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구 전문기자의 Hollywood In] “판소리의 핵심은 신명나게 한판 놀아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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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구 전문기자의 Hollywood In] “판소리의 핵심은 신명나게 한판 놀아보는 것”

웹마스터

캘리포니아에서 판소리 보급에 힘쓰는 

‘TK SORI 신명' 신윤희 대표


"유네스코에 등재될 만큼 

아름다운 대한민국 유산" 



‘K-CULTURE’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한국에서도 생소한 취급을 받는 ‘판소리’를 이곳 캘리포니아에서 보급하는 이가 있다. 바로 ‘TK SORI 신명’의 신윤희 대표다. 한국어를 학습하기도 어려운 미국인들에게 ‘전라도 사투리’로 구성된 판소리라니, 이게 무슨 일이냐 싶겠지만 신 대표는 발상의 전환을 했다. 보다 더 친근하고 편안하게 다가가기 위해 노래 자랑을 하듯 ‘민요자랑대회’를 하는 것으로 말이다. BTS의 노래도 외우기 힘든 미국인들에게 판소리, 민요자랑이라니…. 그런데 그렇게 시작한 민요대회가 벌써 3회를 넘겨 올해로 4회가 된다. 


사실 그 이전부터 캘리포니아의 행사에 자주 ‘재능기부’를 하기는 했다. 자신감은 있었지만 기존 무거운

국악대회의 형식을 벗어나 누구나 쉽게 다가 갈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응이 뜨거웠다. 비록 뿌리를 한국에 두고 있었지만 “우리 소리가 이렇게 신명 났다는 말인가?” 하는 반응들이 쏟아졌다.


#’소리’는 타고난 운명

신 대표에게 과연 ‘판소리’란 무엇인가를 묻자 ‘인생’이라는 즉답이 돌아왔다. 흔히 ‘골프는 인생’이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고 한다. “연습을 아무리 많이 해도 잘하려는 순간 과욕으로 인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게 골프인 것처럼 판소리도 이와 다르지 않아요. 특히 ‘소리’라는 것이 최고 정점에 다다랐다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떨어지는 경우가 파다하거든요.” 


흔히들 판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영화의 장면처럼 산에 가서 폭포 앞에서 연습을 하는 것을 ‘산(山)공부’라고 부른다. 이때 대개는 목과 몸이 많이 붓는다고 한다. 이때 많이 들어본 이야기가 ‘똥물’을 먹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실제로 ‘삭은 똥물’을 마시면 신기하게도 몸의 붓기가 빠지고 목소리까지 탁 트인다고 한다. 이를 독공(獨功)이라고 한다. ‘판소리 가객들이 득음을 하기 위해 토굴 또는 폭포 앞에서 하는

발성훈련’이다. 


소리꾼이 선생으로부터 배운 소리를 더욱 수련하여 자기만의 색깔을 내기 위해 홀로 공부하는 것을 뜻하는데, 가왕(歌王) 조용필이 절치부심 노래공부를 했던 방법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득도 후 튀어나오 듯 맑고 고은 음색의 ‘천구성’(天口聲) 혹은 탁하고 컬컬하게 쉰 듯한 목소리를 내는 ‘수리성’으로 바뀌게 되는데 이를 ‘득도’라고 한다. 대개 판소리를 하게 되면 수리성으로 주로 바뀌기 때문에 흔히 판소리를 ‘수리성의 미학’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된다.


또한 ‘득음’(得音)이란 천구성과 수리성을 자유자재로 내는 경지이며 거기에 깊은 감동의 여운을 뜻하는 '그늘'을 더해야 비로서 명창(名唱)으로 불린다고 한다. 이 과정을 거쳐 소리꾼이 되어야 하니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도전할 수 없는 게 판소리라고 한다. 그러한 까닭에 판소리는 ‘운명’처럼 다가 온다고 한다. 


신 대표는 사실, 처음엔 무용을 했었다고 한다. 사회도 보고 대중 앞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응원단장을 하는 등 어릴 때부터 ‘끼’가 많아서 ‘될 성 싶은 아이는 다르다’면서 최상목 선생이 춤을 배워 볼 것을 권유했다고. 하지만 불의의 교통사고로 인해 부득이 ‘판소리’로 전환하게 되었다고. 희안하게도 춤이나 판소리의 경우 구슬픈 가락을 더 선호하고 ‘한’(恨)에 대해서 마음에 와 닿았다고 하는데 감정이입이 남들보다 빨라서였을까? 판소리를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신 대표의 ‘소리’를 듣고 70대 어르신이 눈물을 흘리고 계시는 것을 보고 ‘이거다’ 싶었다고 한다.


