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근 칼럼] 벽사의 청룡 날아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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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칼럼] 벽사의 청룡 날아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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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우 근 

변호사 / 숙명여대 석좌교수 


며칠 뒤 설날과 함께 갑진년(甲辰年)의 청룡(靑龍)이 날아오른다. 서양의 용은 사악한 괴물(그리스 신화)이나 간교한 악령(성서)으로 나타나지만, 동양의 용은 허물을 벗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영물(靈物)로 그려진다. 왕의 자리를 용상(龍床), 임금의 옷을 곤룡포(袞龍袍)라 부를 만큼 용을 신성하게 여겼다. 특히 청룡은 잡귀를 쫓는 벽사(辟邪)의 힘을 지녔다고 한다. 관우는 임금을 겁박하는 역적을 향해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며 용맹을 떨쳤다. 


청룡(푸른 용) 백호(흰 호랑이) 주작(붉은 새) 현무(검은 거북이)의 4신(神)은 동서남북의 네 방위와 봄·여름·가을·겨울의 4계절을 상징하는데, 동쪽과 봄을 주관하는 청룡은 4신 중 유일한 상상의 동물이다. 봄의 새싹을 키워내는 청룡은 깊은 바닷속 용궁에 살면서 물과 나무, 비와 바람, 천둥과 번개를 다스리며 생명의 탄생을 돕는다고 한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백호·주작·현무와 함께 그려진 청룡은 조선의 경복궁 건춘문 천장에도 그려졌고, 수원 화성의 동문인 창룡문의 명칭도 청룡의 다른 이름 창룡(蒼龍)에서 온 것이다. 불교미술에서는 고통의 이승을 떠나 극락의 저승으로 건너가는 반야용선(般若龍船)을 용의 몸으로 표현한다. 반야는 지혜를 뜻한다. 봄과 생명과 지혜를 품은 청룡의 새해를 맞는다니 상서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교활한 정치꾼들이 정의의 겉옷을 훔쳐 걸치고 비판과 질정(叱正)의 호소에 도리어 불의의 누더기를 덮어씌우는 카오스의 시대…. 6‧25 남침과 핵무장을 주도한 세습독재자를 마치 평화의 일꾼인 것처럼 우러르는 선동가들, 학문과 연구를 제쳐두고 정치권을 힐끔거리는 폴리페서들, 경제적 약자의 고통을 외면한 채 이기적 영토확장에만 몰두하는 악덕 기업인과 대형노조의 일부 정규직 간부들, 진실을 멀리 벗어난 자리에서 신도들을 미혹하는 타락한 직업종교인, 그 인간 잡귀들 또한 오늘의 카오스에 짙은 어두움을 더하고 있다. 


지난해, 자기 이력을 불의와 부도덕으로 겹겹이 채워온 사람들이 거꾸로 정의와 도덕을 목청껏 외치는 위선의 고함소리가 시끄러웠다. 공정과 평등의 함성은 허공 속에 덧없이 흩어지고, 돌아온 것은 누추한 이기심의 메아리뿐이었다. 평소 ‘개천에서 용이 되어 날아오르지 않고 붕어‧가재‧개구리로 살아도 행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던 누군가는 제 아들딸의 학력을 부당하게 부풀려 용처럼 날아오르게 하려 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뒤에도 여전히 떳떳하다고 강변한다. 청룡의 해에 그 용꿈이 더 깊어지지 않을까 궁금하다. 


분열의 불씨를 흩뿌리며 증오 사회를 선동하는 잡귀의 요설(妖說)에 넘어가지 않는 것은 국민의 몫, 주권자의 의무다. 선악을 거꾸로 뒤집는 요망한 악마를 물리치는 청룡의 해 아닌가? 광기 서린 대중선동, 사악한 흑색선전, 속임수의 선심 공약 따위에 휘둘리지 않는 국민의 이성, 주권자의 분별력이 나라의 운명을 좌우한다. 신념과 통찰, 이해와 소통, 추진력과 포용력을 두루 갖춘 균형 잡힌 일꾼을 냉철하게 가려내지 않으면 안 된다. 경륜 없는 대통령, 무능한 국회의원, 범죄용의자 같은 정치 요괴(妖怪)들이 나라에 얼마나 큰 불행을 가져왔던가? 


핏속의 노폐물을 걸러내 혈액을 정제하는 투석처럼,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정치권 전체에 인물과 정책의 투석이 시급하다. 장벽을 높이 쌓아 근근이 버티는 무능한 보수가 아니라 새로운 길을 두려움 없이 펼쳐가는 열린 보수로, 꿈속에서도 보수의 궤멸만을 기획하는 사특(邪慝)한 진보가 아니라 보수와 더불어 미래를 함께 열어가는 겸손한 진보로 탈바꿈하기 바란다. 


“미래를 믿지 말라. 죽은 과거는 묻어버려라. 살아있는 현재에 행동하라.”(헨리 W. 롱펠로) 지난 과거는 기억 속으로 물러가고, 오지 않은 미래는 희망 속에 그려질 뿐…. 과거와 미래는 모두 우리에게 없는 시간, 실재하는 시간은 현재뿐이다. 올해는 과거의 역사를 올바로 기억하면서 미래의 희망을 정갈하게 품은 현재로, 하늘을 훨훨 나는 청룡의 지혜가 사악한 인간 요괴들을 쓸어버리는 벽사의 새해로 환히 열리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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