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영수의 코미디 40년 연예비사 밥 딜런보다 위대한 서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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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영수의 코미디 40년 연예비사 <36-2> 밥 딜런보다 위대한 서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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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연을 맞은 서유석 부부가 후배 가수 선우 영아(왼쪽)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다. /엄영수 제공



#. 하룻밤에 가수되고 이튿날 밤 TV 출연이라! 

서유석의 회고. 학교 근처 혜화동에 있는 카사노바란 주점에서 지배인으로 일 한 적이 있다. 직원이나 손님 영업관리 하는 게 아니고 사고처리반 팀장이다. 학생증이나 사전을 맡기고 술값 외상한 후에 나타나지 않는 학생을 자취방, 하숙방에 찾아가 수금하는 일을 했다. 회사원의 경우는 직장으로 찾아간다. 별로 좋은 직업이 아니란 걸 알지만 학비가 필요했다. 운동부 선후배 이끌다 보니 돈이 절실했다.


어느 날 업소에 구봉서 선생님이 오셨다. 삼선교 댁에 가시다 들리셨다. 잠시 후에 서영춘 선생님도 오셨다. 조용히 술 한 잔만 하고 가신다 하셨는데 기타를 치고 노래를 하셨다. 넌 뭐하냐고 물어서 지배인이라 했더니 손님도 없는데 지배인이 어디 있냐? 너도 앉아 같이 한 잔 하자! 그리고 '노래 좀 해봐' 하면서 기타를 밀어주셨다. 


한두 곡 해 드렸더니 너 가수해라. 노래는 내가 좀 아는데, 넌 가수야. 한 번도 가수를 하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당황했다. 


다음 날 다시 오겠다고 하시더니 TBC 쑈쑈쑈 조용호 PD, 그랜드쑈 김연호 PD를 데리고 오셨다. 그 다음날 TBC방송국에 출연하러 갔다. 코러스를 해주는 가수들이 조영남 트윈폴리오(송창식, 윤형주) 최영희 등 일류 가수들이었다. 그날부터 방송 출연가수가 됐다. 가수가 이렇게 쉽게도 되는구나 세상 참 살기 쉽구나 생각했다. 


가수로 활동하다가 이름이 나자 라디오 프로에 DJ를 하게 됐다. 구봉서 선생님의 아들 구인회가 '구공탄과 연탑집게' 라는 듀엣가수를 결성, 음반을 내서 방송에 틀어 달라고 찾아왔다. 몇 시간 안 돼서 구봉서 선생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우리 인회가 거기 찾아갔지, 그 애가 판 틀어 달라는 거 틀어 주면 안된다. 절대 안 돼. 가수를 할려면 나 하고 부자지간의 인연을 끊자고 얘기했으니까, 그렇게 알고. 그 부탁없던 걸로 해 알았지? 너무 강경하게 단호히 말씀하셨다.


나는 한참을 가수를 하게끔 그냥 놔두시는 게 어떻겠냐고 한 번 맡겨 보시라고 열과 성을 다해 말씀드렸다. 절대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나도 할 말을 했다.

 

아버님은 왜 남의 자식은 가만히 있는데 가수하라고 시켜서 가수 만드시면서, 선생님의 아드님은 가수를 하겠다고 저렇게 애원을 하는데 못하게 말리십니까? 자기 자식은 못하게 말리고 남의 자식은 시키면 그게 이치에 맞습니까? 앞뒤가 안 맞지 않습니까. 한참 들으시더니 너 그러다 앞뒤로 맞을래? 맞아 볼래?


#. 미끼 상품 서유석으로 청취율 1위 등극

현대자동차가 1974년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자동차 대량 생산국에 진입하는 데에 성공했다. 우리나라 기술로 차량의 전체 부품을 다 만들어 내게 됐다. 마이카 시대, 오너 드라이버 시대, 차가 날로 늘어나다 보니 차량 안에 앉아 있는 사람 수가 집에 앉아 있는 사람 수보다 많아진다는 것이다.


