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 ‘마무리’가 좋으면 ‘과정’도 미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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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등] ‘마무리’가 좋으면 ‘과정’도 미화된다

웹마스터

이보영

민주평통 통일전략 전문위원


한 해의 끝, 12월도 며칠 남지 않았다. 그간 속수무책으로 뜯겨나간 세월에 달랑 한 장 남은 달력에 왠지 아쉬움이 묻어난다. 한 해의 끝(Goal)을 향해, 먼 수평선으로부터 점차 육중한 파도로 쉼 없이 밀려 왔는데, 막상 얕은 모래밭 해변에 다다르니 묘한 기분이 든다.


세월도 가고 나이도 들면서 한 해 동안 뜻대로 다 하지 못한 허탈, 허망한 회한이 남아 있기 때문일까!

연초부터 월 2회씩 글(칼럼)을 신문에 게재하면서, 인쇄된 내 글을 읽을 때마다 뭔가 좀 부족함이 느껴졌다. 글의 마지막 부분, 즉 마무리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아 속 상하고 아쉬움이 늘 남았다.


“저녁이 되기 전에 하루를 칭찬하지 말라(Man soll den Tag nicht vor dem Abend loben).” 독일인들의 속담이다. 저녁은 하루의 끝을 맺는 마무리 시간이다. 결과를 보기 전에 결코 좋아하거나 칭찬하지 말라는 뜻이다.


“결과가 좋으면 과정을 정당화 시킨다”는 말이 있다. 과정이 미숙했더라도 결과가 좋으면 과정이 미화된다. 반대로 결과가 나쁘면 모든 과정은 무의미하다. 스포츠에서 내용으론 이겼어도 승부에 지면 패한 것이다. 현실 세상은 결과만을 기억하는 것 같다.


곧 2023년도의 ‘문지방’을 넘어가게 된다. 이어서 2024년도의 ‘문턱’에 다다를 것이다. 문지방은 방과 방의 경계선이다. 공간의 칸막이다. 옛 어른들은 문지방 밟으면 복 나간다고 아이들을 다그쳤다. 유태인의 풍습엔 여자가 문지방을 넘어야 비로소 그 집의 신부가 된다고 한다.


우리 속담에 “다 가서 문지방을 못 넘어간다”는 말이 있다. 힘들게 일은 했으나 완전히 끝을 맺지 못해

헛수고만 했다는 뜻이다. 그만큼 마무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요즘 집들은 대문에 문턱이 없지만, 옛날 집은 대문에 반드시 문턱이 있었다. 특히 벼슬아치의 집은 문턱이 높았다. 벼슬의 권위와 부귀의 상징을 문턱으로 간접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문턱은 문기둥의 좌우를 붙잡아 주고 문틀의 바닥 기능을 해 준다. 대문의 문턱은 묵직한 대문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기능 외에도 비가 왔을 때, 빗물이 넘쳐 흘러 들지 못하게 막아준다. 밤중엔 쥐나 뱀이 감히 넘어오지 못하게 하는 기능도 있다. 때론 야생 동물들이 넘어오다가도 주춤하며 사방을 살피면서 심사숙고를 거쳐 조심스레 넘는다.


어느 격투기(UFC) 챔피언에게 물었다. “어떤 운동과 어떤 무술을 배워야 챔피언 벨트를 획득할 수 있습니까?” 격투기 챔피언은 불끈 쥔 주먹을 보이며 대답하기를 “나가서 힘센 놈과 30번만 싸워보면 그 답이 나옵니다.”


어느 덧 그가 60을 바라보는 때 “챔피언으로서 인생을 후회없이 살아 오셨습니까?” 물었더니 씁쓸한 미소를 지으면서 “명예는 좀 얻었는데, 건강에 문제가 생겨 일찌감치 은퇴하고, 이렇게 휠체어에 의지합니다.” 그는 자기 인생 여정의 끝부분, 마무리에 대한 준비를 못했던 것에 대해 크게 후회했다고 한다.


춘추전국시대에 진나라 무왕(武王)은 세력이 커지자 교만해져서 처음 품었던 천하통일 계획을 잃어 버리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신하가 왕에게 시경(詩經)에 나온 말을 인용하여 건의했다

“행백리자(行百里者), 반어구십(半於九十), 백리 길을 가야 하는데, 이제 절반인 구십리까지 왔습니다. 나머지 절반인 십리를 더 가야 합니다. 대왕께서 천하통일의 대업을 끝까지 마무리 하시어 ‘유종의 미’를

거두신다면 온 천하가 우러러 볼 것입니다.”


시작한 일을 끝까지 잘 해 얻은 결과를 ‘유종지미(有終之美)’ 라고 한다. 90세가 된 ‘우공’이 집 앞에 있는 산(山)이 가려서 멀리 들판을 바라볼 수 없게 되자 산을 옮기기로 결심했다. 지게(A frame)에 산 흙을 퍼 담아 짊어지고는 먼 바닷가에 버리고 돌아오기를 여러 날 반복하고 있었다.


이웃들이 우공을 조롱하며 비웃기 시작했다. “우공의 춘추가 몇 인데 언제 산을 다 옮기겠어요?”

우공은 “내가 못 다하면 내 자손들이 이어서 할 꺼야 ~ 산(山)은 유한이고 내 자손은 대대로 이어 갈테니까!" 내가 죽으면 옥황상제께 부탁이라도 드릴테니 걱정말게!” 이 말을 들은 옥황상제는 우공의 집념에 감복되어 그 산들을 낮추어 주었다.


고사성어 ‘우공이산(憂公移山)’은 이 전설에서 비롯되었다. ‘우공이산’은 어떤 일이든지 꾸준히 계속하면 끝을 이룰 수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중국의 모택동 주석이 이 고사성어를 회의석상에서 자주 인용했다고 한다.


누구나 처음 시작하는 일엔 관심이 깊다. 그러나 일의 마무리 단계에선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새해의 ‘해돋이’를 보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바닷가로, 산으로 몰려 가지만, ‘해넘이’를 보러가는 사람은 드물다. 처음 시작에 관심이 더 많다는 실예(實例)를 보여 준다.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2023년 해가 저물어 간다. ‘처음처럼’ 이 단어를 되새기며 마무리를 할 시간이다.

수고한 내 자신에게, 나를 지켜주신 창조주께 감사하면서 올해의 문지방을 슬기롭게 넘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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