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가장 흔한 자격증, ‘드라이버 라이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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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등]가장 흔한 자격증, ‘드라이버 라이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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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직업 중의 하나가 ‘마부(馬夫)’이다. ‘마차(Coach)’는 적어도 자동차가 출현하기 전까지는 아주 중요한 운송 수단이었다. ‘마부(Coachman)’는 대부분 마차의 주인이자 마차를 모는 사람이었다.

“바퀴가 있는 운송 수단을 누가 끄느냐” 에 따라 사람이 끌면 ‘인력거(人力車)’, 소가 끌면 ‘우차(牛車)’라 했고, 말이 끌면 ‘마차(馬車)’, 엔진이 끌고 가면 ‘기관차(機關車)’라 불렀다.

우마차(牛馬車)를 통 털어 우리 조상들은 관용적으로 ‘마차’라 불렀고, 마차에는 말을 잘 다루는 ‘마부’ 가

마차를 몰았다. 그 시절 마부에겐 대개 3가지 면에서 자질(姿質)이 있으면 ‘좋은 마부’로 인정받았다.

첫째는 마차에 대한 정비다. 마차가 출발하기 전에 고장이나 손 볼 곳은 없는지, 꼼꼼히 살펴서 안전에 장해 요인이 되는 것을 미리 제거하는 마부. “닦고, 조이고, 기름 치자!” 라는 경구는 마차 시대부터 내려온 것 같다.

둘째는 우마(牛馬)에 대한 애정이다. 짐승은 배고프다, 힘들다, 아프다는 소리를 못한다. 시간에 맞춰 먹이고, 노동시간 간격마다 적당한 쉼을 주고, 발굽 상태나 상처는 없는지 살피는 마부. 우마의 숨 소리만 들어도 그의 건강 상태를 파악하고, 우마의 눈빛만 보아도 그의 피로감을 알아 채는 마부.

채찍으로만 우마를 다스리는 마부를 사람들은 ‘마차꾼’으로 낮추어 불렀다.

셋째는 싣고 가는 화물에 대한 책임감이다. 마차 위에 화물 선적이 한쪽으로 치우져 무너지거나 끈을 약하게 묶어서 짐이 떨어져 부서지거나 유실되는 것은 전적으로 마부의 책임이었다. 짐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빠르게 운반하는 것을 책임지는 게 마부다.

오늘 날의 운전사 중에도 ‘좋은 운전사’는 그 옛날 ‘좋은 마부’의 자질과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다만 마부에겐 ‘면허증’이 없었고, 운전사는 면허증을 소지하고 있다는 것이 다르다.

‘운전 면허증’이란 도로에서 자동차 또는 특수 장비를 운전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공문서이다. 

세계 최초의 운전면허는 1885년 내연기관 자동차를 발명한 독일의 ‘칼 벤츠(Carl F. Benz)’에게 ‘바덴

공화국’이 발급해 준 운행 면허증이 그 기원이다.

칼 벤츠는 자신이 만든 차를 타고 종종 동네 거리를 누볐다. 소음기가 없었던 자동차는 내연기관에서 뿜어 나오는 굉음이 너무 시끄러워 동네 사람들이 놀라고, 심지어 공포감마저 들게 했다.

드디어 동네 사람들이 항의와 운행 중지 시위(示威)를 하자, 칼 벤츠는 이들의 불만과 시위를 잠재우기 위해 바덴 지방 정부에 아예 운행허가증 발급을 요청했다. 얼마 뒤, 당국으로부터 그는 운행허가증을 받게 되었다. 이것이 최초의 운전 면허증이다.

칼 벤츠는 세계 최초로 삼륜차(三輪車) ‘페이턴트 모터바겐(Patent Motorwagen)’ 을 제작해 베를린에 발명특허를 출원했다. 그의 차는 개솔린으로 내연기관에 동력을 얻고, 전기 점화 장치까지 장착된 차였다.

벤츠는 1886년부터 1893년 사이에 약 25대의 ‘페이턴트 모토바겐’울 생산, 판매했다. 당시 이 차의 가격은

600마르크(약 150달러)였다. 1886년 최초로 생산한 3대중, 2대는 독일 자동차 박물관(뮌헨)에 전시되어 있고, 1대는 벤츠 판매가 높은 서울시에 ‘벤츠 코리아’를 통해 기증해 전시되고 있다.

세계 최초의 자동차 운전면허 시험은 1893년 프랑스에서 실시되었다.


시험과목은 출발, 정지, 커브 주행만 알면 합격증을 받았는데, 휴대하기엔 너무 큰 액자 사이즈 면허증이었다. 자동차 증가로 사고 빈도가 많아지자 파리 경찰국은 1899년부터 카드 사이즈 면허증을 발급하고 휴대를 의무화 했다.

1899년 뉴욕과 시카고는 자동차 소유 및 운행 관련 등록을 받기 시작했다. 시카고는 운전자들에게 운전 실기 시험에 응시할 것을 요구했고, 뉴욕은 면허가 있는 엔지니어들만 자동차 운전이 허용되었다.

1903년, 매사추세츠주와 미주리주는 주(州)법으로 운전 시험과 운전면허 제도를 최초로 시행했다. 다른 주(州)들도 점차 매사추세츠의 선례를 모방하기 시작했다.

1913년, 뉴저지 주에서도 운전면허 제도를 도입하고 면허 시험을 실시했는데, 당시 응시자 대부분은 뉴욕,

뉴저지 지역에서 마차를 몰던 마부들이었다.

1959년부터 미국 내의 모든 주(州)는 자동차 뒷면에 번호판(License Plate)을 붙이고, 운전 면허증 휴대 의무화가 연방법으로 제정되었다.

한편, 한국에는 1903년 고종황제 즉위 40주년을 맞아 미국이 선물한 ‘포드 모델 A형 리무진’ 1대가 최초로 궁궐에 들어왔다. 이 자동차가 백성들에게 알려지기는 1910년 경이었다.

당시, 일제 강점기 하의 조선엔 고작 일본인 운전기사 3명 뿐이었다. 그들은 고종과 순종, 그리고 조선

총독의 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이었다.

한국인 최초의 운전면허 제1호는 서울의 ‘이용문’ 씨이다. 그는 낙산 부자 이봉래씨의 아들로 그의 부친이 일본인 2분과 동업으로 1913년에 세운 ‘경성 운전수 양성소’를 졸업하면서 면허를 취득했다.

운전면허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취득하고, 운전시엔 반드시 휴대해야 하는 자격증이다.

미국의 운전면허는 성인의 증표이자, 자신의 신분증이며, 운전 자격증으로, 개인의 필수 증명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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