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이 사는 영봉…그 장엄함 앞에 인간은 한갓 미물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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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이 사는 영봉…그 장엄함 앞에 인간은 한갓 미물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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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환 회장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3>  

원정기간: 2023년 11/3(금)-11/13(월)

원정대원: 하기환, 이영근, 론 김, 제인 김, 고수미, 김태미(이상 재미스키협회 회원 6명)


마차푸차레베이스캠프 가도가도 끝없는 돌계단

고도차 500m 넘는 산행에 고소증까지

햇살 받은 구름과 파란 하늘 찌를 듯한 정상 눈앞

여자 대원들 컨디션 최악, 상의 끝 헬기로 하산키로

설산의 정수리부터 황금빛으로 물든 새벽일출 장관

히말라야 트레킹 피로 패러글라이딩으로 풀어


아름답지만 위험한 산

멀리 목적지 데우랄리가 보이는 지점에서 너덜바위 지역이 나타났다. 이곳은 우리처럼 안나푸르나 트레킹 도중 눈사태로, 2020년 1월 17일에 한국 선생님 4명이 조난사한 곳이다. 우리 같이 데우랄리산장에서 숙박하고 다음날 기상이 너무 안 좋아 하산하다가 이곳에서 눈사태를 맞았다고 한다. 그때 네팔인 3명 합해 모두 7명이 조난을 당했다. 후미를 책임진 가이드 디팍이 자세히 설명해 준다. 


우리는 힘겹게 올라가는데 하산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목적을 이루고 내려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다. 데우랄리까지 가는 길에서 우리는 해발고도 3,000미터를 넘어선다. 데우랄리 도착 전 마지막 힘든 고개라 할 수 있는 힌쿠동굴(Hinku Cave) 계단을 만났다. 동굴이라고 하지만 커다란 바위 아래를 통과하는 계단길이다. 동굴을 지나면 데우랄리 직전까지 평탄한 길이 나타났다.


데우랄리 랏지로 가까이 갈수록 모디계곡(Modi Khola)과 함께 길이 나있다. 대나무와 푸른숲이 있었던 뱀부의 풍경과는 달리 3000미터를 넘은 데우랄리 근방은 이제 겨울을 맞이하고 있었다. 긴 오름 끝에 도착한 데우랄리 랏지에는 3,230m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이곳에서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까지 2시간 거리라는 안내판도 있었다. 춥고 떨리는 날씨에 식당에 부탁해서 ‘백숙’을 주문하자고 생각했는데 안 된다는 거였다. 이곳에서는 고기 종류는 일체 다루지 않는다고 했다. 올라 갈수록 랏지의 시설은 열약해 질 수밖에 없다. 태양광을 이용한 전기도 어두워지는 6시쯤 들어오고 한 번 꺼지면 아침까지 헤드랜턴에 의지해야 했다. 그나마 이런 높은 고도에 이만한 랏지가 있음에 감사할 수밖에 없다. 이제 내일이면 마지막 목적지인 안나프루나 베이스캠프(ABC)로 향한다.


아침엔 추웠다. 크게 힘든 것은 아닌데 얼굴이 좀 푸석푸석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은 이곳 데우랄리 랏지를 출발하며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를 거쳐, 최종 목적지인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4,130m)로 가는 날이다. 어제부터 고소증으로 고통받던 고수미 대원이 아침이 되니 더 힘든 가 보다. 데우랄리에서 MBC로 가는 길 또한 돌계단이었다. 깎아지른 바위산을 배경으로 만들어 놓은 티베트 불교의 작은 제단이 보인다. 그 뒤 배경으로 보이는 마차푸차레가 웅장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고도를 높일수록 나무는 점점 적어지고 기온도 내려갔다.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 랏지까지는 오르막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고도차가 500미터가 넘는 산행이니 힘들다. 그리고 고소증 때문에 천천히 걸어야 한다.


드디어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 랏지가 시야에 들어온다. 그 랏지 앞에 ABC로 가는 갈림길도 보였다. 햇살을 받은 구름과 파란 하늘을 찌를 듯 마차푸차레봉 정상이 솟구쳐 있다.


힘들게 올라오고 있는 두 여자 대원들이 저 멀리 보였다. 두 여대원의 컨디션이 정말 최악이다. 상의 끝에 두 대원은 이곳에서 잔 후 아침에 헬리콥터를 불러 하산하기로 결정했다. 고소증에는 약이 단 한가지다. 고도를 내리는 것만이 직효인 것이다. 이곳 히말라야 계곡에서도 전화통화가 가능했다. 우리 여대원들처럼 고소증에 시달리는 트래커들이 많은지 헬기를 부를 수 있는 예약시스템이 가동 중이었다. 경험 많은 가이드의 도움으로 아침 일찍 헬기가 오기로 예약이 끝났다.


