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생각 없이 걷고 싶어 떠난 히말라야 여행


홈 > 로컬뉴스 > 로컬뉴스 > 문화라이프
로컬뉴스

아무런 생각 없이 걷고 싶어 떠난 히말라야 여행

웹마스터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바라다 본 마차푸차레봉이 새벽 일출에 황금색으로 물들어 있다.

히말라야 마차푸차레봉. 네팔말로 '물고기 꼬리'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 그대로다.

우리 트래킹 대원들이 카투만두의 한 샤브샤브집에서 엄홍길(가운데) 대장과 저녁식사를 했다.

히말라야 트래킹에 나선 재미스키협회 6명의 대원들. 론 김 제인 김 부부, 고수미, 하기환, 김태미, 이영근 대원.    


하기환 회장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1> 

원정기간: 2023년 11/3(금)-11/13(월)

원정대원: 하기환, 이영근, 론 김, 제인 김, 고수미, 김태미(이상 재미스키협회 회원 6명)


문득 '그 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 

홀로 시작한 여행에 대원들 동참

성스러운 산 '마차푸차레'로 간다

체력훈련·고지대 훈련하며 준비

'코로나 양성' '급체' 위기 속 출발 




#. 그림이 현실이 되다

맘모스스키장에 있는 나의 집은 스키클럽 회원들과 자주 이용하는 곳이다. 거실에는 커다란 히말라야 그림 2개가 걸려있다. 몇 년 전 히말라야의 나라 네팔을 여행했을 때 사온 그림이다. 어느 산인지 이름은 모르나 한눈에도 히말라야 봉우리를 그린 멋진 유화이다.


어느 날 히말라야에 정통한 산악인이 벽에 걸린 2개의 그림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해줬다. 왼쪽에 걸린 그림은 마차푸차레(Machhapuchhare 22,943ft; 6,993m)인데 입산이 금지된 성스러운 산이라는 것이다. 안나푸르나 트래킹의 랜드마크 같은 신성한 산으로 네팔 제2의 도시, 포카라의 상징과도 같은 산이었다. 네팔말로 ‘마차’는 물고기, ‘푸차레’는 꼬리를 말한다. 그러므로 마차푸차레는 ‘물고기 꼬리(Fish tail)’가 되는 셈이다. 정말 산의 정상이 물고기 꼬리를 닮아 있었다. 오른쪽 그림은 에베레스트로 갈 때 만나는 아마다블람(Ama Dablam 22,349ft; 6,856m)이었다. 이 지역에 사는 세르파들은 원래 티베트인들이다. 그들 말로 ‘아마’는 어머니, ‘다블람’은 목걸이를 뜻한다. 그럼으로 아마다블람은 ‘어머니의 목걸이’라는 이름의 산인데, 마차푸차레와 더불어 미봉(美峰)으로 손꼽힌다.


그 설명을 듣고 문득 히말라야로 가서 그 봉우리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때는 여러 일들이 겹쳐 일상이 힘들었던 때였다. 거실에 걸려 있으나 알 수 없었던 히말라야의 봉우리를 찾아 아무런 생각 없이 걷고 싶었던 것이다. 네팔은 여행으로 갔었지만 히말라야 산록을 걸어 본 적은 없었다. 만약 간다면 깊은 산속을 찾아 트레킹을 하리라 생각했다. 그동안 스키나 골프 등 운동은 계속해 왔다. 히말라야라는 이름이 주는 부담은 있었으나, 산행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2년 전 모든 짐을 짊어지고 걸어야 하는 잔뮤어 트레일을 한 구간 걸은 적이 있었다. 함께한 회원들은 무거운 짐과 고산을 넘나드는 운행과 고소증에 시달렸다. 나는 그때 별 어려움 없이 잔뮤어 트레일도 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파타고니아 W-trek과 아르헨티나 피츠로이 트레킹도 경험했었다.


히말라야 트래킹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굳히자 일단 혼자 떠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선택을 해야 했다. 마차푸차레가 있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트래킹과, 아마다블람이 있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EBC)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고민이 되었다. 두 산은 동쪽과 서쪽에 떨어져 있어 한 쪽만 선택해야 했다. 그런 고민과 트래킹 정보를 알아보는 중에 스키회원인 론 김이 내 생각을 알게 되었다. 트레킹은 마차푸차레가 있는 안나푸르나로 결정했고 론 김 부부도 동행하기로 했다.


