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근 칼럼] 젊음과 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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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칼럼] 젊음과 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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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우 근 

변호사 / 숙명여대 석좌교수 


‘남은 수명에 비례해 투표권을 주어야 한다.’ 한여름의 무더위를 더욱 뜨겁게 달군 폭탄선언이다. 이 말을 한 제1야당 혁신위원장이라는 사람은 청년들의 정치참여를 호소하는 발언의 진의가 잘못 전달되었다고 변명했지만, ‘미래가 짧은 사람들…’ 운운한 막말을 ‘노인 폄훼’ 말고 달리 어떻게 새길 수 있을까? 언필칭 진보를 외치는 사람들의 노인 비하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노인들은 (투표 안 하고) 집에서 쉬셔도 된다.” “60, 70대에는 뇌세포가 변해 전혀 다른 인격체가 된다.” “(노친네들 투표 못하게 온천여행 보내드리는 당신이) 진짜 효자!” 


노년 세대의 보수적 투표성향을 마뜩잖게 여기는 저들의 머리에는 ‘노인은 보수, 청년은 진보’라는 고정관념이 박혀있는 듯하다. 그렇지만 보수와 진보는 나이의 문제가 아니다. 마음의 문제다. 늙음과 낡음은 다르다. 몸은 늙어도 정신은 낡지 않고 오히려 늘 새로워지는 원숙한 인격, 옛것과 새것을 한 품에 아우르는 백발의 지혜가 드물지 않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가지만,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 사도바울의 말이다. 낡음과 새로움은 겉모습이 아니라 속마음에 있다는 뜻이다. ‘젊다’는 형용사, ‘늙다’는 동사다. 젊음은 특정한 시기의 어떤 모습을 가리키고, 늙음은 오랜 세월과 함께 진행되는 생명의 운동성을 나타낸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숙성이 이뤄진다. 인격도 그럴 것이다. 사무엘 울만은 <청춘>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읊었다. “젊음은 인생의 어느 시기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다. 그것은 장밋빛 뺨, 앵두 같은 입술, 하늘거리는 자태가 아니라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열정을 말한다….” 


우리 사회는 보수와 진보의 싸움이 유별나다. 그 보수가 참 보수인지, 그 진보가 진정한 진보인지 모호하기 때문이다. 보수정권이라는 현 정부는 미래세대를 위한 연금‧노동‧교육 개혁을 추진 중인데, 진보정당이라는 야당은 국제관계의 미래를 외면한 채 오로지 한일관계의 과거사에 매달려있다. 민족은 보수우파의, 세계화는 진보좌파의 가치이지만, 우리 정치권의 진보는 민족을 모든 것보다 우선시하고 보수는 민족의 울타리를 넘어서려 한다. 핵무기를 거머쥔 북한에 대한 호불호가 보수진보의 성격을 거꾸로 뒤집은 것이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인간을 ‘세계 내 존재’ 곧 구체적 시간과 공간의 생활세계 속에서 염려를 안고 살아가는 역사적 존재라고 규정했다. 일상적 인간의 현존재는 역사성과 떨어질 수 없다는 뜻이다. 역사에 대한 깨달음은 오랜 세월을 겪어온 삶의 체험이 클수록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어제의 진보가 오늘의 보수로 쇠락하고, 오늘의 보수가 내일에 새로운 개혁의 날개를 펴는 것이 인류역사의 큰 흐름이다. 보수와 진보는 서로 싸우는 적군이 아니라, 오케스트라의 수많은 악기들처럼 서로의 다름 속에서 일치를 향해 함께 나아가는 동반자여야 한다. 


겉은 낡아가도 속은 날로 새로워지는 것이 아름다운 늙음이요, 그 늙음 속에서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새로움을 발견하는 것이 아름다운 젊음이다. 젊음의 아득한 꿈길을 가로막는 어른 세대나, 늙음의 경험과 희생을 멸시하는 젊은 세대나, 인생의 오묘한 기미(幾微)를 모르기는 매한가지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열린 보수는 감동적이고, 역사와 전통 앞에 머리를 숙일 줄 아는 겸손한 진보는 믿음직스럽다. 


투표는 미래를 위한 선택만이 아니다. 어제를 살아왔고 오늘을 살아가며 내일을 살아가려는 통시적(通時的) 결단이다. ‘미래에 살아있지도 않을’ 늙은 세대에만 맡길 수 없고 ‘과거를 살아보지도 못한’ 젊은 세대에게만 내맡길 일도 아니다. 미래를 품은 젊음, 역사를 품은 늙음…, 밝은 사회는 그 꿈과 경험의 만남을 요구한다. 젊은이의 꿈을 단지 철부지의 불온한 반항쯤으로만 몰아붙이지 않는 너그러운 노년, 생명의 불꽃이 나날이 사위어가는 은빛 머리의 연륜 속에서 ‘위로받아야 할 고독한 영혼’을 발견할 줄 아는 따뜻한 젊음, 그 동행이 아쉽다. 철없는 정치꾼들은 결코 알지 못하는 그 아름다운 동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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