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영수의 코미디 40년 연예비사 월드컵 4강 특등공신 연예인축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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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영수의 코미디 40년 연예비사<16> 월드컵 4강 특등공신 연예인축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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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 연예인 축구단 멤버들과 기념촬영(위).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코메디YB팀의 구봉서, 서영춘, 송해, 박시명,이용식, 손철 등 당대 스타들이 포즈를 취했다.   /엄영수 제공


#. 연예인축구단 사라지다

1983년 멕시코 19세 이하 세계청소년 남자축구선수권대회 4강 진출은 2002년 한일월드컵대회 4강 신화를 만드는 일등공신이었다. 일등공신은 많다. 붉은악마, 잔디구장 건설, 용품개발, 기술개발 등 등. 


특등공신이 있다. 연예인축구단이다. 70년대 중반부터 연예인축구단이 생겼다. 연예인팀을 초청하면 공연도 함께 따라온다. 일류스타들과 가까이서 어울릴 수 있다. 동시에 축구도 보고 쇼도 보고 스타도 보고 엑스트라도 보고 별거 다 본다. 


하루종일 살을 부딪히며 승부를 다툰다. 격려와 성원 그리고 경쟁과 혈투 속에 즐거운 교류가 이루어진다. 경기가 끝나면 선물을 교환하고 기념촬영을 한다. 목욕을 하고 맛있는 식사와 대화 속에서 여흥과 소주가 곁들어지면 평생동지로서 형님아우가 맺어진다. 


이것은 인생에 있어서 또 다른 경험이고 재미다. 마을 조기축구회 시, 군, 구, 읍, 면 축구회의 연예인축구단 초청경기가 유행처럼 번져 나갔다. 붉은악마는 국제경기가 있을 때만 응원하고 국민들은 TV를 볼 때만 응원한다. 연예인축구단은 상시 어디든 출동하여 축구홍보, 대회, 분위기 조성, 보급, 친교에 기여한다. 국민건강과 국민총화에 큰 역할을 했다. 월드컵 4강 신화의 특등공신은 연예인축구단이었음이 명백히 입증됐다. 그러나 입증하면 뭐하나 연예인축구단은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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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단의 코미디

연예인 축구대회가 동대문운동장에서 매년 열렸다. 가수, 영화배우, 코미디, 탤런트 4개 팀이 출전한다. 연예인 끝발이 잘 먹힐 때라 TV와 라디오를 통해서 중계방송도 됐다.


영화배우팀 대표선수로 출전했던 허장강 선수가 경기 중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얘기치 못한 일이 있었다. 남진 선배의 회고다 “배우 중에 최고의 명배우, 연기에 달인을 꼽으라면 당연히 허장강 선배님이다. 도둑, 깡패, 사기꾼, 양아치, 하인, 악질업주, 악당, 거지, 전과자, 간신배, 부랑아 등 어떤 역할을 맡겨도 무난히 잘 소화할 뿐 아니라 새로운 성격을 창조하는 독특한 배우다. 언제나 재미있고 실감나게 표현해서 감동을 주었고 폭이 넓고 속이 깊은 배우로서 많을 것을 배웠다.” 


그 시절에 연예인은 건강검진이나 몸 관리는 전혀 생각을 못하고 살았다. 코미디언 쓰리보이 선배가 경찰 출두 요청을 받았다. 우선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주변의 얘기에 피해 있었다. 어느 해인가 경기장에 나타나 코미디언 대표선수로 뛰었다. TV로 이 광경을 보고 재빠르게 달려온 수사관에게 붙잡혀 가는 촌극이 발생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출전선수 환송식이 열린 잠실운동장 특설무대 MC 이덕화, 김흥국이 수 많은 관중을 놓고 격려와 필승의 쇼를 하던 중, 코미디언 김성남(하나둘셋 TV유치원 MC)이 무대에서 스탠드 쪽으로 건너뛰다 실수하여 4m 아래로 거꾸로 떨어져 머리가 쳐박혔다. 팔다리가 부러지고 금이 가고 얼굴은 콘크리트 바닥에 헤딩하여 마취 안 하고 33바늘을 꿰맸다.


"덕화형 피가 너무 많이 난다. 의식이 없는 것 같아. 성남이 형 죽을 거 같은데 하필이면 얼굴을 콘크리트 바닥에 들이대냐? 들이대는 건 내가 하는건데…"


"흥국아 걱정하지마라. MC는 할 말이 많아. 성남이 얼마나 말이 많은 애냐. 할 말이 많아서 쉽게 안 죽어.” 일년 넘게 치료는 힘들었지만 예상대로 죽지는 않았다. 그러나 하나둘셋 TV유치원 MC에서는 내려왔다. 할 말이 없어졌으니 극히 몸조심 할지어다.


연예인 축구단의 효시는 소리나축구단으로 초대단장 서유석 다음엔 남보원, 이태원~. 총무는 김경남. 회비는 월 1만원. 1974년 창단해 6년 간 지속했다. 회원 수는 30여 명. 모든 조직이 무너질 때는 아주 작은 이유로 순식간에 와해된다.


작곡가 박성규 집행부가 들어서서 친교강화를 위해 자주 뭉쳤다. 주병진 이택림은 탕평책을 주장했고, 최백호는 중재했다. 임창제, 이문세, 김씨네, 윤천금은 어땠을까? 그 이후 소리나축구단은 더 이상 소리가 나지 않았다. 이 와중에 한무 선수는 매주 1만원씩 6년간 총무에게 차비를 타냈다. 명목은 선배의 취미생활이였단다. 독인지 약인지 앵무새축구단으로 분화된다. 김경남 총무가 탤런트팀 빅토리아축구단에 합류하여 미국동포와의 교류전에 나서자 한무, 석현 단원은 최봉호 회장의 무궁화축구단으로 옮긴다. 남은 인원은 뿔뿔이 흩어지고 곧 회오리축구단이 나오면서 연예인축구단 핵폭발로 이어졌다.


