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의 행복칼럼] 품위를 잃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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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의 행복칼럼] 품위를 잃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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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오면서 다양한 이름으로 급료를 받았다. 봉급, 사례비, 월급, 교통비 등등이다. 그런데 내가 받은 급료 중에 가장 근사한 이름이 ‘품위 유지비’다. 30년 전 훈련소에 입소해, 군종장교(군종목사) 후보생으로 군사훈련을 받으며 품위 유지비를 받았다. 사관생도를 포함한 모든 장교 후보생에게 지급되는 품위 유지비는 장교들에게 품위를 지키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품위 유지비’라는 이름이 맘에 들었다. 그래서 자주 세월이 흘러 아내에게 용돈을 타야 할 때, 그 용돈의 명목을 ‘품위 유지비’라 불렀다. 아내는 남편의 알량한(?) 품위를 위해 함부로 삭감하지 못했다. 출장비나 한턱(?)을 내야 할 때도 ‘품위 유지’를 언급했다. 아내는 나의 품위를 잘 지켜 주었다.

   

모든 사람은 ‘품위 있는 삶(life with dignity)’을 바란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좋은 가정, 좋은 집, 좋은 자동차 등등을 추구하는 이유도 품위를 위해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품위를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것들을 과도히 추구하다 품위를 잃는 경우가 많다. 품위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위엄이나 기품’ 혹은 ‘직품(職品)과 직위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라고 사전은 정의한다. 사람이 스스로 기품을 갖추고 계급과 신분에 맞게 살아야 함을 의미한다. 

   

훌륭한 CEO로 기억되는 잭 웰치 전 GE회장의 어머니는 훌륭한 신앙인이었다. 잭이 고등학교 아이스하키팀 주장이었을 때 연장전에서 라이벌팀에 아깝게 졌다. 분노한 잭은 스틱을 빙판에 내동댕이치고 라커룸으로 갔다. 그때 그의 어머니가 따라가 그의 멱살을 잡았다. “패배를 인정하는 법을 모른다면 절대로 승리하는 법을 알 수 없다”라며 호되게 꾸짖었다. 웰치는 이때 어머니 가르침을 평생 가슴에 담았다고 한다. 멋지게 이기고 깨끗하게 지라는 교훈이다.

   

새만금 잼버리(Jamboree)대회의 실패 원인을 논하는 고관대작들을 보며 우울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맡은 일과 주어진 직품(職品)과 고액연봉의 의미를 모르는 것 같다. 내로라하는 직책과 명예를 가진 그들이 쏟아내는 면피성 발언에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어느 한 사람도 깨끗하게 “내 잘못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현재 한국의 수준이다. 

   

품위 없는 모습은 정파를 가릴 것이 없다. 정부 여당도 그리고 야당도 마찬가지다. 시시한 싸움의 반복이다. 사안에 따라 공수가 바뀔 뿐 비난과 비판 그리고, 공격과 수비 방식이 똑같다. 마치 정교한 시나리오에 의해 겨루기를 하는 것 같다. 서로를 탓하며 상대에게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은 품위 실종상태다. 

   

기성세대들이 책임을 전가하고 서로 비난하는 모습이 젊은 세대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우리 사회는 모든 역량과 지식을 동원해서 정직과 겸손의 가치를 허물고 있다. 이런 사회라면 교실과 가정에서 정직과 용기를 아무리 가르쳐도 소용없다. 아이들은 배운 대로 살지 않고 본 대로 살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좋으니 아무런 변명과 비난 없이 “내 탓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나타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렇게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에게는 관용을 베풀고 그 품위를 지켜 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데 품위 유지비를 받았던 고급장교들이 해병대 사태에 책임을 전가하는 뉴스를 본다. 참으로 씁쓸한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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