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영수의 코미디 40년 연예비사 민요로 모진 세월 이겨낸 국보 김세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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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영수의 코미디 40년 연예비사 <35-1> 민요로 모진 세월 이겨낸 국보 김세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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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칭찬은 고래를 만든다

가수왕 상을 받았다 해서 평생 가수왕이라고 불리는 스타가 있다. 듣는 본인은 얼마나 영광스럽겠나? 왕 앞에서 왕왕 노래할 때가 엊그제였는데 노래하던 중에 총을 쏘는 장면도 보지 않았던가? 그러고 보니 가요계의 대통령도 있었다.


대통령이 막강한 권력을 독점할 때 유행하다가 이런 사건 후로 안 쓰는 것인가? 권불십년은 지금 절반으로 줄었다. 스타 조용필에 대해서는 모든 언론이 가왕이라고 표현하는데 가수왕 하는 것보다는 더 품위가 있고 폭이 넓어보인다.


나훈아는 가요계의 황제라고 불렸다. 천하통일을 했다는 뜻일 것이다. 왕중왕이라고 하면 더 솔직한데 어감상 경박하다는 느낌이 들었을까? 가요계의 황제폐하라 하면 아부한다고 비난을 받을까? 다음엔 어떤 존칭이 나올까 기대가 되면서 걱정도 된다. 


최장 최고의 국민가수 이미자! 이름만 들어도 눈물이 난다. 엘레지의 여왕! 하는 것이 가요의 여왕하는 것보다는 더 구체성이 있고 접근성이 좋다. 


슬픔의 대명사! 이 세상 모든 한과 서러움을 한 몸에 지닌 여인을 말하니 그녀의 노래는 꼭 들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인기를 초월한 가수 조영남은 어떤가? 듣고 보니 그럴 듯하다. 어떤 수식어도 달지 마라. 내 갈 길 가는 가수다. 인기나 팬을 의식해서 살지 않았다. 실력대로 하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보인다. 자기류의 자유자재로운 무대 매너로 지난 57년간 우리를 즐겁게 했다.


클래식과 대중음악을 넘나들며 미술까지 말하는데, 따라가야지 어쩌겠나? 남진은 스타의 권위를 모두 내려놓고 쉽게 대중과 어울리는 친화력이 강한 가수다. 계속 진화하고 있다. 수퍼스타! 팬클럽의 원조! 영화배우 겸 가수! 오빠가수! 많은 유혹과 권유가 있었지만 노래 외에는 다른 길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민족가수! 불멸의 가수! 영혼을 노래하는 가수! 열성 팬들이 좋아하는 가수에게 보내는 찬사는 결국 K팝을 완성하여 세계를 정복했다.


#. 민요의 여왕! 김세레나 탄생하다!

김세레나를 소개할 때 사회자들은 민요의 여왕! 이 나라의 국보! 한결같이 외친다. 그리고 애국자가 된 듯이 엄숙해진다. 


김세레나는 국악을 전공했고 창을 잘했다. 한복이 잘 어울렸고 고전무용도 완벽했다. 예쁘고 목소리도 꾀꼬리 같으니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우리의 얼이 담긴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노래 민요를 부르자! 고심 끝에 결정했다. 


그 당시 김세레나가 출연하는 동아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담당자 강시영 차장 PD가 가수를 겸업하고 있었다. 산장의 여인으로 일류가수가 된 권혜경! 그의 히트송 중에 '호반의 벤치' 라는 노래는 강시영 PD와 듀엣으로 같이 불러서 크게 인기를 끈 노래다.


강시영 PD가 김부해 작곡가에게 의뢰했다. 어려서부터 귀동냥으로 들었던 구전민요를 재연해서 부르면 즉석에서 악보를 만들었다. 가사는 이미 김세레나가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게 자기식으로 쉽게 개사를 했다. 


40여 곡을 발굴하여 TV와 라디오를 통해 김세레나가 열창으로 방송했다. 부르는 노래마다 국민민요로 대히트를 했다. 


민요가 가요 베스트텐 1위를 그것도 그렇게 장기간 한 적은 없었다. 가요사에 이변이었다. 어린학생의 민요에 대한 열정!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히트송에 대한 집념! 드디어 결실을 보았다. 