#. 축구단의 내리막길

경기도 생활체육회 축구심판 1급 자격증 소지자 메기병장 이상운은 연예인축구단이 왜 내리막길인가에 대한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다른 종목이 많이 생겼다. 각종 리그전을 유튜브 케이블로 중계까지 한다. 축구는 크게 다칠 위험이 있다. 보험보상 치료비 지원이 없다. 장기치료를 하면 연예인 생명에 지장을 준다. 단체경기는 아무리 잘해도 결과를 나눠 가진다. 개인주의에 물든 신인들은 개인기로 보상받는 종목을 선호한다. 소속사에서 대가 없이 희생을 강요하는 축구단 활동을 제한한다. 100세 시대 젊은이들은 늙어가면서 노장선수와 어울리지 않으려 한다. 연예계가 특히 심하다.


1981년 개그맨이 되자 선배들의 권유에 의해 당시 잘 나가던 모 연예인축구단에 들어갔다. 축구단이 없어질 때까지 경기는 한 게임도 못 뛰어 봤다. 해설 최병서, 아나운서 엄영수가 폭소중계를 해서 웃기느라고 하루종일 떠들어 댔다. 끝나고 나면 기진맥진 목 건강을 크게 해쳤다. 지금도 후유증이 있다. 연예인은 목소리가 생명인데 손해가 컸다. 


어떤 연예인축구단이든 경기장 안은 항상 시끄럽다. 연예계는 일제강점기의 잔재인 선배의 횡포가 악극단에 남았다가 방송계로 전해져 한때 후배들은 매우 힘들었다. 볼을 잡으면 사방천지에서 볼 달라는 선배가 너무 많다. 자연히 목소리 크고 막말하는 쪽으로 주게 된다. 그런 선배는 볼을 꼭 빼앗긴다. 개인기가 딸려서 빼앗기고 후배를 탓한다. 볼 공급을 못 받은 선수들은 게임이 끝나면 후배에게 트집잡고 화풀이 한다. 운동장에서 팬들이 지켜보고 있는데도 말이다. 


누가 축구 하러 오겠나? 어떤 연예인축구단의 결산보고회 ‘우리 축구단이 유명스타가 많아서 흥행이 잘됐습니다. 일요일마다 빠지지 않고 전국을 누비고 다녔는데 지금 억대가 넘는 돈이 있어야 맞는데 돈이 다 어디 갔습니까?’ ‘내가 돈을 보길했어 쓰길했어 H형이 싸우나 한다고 해서 얼마 가져갔고, S형이 애 아프다고 하니까 얼마 가져갔고, Z형이 배고프다고 밥먹는다고 하니까 얼마 가져갔고, 이렇게 저렇게 쓴 거 아냐. 내가 먹었냐고 너 내가 먹는 거 봤어.’


이게 연예인축구단의 민낯은 아닐 거다. 축구 끝나고 카드나 고스톱을 강요하여 억지로 했다. 전문가인 선배들에게 매번 잃었다. 박카스를 고액에 강매하는 선배도 있었다. 선배는 항상 정당하다. 후배에 대해 입법, 사법 행정권을 다 갖고 있던 시절이다. 세 사람이 가져간 돈은 아무리 크게 잡아도 5만원도 채 안되는 금액인데 억대의 돈이 없어졌다면 대형사고 아닌가? 


인기도 없고 공연도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잘 사는지 이해가 됐다. 이런 상태에서 그래도 축구단이 존재하고 꾸준히 성장해 갔다. 후배들이 그만큼 참고 이해한 거다. 그 시절의 후배들은 참 인내가 강했다. 착했다.


연예인축구단의 파산 원인은 대개 회계부정에 있다. 후배는 큰 직책을 맡지 않았으니 부정을 저지를 수도 없다. 인기스타를 많이 포함할 수록 초청비는 비싸진다. 외국에 동포원정 경기도 가게 되니 시간이 가면 발전기금이 쌓이게 된다. 그래도 다투는 축구단은 아주 좋은 팀이다. KBS 희극인실원을 주축으로 하고 MBC희극인실도 가세하여 코미디축구단을 결성했다. 왜 내가 가입하게 됐는지는 나도 모른다. 친선도모와 건강이 목적이란다. 나는 누구와도 친하다. 그리고 건강하다. 일요일 하루 쉬는데 그 시간마저 나가서 선배들 심부름하고 잔소리 듣고 물주전자 들고 다니면 오히려 열 받고 힘들어서 건강을 해칠 염려가 있다. 


후원금, 지원금 등을 각계 각층으로부터 꽤 받았다. 기업으로부터 물품 협찬을 받아 창고에 가득 쌓아놓기도 했다. 어느날 어제 저녁에도 있었던 축구단 사무실이 아침에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기금도 사무실 용품도 다 없어졌다. 그런데 누구하나 말하는 사람이 없다. 단원 관계자 합해서 100여 명이 넘는다. 회장, 총무, 감사, 경리, 사무실 직원 있을 건 다있었다. 한결같이 모른다고 한다. 나도 모른 척 했다. 30년이 흐른 지금도 모른다. 계속 모른다. 떠들면 불이익을 받으니 누구라도 입을 열지 않는 것이리라. 시끄러우면 사라진다더라. 내가 떠벌리는 것을 보니 모난돌이다. 정 맞기를 기다린다. 고난을 버텨 온 모든 연예인축구단에 감사한다. 연예인축구단 전성기 부활을 기대한다. 그날은 한국축구가 월드컵 결승전에 진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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