는 사람이 줄어드는 건 분명했습니다.” 19일 오전 미국 워싱턴 D.C.의 연방 의회내 레이번 빌딩 내 연단에 선 김항운씨가 이렇게 말했다. 양강도 직물공장 노동자였던 그는 지난 2008년 탈북했다. 북한 인권운동가 수잰 숄티 미국 디펜스포럼 대표가 주최한 이날 행사에서 감씨 등 탈북 여성 3명은 북한에서 경험한 ‘경제 생활’에 대해 생생하게 증언했다.


김씨는 고난의 행군 이후 생존을 위해 중국 접경지역에서 밀수와 제과 장사를 하다가 조선족 사업가를 만나 시장경제에 눈을 뜨게 됐다. 중국인들에게 해산물, 알루미늄, 구리 등을 주고 돈 대신 쌀을 받아오는 거래로 생계를 해결했던 김씨는 조선족 상인의 북한 측 파트너가 돼 ‘보따리상’의 노하우를 배웠다.


그는 “(장마당에 대해) 정말 세상을 얻은 기분이 이런 것이란 것을 느꼈다”며 “돈이 돌지 않는 북한 시장에 외상으로 물건을 내어놓는 법과 회수하는 방식, 한 지역에만 머물지 말고 지역 특산물의 회전을 위해 타지역 상인들과 연계하고 이윤을 창출하는 등 평소에 생각조차 못 하던 일들이 그 중국인에 의해 현실화되는 걸 목격할 수 있었다”고 했다.


앞서 지난 1월 김정은은 “지방 인민들에게 기초식품과 초보적 생필품조차 원만히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건 당과 정부가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심각한 정치 문제”라며 지방의 배급제 붕괴 실태를 공개적으로 인정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장마당이 그나마 북한 주민들의 생계를 뒷받침하고 있다고 김씨는 전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이 시장에서 물건 파는 사람들의 나이, 운영시간 등을 통제하는 걸 넘어 외국 상품과 남한 드라마 등을 공급하던 사람들을 잡아가기 시작했다고 김씨는 전했다. 김씨는 “당국은 남보다 돈이 많아진 사람들을 향해 ‘자본주의의 노예’라고 하면서 짧게는 1년, 많게는 10년 이상 징역형을 내렸다”며 “그렇게 처벌받고, 추방당하고, 죄 아닌 죄인이 되어 장마당을 떠나는 동료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탈북을 결심했고 2013년 9월 대한민국 국민이 됐다”고 했다.


2019년 탈북한 배유진 씨는 혜산예술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 압록강 근처에 살면서 북한 주민들이 아사하는 걸 본 뒤 길거리 장사에 뛰어들었다. 

배씨는 “매일 새로운 드라마를 과일 박스 속에 숨겨 중국을 통해 북한으로 들여왔다”며 “그러다가 주민들의 수요가 날로 커지자 북한 내에서 이를 대량 생산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그는 “(북한 주민들이) 중국에서 CD 복사기를 몰래 구매해 집에서 복사본을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며 “나는 빈 CD를 중국에서 들여와 판매했다.(장사가 잘되면서) 돈이 쌓이는 재미를 보게 됐다”고 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의 단속이 강화되고 한국 드라마 유포자가 공개처형까지 당하는 걸 보면서 장사를 접어야 했다.


김정은 당국은 장마당 등을 통해 한국 드라마 등 외부 정보가 급속도로 확산하자 2020년 12월 유포자에 대한 사형 등 처벌을 크게 강화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했다.

배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남조선 드라마나 음악에 대한 대중의 수요를 충족시키고 그것이 돈이 되는 세상에서 CD를 굽고 USB를 복사한 것이 ‘자본주의 사상을 유포시킨 범죄’가 되는 세상을 원망했다”고 했다.


김일성대를 나온 이른바 ‘금수저’ 출신인 김지영씨는 평양에서 식당과 맥줏집을 직접 경영했다. 한동안 잘나갔지만, 식당 지배인으로서 직원들에게 신망을 얻었던 어머니가 어느날 ‘직원들이 수령보다 지배인을 더 따른다’는 모함을 받아 보위부에 끌려 갔다. 뒤이어 자신도 함께 붙잡혀 갔다고 김씨는 밝혔다.


김씨는 “(조사를 받으면서) 여성들이 하는 모든 일이 행정처벌법을 기준으로 범죄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돈이 없으면 운영이 안되는 장마당에서 돈많은 사람이 죄인이 되고 있었다”고 했다.

김씨는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북한 여성들은 꿋꿋하게 버티며 가족의 삶을 지켰다”며 “북한의 종합시장(장마당)은 ‘인민의 자산’”이라고 했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