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영수의 코미디 40년 연예비사 홍수환 4전5기는 아직도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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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영수의 코미디 40년 연예비사<25> 홍수환 4전5기는 아직도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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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환(왼쪽)과 기념촬영. 오른쪽이 엄영수.   /엄영수 제공


#. 챔피언 먹은 10cm, 대한국민 만세다! 

1974년 7월 14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 테니스경기장에 설치된 야외특설링. WBA(세계권투위원회) 밴텀급 타이틀매치. 챔피언 아놀드 테일러를 도전자 홍수환이 15회 심판 전원일치의 판정승으로 물리치고 새로운 챔피언에 등극했다. 


홍수환 선수: "엄마야 나 참피온 먹었어."

어머니 황농선 여사: "그래 대한국민 만세다."


당시 먹었다는 말은 일상용어였다. 춥고 배고프던 시절 만나면 하는 말, 밥은 먹었냐? 이번 경매 어디서 먹었대? 야구 우승 군산상고가 먹었다며? 경영권을 먹어야 하는데....


어딜가나 먹었다 판이다. 품위 있고 교양 있는 말이 아니어서 꺼림칙했는데 챔피언이 시원스럽게 외치자 마음놓고 따라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나라'가 한마디로 요약하면 '대한국민 만세'다. 언어감각이 뛰어난 집안의 어른이시다. 


홍수환의 경기는 항상 전국민을 흥분시킨다. 이기는 순간에는 5000만 동포가 일제히 10cm씩 뛰어서 기쁨을 표출했다. 10cm 사나이(홍수환의 별명)와 어머니는 그걸로 양이 안차서 유행어를 날려 우리를 즐겁게 했다.


#. 스타는 괴로워야 해

김포공항에서 시청 앞 광장까지 홍수환 챔피언의 가족이 함께 카퍼레이드를 펼쳤다. 시청 앞 환영인파가 박수와 함성으로 천지를 진동시켰다. 


1966년 6월 27일 김기수 선수가 WBA라이트 미들급 챔피언이 되어 바로 이 자리에서 했던 우승소감을 먼 발치에서 들으며 언젠가는 김기수 세계 챔피언처럼 되겠다고 꿈을 되새겼던 16세(고등학교 2학년) 소년이 8년이 지난 오늘 드디어 꿈을 이루고 연단에 섰다. 


세계 챔피언에 올랐으니, 현역 수도경비사령부 제5군사 경찰대대 본부중대 홍수환 일병은 팔자를 고쳤겠지, 일계급 특진했겠지, 돈방석에 앉았겠지, 모두들 부러워했다. 사실 그랬어야 하는 거 아닌가? 국민께 위안을 주고 희망을 주고 감동을 주고..., 그러나 오히려 챔피언이 되고나서 엄청난 시련을 겪게 된다.


챔피언은 부대와 지휘관들이 공을 세워 이룬 것이지, 홍수환 일병은 나라에 바친 몸 아닌가? 

"홍수환 일병은 군에서 부여한 업무를 철저히 수행하고 훈련과 내무반 생활을 다한 가운데 남은 여가시간을 활용하여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연습을 시킨 결과 챔피언을 만들었습니다."


"군복무는 복무대로 다하고 특혜 없이 세계 챔피언이 됐다니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투철한 군인정신을 갖고 복무에 충실히 임하도록 해 수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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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환 챔피언은 이제 정말 여가시간만 연습을 해야 하는데 군대서 여가시간이 어디에 얼마나 있나?

챔피언이 된 후로 부대훈련, 유격훈련 일상업무, 보초 불침번을 열외 없이 했고, 챔피언이 되기 전 부대에서 알게 모르게 주던 특혜가 모두 없어졌다. 군식당에서 밥을 먹으니 체중이 는다. 권투선수는 특수식단을 짜야하는데 그것이 어렵다. 나중에 대전을 치를 때 계체량 측정 때문에 피를 말리는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 


#. 불멸의 승부사 4전5기 신화창조

1977년 11월 27일. 파나마, 파나마체육관 WBA주니어페더급(수퍼밴텀급) 초대타이틀 결정전 11전 11승 11 KO승 파나마의 신예 헥토르 카라스키야와 홍수환의 대결. 최근호 매니저의 회고다. "수환아, 너 여기 비길려고 왔냐? 비길려고 해도 적을 네 번은 다운시켜야 한다. 다섯 번 다운시킨다는 건 불가능해 KO 아니면 우린 못 이겨, 3회에 다 쏟아붓는거야 3회 끝나면 방 빼고 간다. 방 뺀다고!"


홍수환은 2회 네 번 다운당했으나 3회 역전 KO승을 거뒀다. 권투사에 유래 없는 4전5기의 신화를 창조했다. 위대한 복서로 다시 탄생한 홍수환! 복싱의 역사를 새로 쓴 불멸의 승부사! 대한민국은 온통 감동과 흥분의 도가니였다. 


신화창조를 이룩한 주역이 있다. 세계적인 강자 멕시코의 알폰소 자모라. 홍수환에게 권투인생의 중요한 길목에서만 2패를 안겼다.


그러나, 홍수환이 누군가! 위기를 즐기고 위험에 반갑게 달려드는 사나이다. 무엇인가 안맞는 상대가 있다면 그때는 돌아가는 전략이 필요하다. 패배를 인정하고 전화위복으로 만드는 것이다. 주니어페더급으로 한체급을 올려 따라올 수 없는 새길을 개척하는 것이다. 남자의 오기로 패배에 대한 복수심으로 집착하면 망하는 길이다. 