#. 대원 6명으로 늘어

자료를 모으고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스키협회에도 자연스레 알려지게 되었다. 트레킹에 동참하려는 회원이 하나 둘 늘기 시작했다. 원정 경험이 많은 김태미, 고수미, 잔뮤어 트레일과 파타고니아 트래킹을 함께했던 이영근 회장까지 동참했다. 이영근 회장은 사진작가 수준을 넘어 선 전문가였다. 팀이 더 커지면 여러모로 힘들 것 같아 모두 6명으로 마감했다.


가장 편하게 가는 방법은 한국에 있는 전문 트래킹회사를 통하는 것이었다. 한국인들의 히말라야 트래킹 열풍은 대단했다. 일본에서도 네팔까지 직항이 없는데, 한국의 대한항공이 직항을 운영하고 있을 정도다. 그런데 시간이 맞지 않았다. 그때 나는 LA에서 처음으로 개최되는 ‘세계한인비즈니스대회’ 때문에 몹시 바빴다.


한국 여행사와 스케줄을 맞추기가 힘들었다. 10, 11월은 히말라야 트레킹에 가장 바쁜 시즌이었다. 이미 예약이 끝난 한국 쪽에 우리 6명이 참가하는 게 쉽지 않았다. 방법은 하나. 우리가 시간과 코스를 정해 네팔 쪽에 직접 예약을 하는 방법이었다. 우리가 계획한 일정은 한국 출발 11월 3일, 한국으로의 귀환은 11월 13일. 열흘간이 주어진 시간이었다. 마침 히말라야 트레킹에 대해 잘 아는 지인을 만나 네팔쪽 가이드를 소개받았다. 그와 상의를 하며 ABC로 루트를 결정하고 일정을 맞춰 원정계획을 진행했다.


처음에는 모처럼 히말라야 깊은 곳으로 가는 김에 욕심을 내기도 했다. ABC까지 갔다가 요즘에 많이 도전하는 마르디히말까지 갔다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네팔 가이드의 충고를 받아들여 ABC까지만 갔다오는 것으로 일정을 확정했다. 6명 대원의 나이가 60~76세. 나이를 볼 때나 우리의 경험을 생각하면서 아마 가이드는 걱정이 앞섰을 것이다.


그렇게 원정날짜는 정해졌고, 각기 LA를 떠나 서울에서 만나기로 했다. 대원들이 서울에 도착해 볼 일을 보다가 원정 시작하는 날 함께 떠나기로 했다. 체력훈련도 각자에 맡기기로 했다. 히말라야 경험자들은 고소증을 많이 걱정했으나 우리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고산에서 스키를 많이 탄 팀이기에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걱정이 되어 콜로라도에 다니러 갔을 때 10,000ft 이상의 고지대 산을 찾아 열심히 걷는 훈련도 했다. 출발하기 하루 전 서울에서 모든 대원이 만났다. 출국 전날 저녁에 출정식 겸 단합대회를 ‘서석대’라는 식당에서 갖기로 했다. 


그런데 놀랄 일이 벌어졌다. 모임이 있을 하루 전, 이영근 회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용인 즉 몸이 안 좋아 검사해 보니 코로나 양성반응이 나왔다는 말. 약을 먹으며 상태는 좋아지고 있지만 모른다는 것. 출정식 하는 날에도 양성이 나오면 결국 원정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참으로 황당했다. 바쁜 시간을 쪼개 훈련까지 열심히 하고 한국까지 왔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할 말이 없었다. 다만 출정식 저녁식사 때는 못 나와도, 그 다음날까지 희망을 가져 보자고 했다. 출국하는 날 아침에 테스트에서 음성이 나오면 무조건 인천공항으로 나오라고 말을 전했다. 그런데 운 좋게 우리가 출정식 모임을 갖는 날 오전에 음성판정이 나왔다.