차 속에 사람들은 차 밖의 세상변화를 듣고 싶다. 내 차의 교통상황을 알고 싶다. 라디오를 많이 듣게 할려면 교통인구를 붙잡아야 한다.


MBC 푸른 신호등은 교통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18년 6개월 동안 지속된 간판프로였다. 새로 출발하는 프로는 성공여부가 진행자에 달려있다.


서유석에게 문의가 왔지만 AM, FM에 하는 프로가 잘 나가니 다른 프로에 관심이 없었다. 교통 프로니까 우선 정확해야 하고, 신뢰가 가는 인물이어야 하니 아나운서가 적격일 것이다. 만약의 경우 잘못 되더라도 본전은 한다. 최악의 경우 다른 프로로 옮겨가면 그만이다. 그때 상황에서 상승세를 타고 있던 차인태 아나운서를 추천했다. 제작부에서도 인기, 경험, 능력을 종합해 볼 때 적합하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본인이 거절했다.


TV, 라디오에 인기프로를 몇 개씩 하고 있는데 위험한 프로를 할 이유가 없다. 앞 날이 불투명한 프로에 손댔다가 청취율에 실패하면 한계가 왔다, 떠날 때가 됐다, 심지어는 말아 먹었다, 죽쒔다 라는 식의 거친 비난을 받게 된다. 하고 있던 프로마저 빼앗기고 뒷전으로 밀려나는 대재앙을 뒤짚어 쓸 일이 있을까? 


푸른 신호등은 출발하기도 전에 빨간 신호등이 됐다. MBC는 서유석을 설득했다. 서유석은 위험한 일을 잘한다 아니 잘 저지른다. 도전정신 모험정신 개척정신이 강한 연기자다. 요즘 말하는 험지를 겁내지 않는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다.


DJ나 MC들이 푸른 신호등을 꺼리는 이유가 있다. 상대편 방송 TBC의 송해 어르신을 앞세운 ‘가로수를 누비며’ 가 이미 청취율을 선점하고 독식 상태에 있었고, 우후죽순처럼 교통 프로가 난립하니 푸른 신호등은 뒤늦게 출발할 수도 없고, 안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처했다. 출발과 함께 푸른 신호등은 계륵이 되지 않을까 겁이 났던 것이다.


서유석은 가로수를 누비며와 진검승부를 펼친다. 방송이 끝나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정동 일대를 돌며 특히 전파상이나 TV라디오 판매상 오디오 기기 수리상 등 스피커를 통해 밖으로 라디오 방송을 내보내는 곳을 찾아다니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MBC 푸른 신호등 서유석입니다. 라디오 주파수를 점검해 드리러 왔습니다.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MBC 문화방송으로 고쳐서 맞춰 놓았다. 상가 주인들은 인기가수이자 방송진행자가 직접 찾아오는 것을 난생처음 봤다.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서 인사를 나누고 반갑게 맞이했다. 여태까지 다른 방송 들은 것을 미안하게 생각했다.


서유석이 떠난 후에 이이야기는 오래도록 화제가 됐다. 이제 주파수는 불변이다. 죽으나 사나 오직 MBC 푸른 신호등 뿐이다. 어제는 광화문, 그제는 종로, 내일은 청계천 식으로 서울 시내를 6개월 동안 돌아다니며 스타 마케팅을 전개했다. 남대문시장, 동대문시장, 버스회사, 택시회사, 안내양 기숙사 등 라디오가 있는 곳마다 누비고 다녔다.


방송 진행자를 많이 봐 왔지만 서유석은 방송 역사상 전문후무한 최초이자 마지막 진행자일 것이다. 나중에는 왜 우리집 라디오는 찾아오지 않느냐며 방송국에 항의가 왔다. 기타를 메고가서 주파수 설치와 더불어 위문공연도 즉석에서 노래 한 곡씩을 선물했다. 사실은 방송전파를 팔면서 미끼상품을 던지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발상을 했을까. 방송 DJ, MC 스타로서 상상이 안 가는 일을 하고 다니니 깊은 감동을 받았다. 알게 모르게 방송국은 항상 갑이고 청취자인 우리는 을이다. 방송국은 고압자세다. 이런 인식이 팽배해 있었는데 방송이 고개를 숙이고 찾아와서 사정을 하니 얼마나 놀랐겠나? 천지개벽할 일이다. 정확히 6개월 후 푸른 신호등은 청취율에서 모든 방송을 앞질러 나갔다. 부동의 라디오 교통방송 1위를 고수하기 시작했다. 