홍수환은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도를 닦으러? 아니다. 도끼를 한 자루 갖고 들어갔다. 도끼로 끊임없이 나무를 패는 작업을 시작했다. 15라운드를 질주할 수 있는 지구력 배양, 어깨와 팔과 주먹의 힘을 합하여 펀치력을 키우면 누구라도 이길 수 있다.


산속에 도끼로 나무 많이 까는 소리가 밤낮 하염없이 울려퍼졌다. 산속에서 모든 것을 끊고 오직 도끼로 '나무마니 카라스키야'를 외쳤다.


드디어 카라스키야가 찾아왔다. 챔피언 결정전이 성사됐다. 세상에 이런 일이! 남대문시장 삼익패션가게 홍수환의 누나가 재기자금 30만원을 건네 주었다. 챔피언을 빼앗기고 리턴 매치마져 실패하자 저물어버린 퇴역선수 취급을 당하는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격려하였다.


1976년 12월 하와이로 재기 훈련 차 날아갔다. 챔피언 벨트는 독식하는 물건이 아니다. 인생이 흘러가듯 흘러가는 것이다. 아름다운 권투사를 써나가야 한다. 권투는 즐겁고 경쾌하게 힘과 기를 겨루는 인류의 축제가 되어야 한다는 철학을 깨달았다.


'내가 가장 듣기 싫은 말이 홍수환은 권투선수 치고는 참 똑똑한 사람이야. 칭찬인지 욕인지 판단이 안된다.' 권투선수는 대개 환경이 어렵다. 사실 부유한 집안에서 때리고 맞는 스포츠를 평생의 직업으로 갖는다고 하면 어느 부모가 허락하겠는가. 극한상황에 가면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사람의 잔인성도 진화한다. 권투로 만족할 수 없어 킥복싱을 만들었고, 더 나가서 격투기를 만들었다. 당연히 말리려 들 것이다. 홍수환 가족은 달랐다. 아버지가 권투 매니아로서 아들과 함께 권투장을 찾아 즐기는 권투 광팬이었다.


앞집에 권투계의 유명한 김준호 매니저가 살았다. 무엇이든지 하겠다고 말하면 밀어주는 열성 어머니가 계셨다. 복싱에 감동을 받아 세계 챔피언이 되겠다고 일찍부터 결심한 근성과 오기로 뭉친 홍수환 선수가 있다. 이쯤되면 권투를 피해 다른 무엇을 하겠나.


#. 인생은 운명, 재수하고 친해야 해

홍수환 선수가 하고 싶었던 말을 인터뷰를 통해서 알아보았다.

① 평생 때리고 맞는 일만 했는데 은퇴했으니 뭘로 먹고 사나? 사람들은 때리고 맞는 얘기를 너무 좋아한다. 있는대로 얘기해 주다 보니 하루 아침에 명강사라는거야. 참 세상에…. 강의를 천 번 넘게 했다. 할아버지가 공산당에 의해 돌아가셔서 공산당을 싫어한다. 문재인 정권 때도 강의를 거의 못했다. 정권이 바뀌었는데 소식이 없다. 우리끼리 골이 너무 깊다는 얘기다. 

② 우리라고 다 맞히나 그냥 막 휘둘러대면 갑자기 상대선수가 안보여 어디있나 찾아보니 바닥에 누워 있드라구. 

③ 아놀드 테일러가 나를 제일 약하다고 불러들였지. 사실 군에서 엄청 훈련했는데 재수없이 날 불렀고, 나는 운좋게 불려갔고, 그거지.

④ 어머니가 그집 딸은 관심꺼라! 권투나 잘 해! 야단치니 가만 있었으면 아무 일도 없을 걸. 괜히 어머니 말에 관심을 갖게 돼서 딸을 낳았으니 선수생활 되겠나? 이겨야 먹고 사니 할 수 없이 계속 이기더라. 

⑤ 카라스키야와 챔피언 결정전은 재수 좋았다. 3번 다운당했을 때 심판이 아웃하면 지는 거다. 4번 때는 더 말할 필요없다. 내가 자꾸 일어나니까. 심판이 할 일이 생긴다. 재미가 있으니 어디까지인가 볼려고 속행을 한 거다. 무제한 다운제라도 선수생명 보호라면 끝이다. 형이 타월을 던졌어도 아웃이다. 다운이란 건 정신이 나간 상태다. 10초 내에 돌아오지 못한다. 무의식적으로 훈련된 정신력으로 그냥 반사적으로 움직일 뿐이다. 

⑥ 권투는 상대를 10초만 눕히면 이기는 아주 쉬운 경기다. 

⑦ 53kg 520g이 한계체중인데 53kg 720g이 측정되면 실격이다. 체중계를 푹신푹신 한 곳에 놓고 재면 200g이 더 나온다. 함정에 빠진거다. 계체량 장소에 갔더니 바꿨다고 한다. 2번씩이나 골탕을 먹인다. 지치게 끔 신경전을 하는 것이다. 마지막 장소에 갔더니 자모라가 먼저하고 갔단다. 우리가 국력이 약하기 때문에 당한 것이다. 

⑧ 니콰라과에서 내 경기 이틀전에 제1회 세계 야구대회가 열려 한국선수가 일본, 미국을 물리치고 우승했다. 나도 할 수 있다. 한국의 운이 좋다는 희망을 갖고 승리를 자신했다. 

⑨ 3라운드에서 실수로 벨트라인 밑을 가격했다. 심판이 뒤에 있어서 못봤다. 한손으로 상대몸을 누르고 재고 쳤는데 원래 파올이다. 경고를 줘야 하는데 심판도 정신이 없었다. 행운이었다. 

홍수환의 명언으로 마친다. '내가 교만해지면 하늘은 더 쎈 놈을 보냈다.', '미치면 된다. 미치면 지치지 않는다.', '나는 반드시 이긴다는 믿음이 있어야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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