#판소리는 대화다

신 대표는 판소리를 배우게 되면서 그 ‘소리’가 너무 좋았다고 했다. 전남대 국악학과에서 전문적으로 판소리를 배우면서 진봉규 명창에게는 춘향가, 조상현 명창에게는 심청가를 사사받았고 남해성, 성창숙 명창에게서 남도민요를 배웠다. 물론 주체할 수 없는 끼를 발산하고자 처음에는 연극영화과 진학을 염두에 두고 찾아간 판소리학원에서 국악과에 진학하라는 권고를 받을 만큼 기본은 있었다. 


특별히 신 대표가 판소리에 매료된 까닭은 ‘대화 형식’이라는, 그래서 고수와 창을 하는 사람이 혼연일체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판소리의 생명은 ‘주거니 받거니’라고 한다. 북을 잘 쳐주고 장단을 잘 맞춰주면 소리가 ‘날라 다닌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미국에서는 북 장단을 맞춰줄 ‘고수’를 못 만나 처음에 애로사항이 많았다고 하는데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미국식 ‘퓨전’ 판소리로 고수 없이 혼자서 직접 북을 치며 창을 부르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 변형된 형태에 대해서 많은 우려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잠시 결혼과 출산 등으로 공백기를 가지게 되었고 주재원인 남편을 따라 미국에 이민 와 ‘소리’와는

멀어지나 싶었는데 그래도 문을 닫아 놓고 혼신을 다해 연습을 하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마침내 미국에 뿌리를 내리다

그러던 어느 날 신 대표에게 기회가 왔다. 주변의 끊임 없는 요구로 지난 2016년, 풀러튼 커뮤니티센터에서 클래스를 열게 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한국에 가서 공부를 하고 오기도 하고 현지 국악인들과 조인트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개인 레슨이나 단체 레슨을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인데 공부에 지친 청소년들에게는 ‘흥’을 돋워주고 동기부여를, 시니어분들에게는 생활의 활력을 주면서 ‘행복’을 찾아주는데 판소리가 가장 적합했다고 한다. 


세대를 불문하고 판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근심 걱정이 사라지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게다가 논문까지 나와 있는데 판소리는 ‘치매 예방’에 적격이라고 한다. 대략 20분 정도 창을 하면서 자기만의 악보가 그려지게 되며 이 과정에서 좌뇌, 우뇌를 다 사용하게 된다고 한다. 현재 시니어 클래스의 멤버들이 대개 65~75세의 연령층인데 20분 정도의 창을 암기하기 때문에 치매 걱정이 없다고 한다. 이러한 경험들이

축적되면서 기획하게 된 것이 ‘민요대회’이다. 


물론 기존의 대회가 전혀 없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다만 그 문턱이 높다거나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져서 한국의 ‘전국노래자랑’처럼 대중화 된 대회를 하고 싶었다. 호응도 뒤 따랐다. 입상을 떠나서 한바탕 신명 나게 놀아보는 잔치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TK SORI 신명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현재의 ‘TK SORI 신명’이다. 현재 신 대표는 (사)한국판소리교육개발진흥회 캘리포니아 지부장을 맡으면서 유튜브 레슨은 물론 제자들과의 발표회를 여는 등 미국에서 한국 판소리의 대중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제자들 중 어떤 이는 7~8년 가량을 동행하면서 정도 많이 쌓였고 또 다른 이는 어릴 적 배우고 싶었던 한을 풀었다고 행복해 하기도 한다. 


마디로 판소리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인 공감과 한풀이 그리고 모두가 어울려 신명나게 놀아보는 문화가 모두를 ‘하나’로 만들어 어느 단체보다 끈끈한 우애를 과시하고 있기도 하다. 앞으로의 계획은 비영리단체로의 전환을 통해 좀 더 많은 기여를 사회에 하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국악관련 전공자들이 ‘연간 공연기획서’를 제출하면 문화부에서 바우처 예산이 나오기 때문에 이를 활용하여 많은 국악인들을 캘리포니아로 초청하려는 포부도 갖고 있다. 


마지막으로 만약 자녀가 끼를 물려 받아 ‘판소리’를 하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물었다. 신 대표의 말에 의하면 자기 자신이 연습을 치열하게 해야 하고 주변의 서포트가 없으면 매우 힘든데다가 상위 1%에게 주어진 일이니 권하고 싶지는 않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째 딸이 기타도 치고 플룻

연주도 하며 ‘절대음감’을 유지하고 있어 한편으로는 기대가 된다고. 


한편 국악공부를 가까이에서 배우고 싶은 이가 있다면 문은 언제든지 열려있으니 배우러 오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기자의 입장에서 신 대표와의 인터뷰는 내내 신명나고 흥이 났다. 물론 고수와 명창 혹은 만담을 하는 것처럼 ‘주거니 받거니’를 했기에 가능한 일은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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