#.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 기타 치고 노래하련다

1995년 가을 여의도 63빌딩 컨벤션 센터에서 인기가수 서유석의 MBC 라디오 푸른 신호등 MC 18년 근속 퇴임 기념식 겸 축하연이 성대히 거행됐다. 행사장뿐 아니라 여의도 전체가 교통대란 교통마비가 됐다. 교통 글자가 붙은 우리나라 모든 단체가 집결하였다. 교통가족의 잔칫날이라고 보면 된다. 서유석의 펜 특히 모범운전자들이 차를 몰고 달려와 행사장은 아수라장, 아비규환 속에 빠졌다.


방송국이 연기자에게 퇴임식을 치러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거의 보지 못했다. 그 긴 시간 동안 장수프로가 되는 것은 사건사고가 없어야 하고, MC가 인기를 유지해야 가능한 것이다. 방송국은 어떤 문제로 프로그램이나 진행자가 나쁜 뜻으로 언론을 타게 되면 진위를 가리거나 책임 소재를 따지지 않는다. 

가장 손쉽고 부담없이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한다. 그것이 바로 연기자 즉결처분이다. 시끄러운 것을 잠재우는 것이 중요하다.


방송국이 공격을 받지 않는 것이 급선무다. 연기자는 많다. 대타를 세우면 된다. 연기자가 억울하거나 잘못이 있거나 없거나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까지는 늘 이렇게 처리해 왔다. 그래서 연기자는 100% 깨끗해야만 한다. 이런 문화 속에서 18년 6개월을 버텼다는 것은 기적이다. 방송사에 길이 남을 대기록이다.


이날 식장에서 눈길을 끈 것은 국회 쪽에서 대거 몰려온 국회의원들이다. 단순히 국회가 가까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전부터 서유석의 총선 출마가 큰 관심사가 돼 있었다. 그동안 한나라당과 국민회의는 영입을 위해 물밑 작업을 해온 것으로 보도가 된 적도 있다. 퇴임식 자리에서 혹시 출마선언이나 입당선언 같은 뉴스가 나올 가능성도 있어서인지 각 언론사에서도 많은 취재진이 나와 있었다. 축사를 하는 문화예술인 정치인들은 한결같은 목소리를 냈다.


서유석이 최장기간동안 최고의 인기를 유지하며 최고의 품질 좋은 방송을 만든 푸른 신호등 프로와 진행자 서유석에 대하여 경의를 표하고 역대 가장 훌륭한 방송인으로 평가했다. 정계에 와서 나라 민족을 위해 큰 일을 할 수 있고 당연히 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하였다.


정당 관계자들이 영입을 위하여 방송국 경영진에게 협조를 요청했는가를 물었다. 서유석은 경영진은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회고하였다. 그분들께 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 빨리 결정을 해야 하는데 개인적인 사정으로 시간이 지체됐음에 안타까웠다는 말도 전해들었다.


서유석을 영입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별표전축 시대에 '가는 세월'로 100만장 이상의 음반이 팔린 대중적인 가수다. 청년문화의 상징 통기타 포크팝의 전설로 젊은이의 지지를 받는다. '홀로 아리랑' '진주남강' 구전 민중가요를 발표하여 작품을 만들었다.


교통문화발전에 기여해서 교통가족의 지지를 받는다. 퇴임식 후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국회 입성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양당 정치제도 현실에서 무소속 출마는 위험성이 크다. 서유석은 양당정치의 피해를 줄이고 갈등과 불신으로 점점 극단적으로 싸우는 양당 대립구도를 완화시키려고 무소속을 택했을 것으로 보인다. 선거 후 다시 음악세계로 돌아온 서유석은 기타치고 노래하며 공연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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