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건국전쟁' 시사회 - 100년 미래를 터 닦은 애국혼의 결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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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건국전쟁' 시사회 - 100년 미래를 터 닦은 애국혼의 결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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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창 박사

한미맥아더장군기념사업회 미주총회장



연신 눈시울을 닦으며 애국심을 강화한 시간이었다. 지난 16일 서울 용산역 CGV 1호관에서 김덕영 감독의 영화 '건국전쟁'을 관람했다. 


영화의 배경은 이렇다. 한국 4·19 세력의 객관성을 배제한 일방적인 매도와 김일성 주사파들 때문에 공산통일이 안 되었다는 식의 부정적 사관 주입으로 이승만 박사를 반민족주의자로 매도한 팩트들을 감지하고 김덕영 감독은 역사적인 팩트와 자료, 고증을 섞어가며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을 만들었다. 박수를 보낸다.


영화는 이승만 박사의 어린시절과 청년시절을 비롯해 유학시절과 애국활동시절의 독립활동과 대한민국의 건국과정을 다루었다. 여기서 김구에 대한 새로운 조명을 삽입하여 김일성에게 농락당하는 김구의 모습을 밝혀지지 않은 다큐 멘트로 보여준다.


본 영화는 1948년 이전과 건국과 6·25 전쟁을 통한 한미상호보호조약을 만들어 내는 과정과 그로 인한 한국의 활로를 잘 이어나갔다. 특히 이승만 박사가 초대 대통령으로 뉴욕을 국빈방문 해, 카퍼레이드 환영식을 받는 장면은 잠깐이지만 매우 감동적이었다. 


이후 근대화의 초석을 깔아 놓는 노력들도 보기 드물게 잘 다루어 전달했다. 이승만 박사가 4·19 이후 권좌에서 물러나 15일간 하와이로 떠나는 과정에서 망명으로 의도적으로 명예사살하는 동아일보나 경향신문의 오버랩된 것도 사실적으로 잘 다루었다. 


90 나이에 시신으로 고국을 밟게 한 세력들에 대한 의분도 가지게 했다. 여기서 확인한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역사적 업적은 다음과 같다. 


첫째, 그는 자유국가 혁명가였다. 그는 조선시대 전제주의와 악랄했던 일제문화에 물든 한국을 헌법을 제정해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정착시킨 자유국가 혁명가였다. 


둘째, 그는 민주주의 정치상황 하의 천재였다. 막스와 레닌, 스탈린의 공산주의 문화권이 지배하던 해방 후 절망적인 한국 상황에서 자유민주국가로 대한민국을 건국하는 리더십을 보여 주었다. 


셋째, 그는 시대를 여는 선구자였다. 선교사들이 암울한 시대의 여명을 밝힌 한복판에서 애국심에 신앙심을 간직하게 되어 미국유학 후 미국에 30여 년을 체류하면서 교육과 정신교육으로 한국인들에게 정신계몽운동을 했다.


넷째, 그는 시대의 지배적 문화권을 바꾸는 사회문화 개혁가였다. 그는 건국하면서 석학적 지도자답게 남녀평등, 소유평등, 교육평등의 실질적 법적 조치로 여성에게도 선거권 피선거권을 주었고, 노비상태에 있는 빈자들에게 소작농 개혁으로 자기땅을 소유한 애국인들이 되게 하였다. 


다섯째, 그는 창의적인 안보의 귀재였다. 그는 전쟁 와중에도 2년 가까운 긴 타협의 기간을 거쳐 한미상호보호조약을 이끌어 내며 한국을 지키게 했다. 미국의 경제적 지원을 이끌어 내 전후복구에도 책임을 지도록 이끌었다.


여섯째, 그는 선거제도 확립과 활용의 천재였다. 그는 건국하면서 투표제도를 통해 의회를 구성하고 대통령을 뽑게 함으로써 객관적인 리더십으로 김구 등의 큰 장애들을 극복했다. 


일곱째, 그는 당시 한국인들이 상상할 수도 없었던 세계적 국가 리더십을 확립한 애국자였다. 이승만 건국대통령이 확립해 준 한국의 헌법은 오늘에 이르러서도 보편타당하게 취급하고 있다.


이러한 이승만 박사의 건국전쟁은 기초가 튼튼하면 백년대계도 끄덕없다는 국가경영의 사표가 되었다.


건국전쟁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내용들도 있다. 이승만 박사가 대한제국의 적조여권을 수십 년간 간직한 애국혼, 국민의 마음 속에 교육활동으로 파고든 신앙애국의 정착과정, 6·25 전쟁을 구국의 영웅 맥아더 장군과 막아 낸 순간들, 전 국민의 마음에 새기다시피한 민족정기, 일치단결, 북진통일 등의 이야기를 담은 다음 영화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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