#. 엄홍길 대장과 함께

11월 3일 인천공항에서 만난 대원들은 네팔의 카투만 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비행기에는 10월 달에  패서디나 우리집에서 한국중소기업중앙회 김기문 회장 LA방문 환영만찬에서 만났던 엄홍길 대장이 보였다. 엄홍길 대장은 유명한 산악인으로 히말라야 8000미터 이상 16봉을 등반한 분이다. 자신의 이름을 딴 휴면재단을 운영 중이다. 휴면재단은 네팔에 학교와 병원을 지어주는 봉사를 하고있다. 탤런트 박상원씨 등 회원 여럿이 이번에도 봉사하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비행 끝에 카트만두에 도착하니 마중 나온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엄홍길 대장팀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기로 약속하고 공항에서 헤어졌다. 우리가 카트만두에 묵을 숙소는 ‘여행자의 거리’라 불리는 타멜 중심에 있었다. 숙소는 오랜 전통이 있고 유명한 ‘카투만두 게스트하우스’였다. 숙소로 들어가는 타멜 좁은 길은 온갖 상점에 들어 찬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튿날 우리는 국내선 비행기로 네팔 제 2의 도시인 포카라로 이동해서 바로 트래킹을 시작할 계획이었다.


카트만두 게스트하우스에 체크인 한 뒤 엄홍길 대장과 약속한 식당을 찾아 갔다. 한국식당인 줄 알았는데 엄대장과 가까이 지내는 네팔인이 운영하는 샤브샤브 집이었다. 규모도 크고 깔끔했다. 네팔에서 놀란 것은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네팔인들이 많다는 것이다. 코리아 드림이라고 한국에서 일을 하는 게 네팔인들에게는 꿈 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엄대장 일행과 어우러진 우리는 함께 축하의 잔을 돌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힘이 들 산행을 생각하여 에너지 충전 욕심으로 열심히 먹었다. 미국에서 먹던 샤브샤브하고는 맛에서 많은 차이가 났지만 나름 먹을 만했다. 엄 대장은 이번 우리의 트레킹에 대해 자세히 조언해 주었고, 고맙게도 저녁식사 계산까지 해주었다. 


엄 대장과 헤어져 숙소로 돌아 온 그날 밤 나에게 돌발적인 일이 발생했다. 새벽 2시쯤에 잠에서 깨었는데 갑자기 식은땀과 함께 속이 뒤집히고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천장이 빙빙 돌고 메슥거려 토하고 어지러워서 서 있지도 앉아 있지도 못했다. 연락을 받은 론 김이 내 방으로 오더니 깜짝 놀란다. 응급상황이었다. 즉시 미국에 전화를 걸었다. 의사 사위에게 전화를 해서 상황을 설명했더니 처방을 해 줬다. 늦은 시간임에도 론 김이 처방대로 약을 구해와 복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침이 밝아오는데도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멀고 먼 네팔에서의 돌발상황. 별별 생각이 다 든다. 먹은 음식이 체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몸이 너무 힘들었다. 혹시 뇌졸중(stroke)이라도 온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런 상태라면 트래킹을 포기하고 여기 남아 있어야 할 것이었다. 오전 내내 침대에서 누워 보냈다. 일단, 우리 팀 계획이 변경됐다. 그날 오전 포카라행 비행기를 취소하고 다음 날로 미루었다. 다른 대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나는 몸을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약 덕분인지 시간이 지나면서 컨디션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언제 그렇게 힘든 시간이 있었던가 할 정도로 몸이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모두들 믿을 수 없다는 표정들이다. 전날 샤브샤브 과식으로 인한 급체였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그날의 힘든 상황을 잊을 수가 없다.


하루를 더 카트만두에 머문 덕분에 대원들은 관광을 할 수 있었다. 등산장비점이 즐비한 타멜거리, 그리고 고대 네팔의 왕궁이었던 더르바르 광장. 원숭이 신을 모신 하누만 도카 사원. 네팔은 부처님이 태어난 곳이기는 하나 지금은 힌두교가 국교이다. 많은 힌두교인이 찾고 있는 광장의 고풍스러운 목재 유적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화유산이었다. 그렇게 계획에 없던 카트만두 관광을 끝내고 그 다음 날 가이드 디팍과 카트만두 국내선 공항으로 향했다. 네팔에 입국한지 3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포카라행 프로펠러 비행기에 대한 소문은 익히 알고 있었다. 비행기를 타니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음이 요란했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