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역사 산책
김희식
(주)건축사무소 광장 상무
매주 10여 편의 신작영화들이 쏟아져 나오는 LA에서는 이번 주말은 무슨 영화를 볼까, 주말판 신문을 기다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여전히 OTT(넷플릭스)보다는 영화관을 선호하는 터라 서울 등 대도시를 다녀올 때면 무슨 영화를 볼까, 영화 상영 프로그램을 검색하게 됩니다.
지난주, 서울 가는 길에는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을 선택했습니다. 영화가 끝나면서 객석에서 일제히 박수치는 소리가 들립니다. 눈시울을 붉히는 관객들도 많더군요. ‘푸른하늘 은하수…’로 시작되는 동요 ‘반달’ 과 가곡 ‘동무생각’ 등 귀에 익은 곡들이 숙연하기도 했습니다.(박태준 곡 ‘동무생각’은 이승만 전대통령 국민장 행사 장면에 나옴).
엔딩 자막과 함께 영화관을 나오자마자 찿아 간 곳이 있습니다. 동숭동 낙산자락 밑에 자리잡은 ‘이화장(梨花莊)’입니다. 고인의 유품이 소장되어 있는 곳이지만 굳게 닫힌 게이트에는 인적이 없는 듯했습니다.건물 뒷편의 낙산을 오르면서 대통령 사저(私邸)였던 이화장 한옥과 마당을 내려다 봤습니다. 단촐한 살림집과 서재 등으로 배치된 구옥의 오래된 한식 기와와 뜰안의 나무들이 80년의 세월을 말 해 주는 듯 합니다.
당시의 정치적 배경과 역사적 인식이 가물가물한 탓에 두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그중 하나인 ‘독립정신’은 우남 이승만이 1899년(24세 때) 고종황제 폐위 음모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투옥된 후 6년째 감옥생활을 하던 중 1904년 2월부터 6월까지 넉 달 동안에 쓴 글입니다. “슬프다. 동포들이여 생각을 하여보라,사람의 일신(一身)이 먹고 입는 것도 중하다 하겠지만 이것만 중히 여겨서는 짐승과 다를 것이 없나니. 사람의 대접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우리 대한 동포들도 남과 같이 타고나서 사지백체와 이목구비며 지혜와 총명이 남만 못할 것이 없는데 어찌하여 만국이 고통하면서 지혜와 재주를 서로 다투는 세상에 태어나서 남과 같이 상등(上等) 대접받기를 원하지 않겠는가. 속담에 제집 개도 남의 개에게 물리는 것을 보면 분하다고 하는데 하물며 사람이 사람에게 하등(下等) 대접받는 것을 어찌 생각하지 않으며 원통히 여기지 않겠는가. 비록 오늘이라도 이 글을 보고 깨닫고, 사람마다 마음 속에 내 나라의 독립권리를 보존하는 것을 나의 목숨보다 더 중하게 여기며, 독립을 위하는 자리에는 죽기까지 나아가는 것을 영광으로 삼는 것이 제일 긴요하고 제일 중대한 일이다.”(이승만 지음, 박기봉 교정, ‘독립정신’ 64쪽, 2018).
또 다른 한 권은 역사학자 최태성의 ‘한국사’입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이승만 정권은 세 가지 정책을 펼칩니다. 첫 번째가 전면적인 농지개혁입니다. 농지개혁 방식은 유상매입, 유상분배였습니다. 유상분배를 행할 때 땅값의 기준은 1년치 생산량의 150%로 조정합니다. 예를 들어 그 땅에서 100가마가 생산된다면 땅값은 150가마가 되지요. 이 땅값을 5년동안 분할상환방식으로 갚도록 합니다. 한편 유상매입 대상지는 3정보 이상이예요. 3정보까지는 지주가 그대로 소유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농지개혁을 위해 식민지 지주제가 철폐되고 소작농이 줄고 자영농이 증가하면서 소작쟁의도 감소합니다.
두 번째 경제정책은 귀속재산 처리예요. 미 군정은 신한공사를 통해 귀속토지만 분배했을 뿐, 나머지 공장 같은 귀속재산은 이승만 정부에게 넘겨줍니다. 이승만 정부의 귀속재산 처리는 1950년대 이후 산업독점자본이 성장하는 계기가 됩니다.
세 번째로는 원조경제입니다. 이것이 이승만 정권의 경제정책 중 가장 중요합니다. 미국은 대한민국에 자국의 잉여농산물, 그 중에서도 주로 설탕, 밀가루, 면화를 원조했는데요. 이들이 모두 하얗다는 점에서 삼백산업이라고 부릅니다. 미국의 무상원조를 통해 이들 삼백산업이 발달하게 된 거죠. 금의 삼성도 설탕회사인 제일제당(지금의 CJ)에서 출발했습니다. 잉여농산물이 삼백산업의 발달을 낳고 나중에 대기업으로 성장한 것입니다.(최태성 ‘한국사’ 474쪽, 2018).
요즘 국내외를 막론하고 영화 ‘독립전쟁’을 계기로 지난 역사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어느 한 쪽에서는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다른 한 쪽에서는 ‘지난 역사를 입체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한 인물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필요하다’ 혹은 ‘건국전쟁’의 흥행 덕에 난공불락 같던 편향적 한국사를 바로 잡을 계기가 됐다’ 라는 등의 여러 견해가 분분한 듯 합니다.
어쨌거나 필자에게는 영화 한 편이 역사 산책의 시간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잊고 지냈던 ‘모국의 건국과정과 근대적 경제성장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