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조선일보 LA와 함께 뜁니다] "나랏 일 맡아 부담 크지만 열심히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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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조선일보 LA와 함께 뜁니다] "나랏 일 맡아 부담 크지만 열심히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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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원로회의 미국서부지부 김향로 상임이 지난 8일 조선일보 LA를 방문해 기념포즈를 취했다.(위) 김 의장이 화가로 활동시절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   김문호 기자 

 

(사)국가원로회의 미국서부지부 김향로 상임의장 


할리우드서도 알아주던 유명화가  

마이클 잭슨·스필버그 등이 단골

오일 페인팅으로 생생하게 재현

"평생 하나님 붙들고 산 게 큰 행운" 


“대한민국의 올바른 미래를 위해 봉사하는 단체예요. 그런데, 막상 큰 책임을 맡고 보니  범위도 넓고 걱정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더 열심히 기도하고 있지요.” 


(사)국가원로회의 미국서부지부 김향로(82) 상임의장. 김 의장은 지난 해 1월 서부지부가 창립하면서 초대 상임의장을 맡아 단체를 모범적으로 이끌고 있다. 지난 1월 27일엔 부에나파크에 있는 로스코요테스 컨트리클럽에서 50여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 1주년 기념행사도 잘 마쳤다. 


지난 1년간 서부지부를 맡아 운영하며 개인적인 걱정과 달리 6·25전쟁 영웅 위트컴 장군 추모 세미나, 3·1절 행사, 임시정부 수립기념일, 메모리얼데이, 6·25전쟁 73주년 기념식, 백선엽 장군 추모식, 6·25전쟁 정전 70주년 및 한미동맹 70주년 기념식, 박정희 대통령 추모식 참여 등의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사실, 김 의장은 서부지부 리더를 선임할 때 몇 번이고 고사했다고 했다. 지난 8일 부인(케티 김)과 함께 조선일보 LA를 방문한 김 의장은 “교회(글렌데일 충현선교교회)만 열심히 섬겼을 뿐,  한인사회 활동엔 적극적이지 않았기에 부담스러웠죠. 한국 국가원로회의 측 관계자들이 지부 결성을 위해 LA에 와서 저를 포함해 여러 사람을 만난 것도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한 교회를 37년이나 꾸준히 다니고 원로장로이면서도 구역장 교육까지 맡아 하는 등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두고 ‘이런 분이 맡아야 한다’고 적극 추천했다고 하더라구요.”


김 의장은 국가원로회의를 이야기할 때보다 교회라는 말을 꺼낼 때 더욱 진지한 표정이 됐다. 김 의장의 LA 외출 때마다 '운전사' 역할을 다 하는 케티 김 여사는  “김 의장은 요즘도 새벽 3시면 일어나서 성경을 읽고 새벽기도에 나가요. 하루도 빠지지 않아요”라고 소개했다. 김 여사는 고령인 남편이 운전하면 불안해서 집인 글렌데일에서 멀리 출타할 때마다 동행하고 있다고 살짝 덧붙였다.    

 

김 의장의 본업은 ‘화가’다. 벌써 10여년 전에 붓을 놓은 상태이긴 하나 최근 들어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 들어 '워밍업'을 하고 있다고. "한인사회에서는 김 의장을 잘 몰라도 주류 미디어에서는 신문·방송 등을 통해 엄청 많이 소개됐어요. 특히,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한창 때 'Ro Kim'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지요."


김 의장의 특기는 오일 페인팅. 연필 밑그림도 없이 곧바로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린다. "초상화, 정물화 등은 물론이고 말, 보트, 집, 농장, 비행기 심지어 흐릿한 흑백사진까지도 생생하게 재생해 내는 실력이 탁월해요. 그런 의장님 그림은 LA와 애리조나의 여러 뮤지엄, 헌팅턴라이브러리, USC뮤지엄에 지금도 걸려 있어요. 빌 클린턴 대통령, 김영삼 대통령을 그려 백악관, 청와대까지 초청받아 다녀오기도 했지요." 


마침 보청기를 가지고 오지 않아 소통에 조금 문제가 있자 케티 김 여사가 좀 더 자세히 설명에 나섰다. "서른살 때 미국에 와, 친구 권유로 본격적으로 오일페인팅을 하기 시작했는데 '대박'이었다고 해요. 글렌데일 갤러리아에 조그맣게 화실을 꾸리고 그림을 그려줬는데, 입소문이 나서 할리우드 셀럽인 스티븐 스필버그, 마이클 잭슨, 윌리엄 홀든, 토니 올랜도, 데이몬 와얀스 등은 단골로 찾아왔지요. 멀리 남미와 유럽에까지 소문이 나 초상화로 유명한 '램브란트가 환생했다'는 말까지 들을 정도였어요." 김 의장은 그런 실력을 인정받아 글렌데일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3년 간 학생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림이야기가 이어지자 김 의장의 얼굴에 아쉬움이 스쳤다. 경북 포항이 고향인 김 의장은 어렸을 때부터 그림이 좋았지만 "'환쟁이'가 되면 먹고 살기 힘들다"는 부모의 반대로 마음 껏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고 했다. "그 시절에 다 그랬지만 아쉬움이 있죠. 7살 때였는데 연필로 그림을 그리면 부모가 모두 빼앗고 아예 못하게 했으니…."


그래도 몰래 그림을 그리며 미래를 꿈꾸던 김 의장은 미국에 와서 재능을 꽃 피울 수 있었고 후일엔 그렇게 반대하던 부모님을 미국에 초청해 성공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 "부모님이 '미안하다'고, '그런 재능을 몰랐다'며 펑펑 우셨지요." 


슬하에 1남1녀를 둔 김 의장 부부는 딸이 뛰어난 그림실력을 갖추고 있지만 스탠포드대를 나와 변호사로 일하고 있고, 아들도 병원에서 근무하며 잘 살고 있어 너무 고맙고 감사한 일이라며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라고 강조했다. 


"화가로 성공하고, 자식들도 잘 되고, 국가가 하는 일도 맡게 되고(국가원로회의 상임의장)…, 다 하나님을 붙들고 열심히 산 덕이겠지요."


김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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