드디어 도착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히말라야에서는 비상사태가 아니면 오전에만 헬기가 운행한다고 했다. 오전에는 바람도 없고 날씨가 좋기 때문이다. 두 여대원이 방을 얻어 휴식을 취하는 걸 확인한 후, 후미를 맡았던 가이드 한 명과 포터1명을 남기고 우리 4명은 출발했다. 우리는 계획대로 최종 목적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랏지에서 자기로 했다. 여기부터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는 두세 시간 거리였다. 나를 포함해 남은 대원들은 걸어서 하산해도 될 만큼 컨디션이 좋았지만 우리도 헬리콥터로 하산하기로 했다. 팀이 이산가족이 되기보다 끝까지 함께 하는 게 좋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끝 없이 오르고 내려야 하는 계단도 부담스러웠다. 얼마 후에 시작할 스키시즌을 위해 무릎을 좀 아껴 놓을 이유도 있었다. 그런 결정을 내린 우리도 헬기를 예약한 다음 출발했다. 


오후엔 구름이 끼고 날씨가 더 흐려지므로 서둘러 ABC로 향한 것이다. MBC에서 ABC로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 완만했다. 4,000미터 가까이 올라서니 한 걸음 한 걸음이 힘들어진다. 드디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표지판이 우리를 맞아준다. 이제 목적지에 다 온 것이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산봉우리는 구름에 가려서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예약한 롯지에 여장을 풀고 저녁을 했다. 고산지대라 그런지 밥 맛이 없어져서 아무 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해가 넘어가자 기온이 급강하했다. 방에 가서 잠을 청했지만 너무 추웠다. 가지고 온 옷을 모두 껴입고 침랑 속으로 들어갔다. 수면제도 안 먹었다. 혹시 잠에 취해서 화장실도 못가고 실수할까 봐 밤을 지세웠다. 


새벽 일출을 보러 밖으로 나왔다. 얼굴이 많이 부은 것을 느꼈다. 히말라야 산맥이 나를 감싸고 있었고 나는 안나푸르나의 중심에 들어와 있는 듯 싶었다. 이곳엔 인류최초로 탐험계의 4관왕(true expedition grand slam)을 이룬 전설적인 한국의 박영석 대장 추모비가 있었다. 추모비 속 박영석 대장 사진이 활짝 웃고 있다. 2011년 박영석 대장 일행이 여기 안나푸르나산에서 조난사했다. 그들 시신은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런 비극을 모른다는 듯 드디어 일출이 시작되었고, 설산의 정수리부터 황금빛으로 물들어 온다. 장관이다. 이 한 컷의 풍경으로도 이번 트래킹의 노고를 보상받는가 싶다. 


오전 9시쯤 멀리서 예약한 헬리콥터 소리가 나는 가 하더니 어느 새 착륙했다. 우리는 그 헬기를 타고 포카라공항으로 향했다. 4일 걸려서 힘들게 올라온 ABC에서 포카라공항까지 15분가량 밖에 걸리지 않았다. 공항에는 2시간 전 쯤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에서 내려 온 두 여성 대원이 기다리고 있다. 그녀들은 내려왔어도 여전히 몸이 회복되지 않은 듯 보였다. 헬기 경비가 한대당 1,800달러라 싸진 않지만 쉽게 내려와서 모두 좋은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카트만두보다 조용하고 환경이 좋은 포카라에서 이틀을 더 머물기로 했다. 히말라야가 내려 준 물이 모인 페와호수. 예전 네팔 국왕의 별장도 이곳에 있다고 했다. 매연이 지독했던 카트만두와는 달리 맑고 깨끗한 자연이 돋보이는 포카라였다. 날이 좋은 날이면 잔잔한 호수면에 마차푸차레 봉우리가 온전히 담겨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이곳의 호수가를 걸으며 트레킹에서 쌓인 피로를 달랬다. 시간적 여유가 있는 남자대원들은 또 다른 모험에 나섰다. 세계 3대 패러글라이딩으로 유명하다는 포카라에서 한 번 체험해 보기로 했다. 이 나이에 처음으로 도전하는 패러글라이딩 비행이다. 


우리는 페와호수를 발밑으로 감상하며 체공시간이 무려 30분이나 되는 긴 비행을 했다. 팁까지 100달러 정도이니 가격대비 최고인 것 같다. 포카리에서 즐거운 이틀을 보낸 후 카투만두로 귀환했다. 이 원정에 글을 준비해 준 태미 김, 사진을 준비해 준 이영근, 회계 및 예약까지 한 제인 김 대원 등 6명이 합심해서 원정을 무사히 끝낼 수 있어 모두에게 감사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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