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의 생활 인문학]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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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의 생활 인문학]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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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기세로 덤비는 독일군을 상대로 세계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처칠 수상은 1953년 노벨상을 받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가 노벨 평화상이 아닌 노벨 문학상 수상자(受賞者)였다. 처칠 수상이 전후에 쓴 <회고록>의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문학상을 받았다. 그런데 심사 결과를 발표하며 한림원은 처칠의 노벨 문학상 수상에는 그의 탁월한 연설문도 고려되었다고 밝혔다.  

   

명연설가 처칠은 역사에 길이 빛나는 연설을 남겼다. 1940년 5월 13일의 취임 연설은 “나는 피, 수고, 눈물, 그리고 땀밖에 드릴 것이 없다”라는 명문장을 남긴 유명한 연설이다. 또 1941년 12월 26일 미국 의회에서 연설도 역사적인 명연설이다. 더러는 그의 연설문의 문학적 가치를 주장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처칠이 1940년 6월 4일에 전쟁을 독려했던 연설을 좋아한다. 이 연설은 역사에 길이 남는 덩케르크 철수작전 종료와 함께 전해진 연설이다. 처칠은 덩케르크의 기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려운 전황을 알리며 어렵지만 중요한 전쟁에 동참해 달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아울러 그는 전쟁을 이끄는 지도자로 영국국민과 전 세계에 강력한 전투 의지를 천명했다. 

   

1940년 5월 독일군이 프랑스 ‘덩케르크’에 주둔한 연합군 40만을 포위했다. 전황과 전력으로 보아 연합군은 문자 그대로 독 안의 쥐였다. 수상에 막 취임한 처칠은 당시 영국 국왕 조지 6세와 교회에 강력한 기도를 요청했다. 조지 6세는 5월 23일에 5월 26일(주일/Sunday)을 국가 기도의 날로 선포했고 온 영국교회는 기도했다. 모든 각료,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간절히 기도했다. 당시 모든 교회 주변은 입장을 기다리는 성도들의 긴 줄이 있었다(아래 사진 참조). 

   

철수작전 기간에 이상하게 독일 공군은 폭격을 멈췄다. 당시 전황으로 볼 때 거의 불가사의한 일이다. 독일 진영에 심한 폭우로 전차가 진흙탕에 빠졌다. 반면에 영국군 진영은 쾌청한 날씨와 잔잔한 바다로 철수작전은 큰 성공이었다. 당시 독일군은 진흙탕에 빠진 전차를 연합군이 공격할 줄 알고 전전긍긍했단다. 모든 것이 기적적이다. 그래서 덩케르크의 기적이라 부른다.

   

이 덩케르크 작전 종료(6월 4일)에 즈음하여 처칠은 연설했다. 처칠은 “우리는 굴복하거나 꺾이지 않고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프랑스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바다와 대양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해변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상륙지점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들판과 거리에서 싸울 것입니다”라며 전투 의지를 불태워 유럽의 단합을 이끌고 결국 승리했다. 

   

한동훈 국민의 힘 비대위원장은 취임하며 처칠의 연설을 모방했다. 역사의 탁월함을 배우고 참고할 줄 아는 것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연설문장 몇 개의 모방으로는 부족하다. 전쟁의 승패를 좌우했던 절박함과 뜨거운 기도를 배웠으면 좋겠다. 영국 왕실과 처칠은 2차대전 6년간 국가 기도의 날을 7번 선포했다. 처칠과 영국은 기도로 전쟁을 수행하고 기도로 위기를 극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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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대로 우리는 9회말 2아웃 2스트라이크, 절박한 상황이다. 국가적 과제가 그렇고 다음 세대를 잃은 한국 교회 상황이 절박하다! 우리는 절박감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진짜 절박하면 기도가 절로 나온다. 배가 침몰하는 위기에 ‘진보니 보수니’하는 시시한 논쟁이 쓸모 있을까? 모쪼록 한국 교회와 성도들이 처칠과 영국교회처럼 절박한 기도에 힘을 모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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