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영수의 코미디 40년 연예비사 천운은 준비된 사람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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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영수의 코미디 40년 연예비사<27-1> 천운은 준비된 사람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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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현석(오른쪽)과 엄영수.    /엄영수 제공


#. 우리가 모르는 드라마틱한 드라마 세계!  

현석은 드라마에서 오미연과 부부로 출연했다. 오미연이 김포에서 대형 교통사고가 났다. 수혈이나 수술의 문제였는지 매우 힘든 상황이었다. 방송국은 큰 피해를 입게 된다. 드라마가 조기종영될 수도 있어 출연배우들은 일자리를 잃게 된다. 배우 한 사람 때문에 전체가 입는 손해는 너무 크다. 그래서 드라마를 할 때는 연기자들은, 특히 주연 여배우는 모든 문제를 PD와 깊이 상의해야 한다. 임신 출산 고민 종교 애정 스캔들 비리 가족 간 갈등 송사 질병 불륜 부채 신용 정치 등등. 사건사고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드라마가 대박이 나야 인기가 오르고 새 작품이 줄줄이 연결되고 영화도 찍고 CF도 찍고 지방축제와 이벤트 행사에 초대를 받고 백화점 사인회도 하는데 사건사고가 터지면 모든 게 한꺼번에 날아가 버린다. 오미연의 도중하차는 부인 역을 새 연기자로 바꿔서 출연시켜야 하는데, 옛날 시청자들은 폭넓게 이해를 해서 잘 넘어가기도 했다. 기로에 섰다. 부인까지 바꿔가면서 꼭 해야 할까? 현석은 아무하고나 같이 산다? 


'연기자 관리가 엉망이다'라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어쨌든 드라마는 이상해졌다. 제작진이 물어왔을 때 그냥 하겠다고 해도 괜찮았지만 거절했다. 현석은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는 것을 즐긴다.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같은 드라마를 몇 달하면 내용이 같은 방식으로 흘러간다. 뭔가 새로운 작품에 가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싶다. 그래서 오미연과 운명을 같이 했다. 그리고 바로 후회했다. 현석-오미연 커플과 연결된 출연자들의 도중하차 때문이다. 모처럼 배역을 받아 오랜만에 출연한 연기자, 지금 막 탄력이 붙어서 인기가 치솟는 연기자 모두에게 너무너무 미안했다.


드라마를 할 때 출연자들은 드라마의 성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전체를 위해 개인이 희생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드라마 출연진이 결성되면 함량이 미달되는 배우, 옆구리로 들어온 배우, 낙하산을 타고 들어온 배우, 어떻게 들어왔는지를 모르는 배우, 도저히 같이 하기 어려운 배우, 야단을 치고 싶은 배우, 피디에게 교체를 요구하고 싶은 배우 등, 별에 별 배우가 많지만 우선 드라마를 성공시켜 놓고 볼일이다.


성공만 하면 모두가 덮어진다. 그래서 후배를 격려하고 칭찬하고 이끌어서 오직 드라마 만드는데만 온 힘을 쏟는다. 한 드라마가 끝나고 나면 신인들은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어떤 신인은 하나를 가르쳐 주면 둘 셋을 깨우치는 수도 있다.


드라마가 떴을 때 전 출연자가 이익을 공유한다. 학교에서 시험을 칠 때 벼락치기든 밤샘공부든 그 순간에 결사적으로 파고 들면 몇 년 고생이 평생을 편하게 살게 해주지 않는가? 연기도 그렇다. 처절하게 매달려야 살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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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던 대로 놀아라

탤런트 박칠용 연기자노동조합 감사 회고: 현석 형님과 전남 지방을 여행했다. 한 드라마가 끝나고 휴식기를 가질 때 발길 닿는대로 정처없이 이곳저곳 헤매고 돌아 다녔다. 카메라에 찍히며 사는 사람들은 불쌍하다. 대본 외워야지 분장해야지 상대방의 언행에 따라 일일이 대응해야 하니 스트레스가 잔뜩 쌓인다.


연기자 연출자 조연출 카메라맨이 합의한 정해진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눈동자 시선 숨 한 번 내쉬는 것도 모두 통제를 받는다. 작업실에 갇힌 꼭두각시 신세다. 방송국 카메라를 벗어나 남쪽나라 바닷가에 몸을 던지고 있으니 이 이상 좋을 수 없다. 


2~3일 지났을 때 무엇인가 뜻 있는 여행을 만들고 싶어졌다. 해남 땅끝에서 서울까지 걸어가면 어떨까. 400km를 하루에 40km씩 걸어 10일 후에 서울 한복판에서 지인들과 기념파티를 한다. 남들이 흔히 하는 국토순례를 하는 거다. 대단한 도전이었다.


목포 신안 무안을 거쳐 나주까지 오는데 이틀 걸렸다. 계속 이대로 가면 지구라도 한 바퀴 돌겠다. 서울쯤이야 단숨에 돌파한다. 나흘째 되는 날 갑자기 발끝이 무거워진다. 엊그제만 해도 새처럼 가볍게 날아다니지 않았나? 아무데나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날아 갔고 편안하게 마냥 먹고 마시다가 적당한 때 자리를 떴다. 오늘은 그게 아니다. 누군가의 지시를 받는 듯했다.


이제 그만 일어나야 한다. 몇 시까지는 그곳에 도착해야 한다. 스스로 세운 목표와 규제를 지켜야 한다.

동료들에게 서울까지 걸어서 간다고 예고한 것도 괜한 짓이었다. 출정식이나 기자회견을 안 한 것이 천만다행이다. 의미있는 여행에 욕심을 부릴 때부터가 잘못이 아닌가? 


여름 날씨는 더웠다. 왜 해가 안질까. 어디 그늘이 없을까. 다른 코스를 택할 걸….  놀던대로 놀아야지. 차라리 그냥 걸었으면 평양이나 신의주도 갔을 건데 생각이 꽉 차 있는 머리가 무거워져서 짐이 된다. 땀띠가 나면, 얼굴에 화상을 입으면, 녹화에 지장이 있을텐데. 발바닥에 물집이 잡힌 것 같다. 다리가 붓고 통증이 온다. 그것도 두 사람에게 동시에 발생했다. 북쪽으로 한 발짝도 올라가 보지도 못했는데 남쪽 끄트머리 밑바닥에서만 헤매다가 갈판났다. 누가 먼저 말했는지는 기억에 없다. 멈추는 게 좋겠다. 탤런트 생활에 몸이 많이 망가진 걸 몰랐네!


작심삼일을 실천했다. 목표가 발목을 잡았다. 여행자들이여 그냥 걸어라. 하던대로 해라. 말없이 그냥 걸어라. 아무 일이 없을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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