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 비 오는 날의 도우미, ‘와이퍼(Window Wi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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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등] 비 오는 날의 도우미, ‘와이퍼(Window Wiper)’

웹마스터

이보영

민주평통 통일전략 전문위원



아침 깨니/ 부실부실 가랑비가 내린다/

자는 마누라 지갑 뒤져/ 백오십 원을 훔쳐/ 아침 해장으로 나간다/

막걸리 한 잔 내 속을 지지면/ 어찌 이리도 기분이 좋으랴?/

가방 들고 지나는 학생들이/ 그렇게도 싱싱해 보이고/ 나의 늙음은 그저 노인 같다/

비 오는 아침의 이 신선감을/ 나는 어찌 표현하리요?/

그저 사는 대로 살다가/ 깨끗이 눈 감으리오/


'귀천(歸天)' 으로 유명한 천재시인 천상병의 시, ‘비 오는 날’ 이다. 시(詩)와 술(酒)로 한 세상을 소풍처럼 살다 간 기인(奇人), 천상병의 시(詩)가 비 오는 날이면 문득 생각난다. 그저 사는 날까지 살다가 눈 감게 될 인생이, 비 오는 날이면 더 처량한 느낌이 든다.


금년 겨울 캘리포니아 지역엔 유난히도 비가 많이 내렸다. 대부분 바람을 동반한 폭풍우(Rain-storm)였다.

몇백 년의 역사를 지닌 큰 나무들이 겨울비를 잔뜩 머금은 채, 폭풍에 시달리다 자신의 무게를 못이겨 결국 부러지거나 쓰러진 광경들을 골프장에서 흔히 보게 된다.


산 언덕빼기 부촌 동네의 저택들을 오랫동안 받쳐왔던 절벽이 폭우에 시달리다 토사(Mudslide)로, 낙석(Rockslide)으로 무너지자, 아까운 저택을 버리고 강제 피난을 떠나야 하는 모습들이 TV에 자주 등장할

때마다 자연 앞에선 부촌(富村)의 힘도 미력함을 실감하게 된다.


삽시간에 빗물에 잠기는 도로, 여기저기 물웅덩이들을 보면서 운전에 바짝 조심을 하게 된다. 도로 표면도 미끄럽고, 시야가 제한되니 차량의 흐름이 느려지고, 정체와 혼잡으로 운전하기가 짜증스럽고 피곤하다. 이렇게 비 오는 날엔 앞을 내다 볼 수 있게 해 주는 유일한 장치가 와이퍼(Wiper)다.


와이퍼는 앞 창의 빗방울과 흐르는 빗물을 와이퍼 날이 좌우로 반복하며 닦아주는 고마운 ‘도우미’ 이다.

자동차 유리창의 와이퍼는 미국의 한 평범한 주부가 고안해 낸 발명품이다. 1903년 여름 앨라배마주

버밍햄에 사는 마리 엔더슨(Mary E. Anderson) 부인이 폭우가 쏟아지는 날 전차(Streetcar)를 탔다. 전차

운전수는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유리창을 닦아야 했고, 이를 위해 몇 차례 전차를 세우고 밖에 나가 비를 맞으며 유리를 닦는 것을 보게 되었다. 어떤 전차에는 유리창을 닦아주는 조수를 두기도 했다.


엔더슨 부인은 집에 돌아 와 연구를 거듭한 끝에 전차 내부에 설치된 수동 레버를 이용해 레버를 당기면 유리창의 고무 날이 위로 올라가고, 놓으면 내려가는 방식으로 유리를 깨끗이 딲아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특허를 냈고, 이 특허를 캐나다의 한 장비제조사에 판매하려 했으나, 거절당했다.

실용적 가치가 적고, 겨울철 우기(雨期)가 지나면 와이퍼를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 통념이었다.


비웃음까지 받았던 이 발명품은 놀랍게도 1916년 대부분 차량의 유리창에 표준 와이퍼로 선정되었다.

1922년부터 캐딜락 회사는 모든 출시 차량에 와이퍼를 필수적으로 장착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후부터 와이퍼는 과거 100년동안 많은 개선과 보완을 거쳐 오늘 날엔 자동조절 기능까지 갖추게 되었다.


와이퍼는 비 오는 날, 차량 운행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되었다. 배에도 조타실(操舵室: Wheel House) 유리창에 와이퍼가 있다. 조타실은 자동차로 말하면 운전석이며, 배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대개 배의 뒷편에 위치해 있다. 조타실엔 선장을 포함해 몇 사람의 항해사가 교대로 근무하며, 중앙에 조타륜(Steering Wheel)이 있고, 회전 나침판(Gyro-compass ), 레이더, GPS 스크린, 전자해도, 무선통신 등의 중요 장비가 있다.


배의 와이퍼는 빗방울을 닦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파도가 뱃전에 부딪혀서 조타실 창문으로 파편된

바닷물을 주로 닦는다. 큰 선박은 조타실의 유리창문도 여러 개로 나뉘어 있어 창문마다 와이퍼가 있다.

해양 환경은 짙은 안개, 많은 강우량과 폭설, 거센 파도의 파편이 늘 창문까지 튀여 오르기 때문에 선명한 시야 확보를 위해서는 와이퍼보다 더 강력한 ‘선회창(CVS : Clear View Screen)’을 장착해 사용한다.

‘선회창’이란 선박의 앞창문에 설치하여 고속으로 회전하며 그 원심력으로 물기나 이물질을 제거하는 원형장치이다. 구멍을 낸 유리창에 설치되는 것이 기본적이나, 유리창 위에 추가로 설치되기도 한다. 제설용 기관차에도 선회창을 설치해 사용하지만, 최근엔 자율주행차에도 선회창을 장착하고 있다.


비행기에도 조종사와 부조종사의 앞 창에 각각 한 개씩의 와이퍼가 있다. 구름 위로 나는 비행기에 왜 와이퍼가 있을까? 궁금하지만, 구름층 속을 통과하거나 구름 아래에 빗속을 비행할 때는 시야가 가리니 와이퍼 사용이 필수적이다. (물론 레이더 신호도 살피지만)


자동차는 두 개의 와이퍼가 한 시스템에 의해 좌우로 동일하게 움직이지만, 비행기의 경우는 와이퍼가 각각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다르다. 그 이유는 조종사와 부조종사의 조종 시스템의 ‘독립성’ 때문이다. 사실 조종사와 부조종사는 식사 메뉴도 다르다. 자칫 음식에 문제가 있을 경우, 둘이 함께 식중독이라도 일으키면 큰 위험에 빠지기 때문이다.


비 오는 날 운전을 하면서 문득 “사람의 마음에도 와이퍼가 있으면 좋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 아픈 기억들, 잊고 싶은 추억들, 미워하는 생각, 등 나쁜 기억들을 닦아 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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