민요로도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도록 전국적으로 유행시킨 공적은 가히 국보라고 칭송할 만하다. 해외에 동포위문 공연을 가면 '아리랑' '도라지' 밖에는 더 이상 함께 부를 노래가 없는 게 망신스럽고 안타까워서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는 심정으로 직접 현대민요 신민요를 만들어 냈다. 위대한 일이었다.


김세레나의 민요열풍 이후 한국사회에서 일반대중이 국악과 민요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 사선을 밟는 여자!

연예인이 하는 일 중에 군 위문공연이 있다. 민중에게 받은 인기와 사랑을 민중에게 환원하는 것이다. 봉사활동 중에 가장 보람있는 일이다. '뽀빠이' 이상용 개그맨 선배는 일생을 군에서 보냈다. 

한국 최고 군 위문 전문MC 김종수란 분은 3000회의 위문공연을 했다. 군에서 가장 원했던 연예인은 김세레나였다. 실제로 전후방 가리지 않고 최다 출연을 기록했다.


월남전이 치열했던 시기에 전쟁터에 세 번을 갔다. 국가 특별 유공자로서 송해 어르신과 함께 등록이 돼 있다.


어떤 사고가 나더라도 감수한다는 서약서를 쓰고 갔다. 포탄이 떨어졌으나 다행히 불발탄이이서 살았고, 이동 중에 게릴라 습격을 받았으나 헬기로 대피해 위기를 모면했다. 병사가 베트콩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고를 직접 옆에서 목격하기도 했다. 


생사를 넘나드는 아군적군이 식별이 안 되는 늘상 공격을 당하고 적군에 둘러싸여 있는 곳을 제발로 세 번씩이나 찾아가는 일은 김세레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 고향 친구여 영원하라

김홍신 작가의 회고. 김세레나의 중·고등 학생시절은 가난 때문에 바쁘고 지치고 전쟁 후유증으로 어려운 삶을 살았다. 민주화, 산업화 운동으로 갈등과 대립이 심화되면서 정신적으로 암울한 시대였다. 학생이 대중문화예술의 천재적 재능이 있다 한들 학교나 사회가 충분한 배려를 하는데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전문가나 지도자도 없었고 제도나 시설이 준비되지 않았다. 김세레나는 절박한 환경 속에서도 스스로 노력했고 자기개발을 충실히 했다.


논산에서 스승이 없이 홀로서기를 하다가 서울국립국악학교로 전학하여 가수 데뷔와 더불어 민요의 여왕, 가요계의 대스타, 그야말로 어떻게 이런 일이! 독학에 자수성가! 모두가 부러워 했다.


이것은 사실 위험한 일이기도 했다. 모든 성공에는 시기와 질투가 따른다. 소년급제라는 말이 있다. 일찍이 출세하면 불행해지기 쉽다는 뜻이다. 높은 지위에 오르고 유명해 지고 돈을 많이 벌게 되면 주변 사람들의 유혹에 쉽게 빠져 모든 것을 잃고 좌절하게 된다고 한다.


스타는 감히 누가 나를 속일 것이란 생각을 하지 못한다. 바르게 살았고 누구와도 불편한 관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타가 된지 60년 이라는 긴 세월이 지난 오늘도 김세레나는 별다른 일 없이 열심히 노래하며 성실히 살고 있다. 자기관리, 인기관리, 건강관리를 잘했다. 


엔터테이너는 대중을 즐겁게 해주는 사람이다. 월남 전선에서 국군장병에게, 사막의 건설현장에서 노동자에게, 탄광의 막장에서 석탄을 캐는 광부에게, 농어촌의 어르신에게, 도시의 서민 자영업자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며 그들을 위로 위안하는데 일생을 바쳤다.


언제 어디서라도 팬들이 부르면 한복을 입고 다소곳이 걸어나와 공손히 절하고 열정적으로 노래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고향친구로서 오랫동안 가깝게 지낸 한국의 유일한 국보, 김세레나의 앞날에 영광과 행복이 늘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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