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영수의 코미디 40년 연예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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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영수의 코미디 40년 연예비사<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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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무대 '짝퉁가수'들의 버라이어티쇼(위). 엄영수-오동광-오동피.  /엄영수 제공

#. 사라진 잉카제국 밤무대

밤무대가 사라졌다. 화려하고 멋진 쇼가 없어졌다. 월남전 때도 10.26 때도 오일쇼크 때도 IMF 때도 잘 돌아갔었는데 대량 실업자가 발생한다. 악단, 무용단, 합창단, 무명 연예인, 각설이, MC, 그룹사운드, 음향기사, 조명기사, 웨이터, 웨이추레스, 지배인, 영업부장, 연예부장, 기도, 무대연출 등


이쯤되면 재난이다. 대재앙이다. 더욱 힘들게 하는 건 공적지원이나 구호조치가 전혀 안 되는 직종이라는 것이다. 이제 보니 야간업소는 그간 많은 식구를 오랫동안 먹여 살렸다. 이런 변화를 아직 모르는 사람도 많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서서히 침식해 왔기 때문이다. 잉카제국 마야문명처럼 전설 속으로 사라졌다고나 할까. 


국회 앞 농성이나 삭발, 단식, 시가행진 등 대책 마련을 호소하는 투쟁을 강행해야 하는 거 아닌가. 혈서를 쓰고 규탄대회라도 벌여야 한다. 그러나, 그걸 하지 못한다. 유흥업소, 무명 연예인이란 명칭이 발목을 잡는다. 투쟁도 자격증이 있어야 하나?


무명 없는 유명이 있을 수 없다. 그간 밤무대가 배출한 스타들은 야간업소 살리기, 밤무대 쇼 살리기 투쟁에 적극적으로 앞장 서야 한다. 업소에 보은해야 한다. 일어나라, 총궐기하자. 


그럼 누구를 대상으로 싸우나? 그냥 떠들어보자. 듣는 자가 알아서 하게. 유흥업소, 야간업소하면 막연한 부정적 의식이 있다. 뭔가 폭리나 탈세가 있지 않을까? 건달이나 조직이 있지 않을까?


국민건강에 사회건강에 어떤 도움을 주었을까? 어느 분야에나 다 적용되는 일반적인 추측에 불과하다. 야간업소의 순기능을 따져보자. 서민대중의 애환을, 희노애락을 잘 받아준다. 스트레스를 풀어준다. 휴식과 위안을 준다. 내일의 희망을 갖게끔 즐거운 쇼를 보여준다.


마음 껏 소리치고 신나게 놀 수 있는 공간을 준다. 친교, 접대, 의전, 관광, 비즈니스의 장을 만들어 준다. 새로운 쇼문화를 개발한다. 무명을 키워 유명 스타연예인을 만든다. 많은 인력을 고용해 일자리를 준다.


실제로 확인되는 순기능이 이렇게 많다. 그런데 왜 그간 나쁜 시선으로 봐 왔는가. 그 좋은 데를 매일 못가니까 화가 난다. 분풀이를 해 온거다. 이제 화를 풀어도 된다. 신나게 웃어라. 야간업소 밤무대는 사라졌다.


#. 극장쇼 지고 밤무대 뜨다

60년대 중반까지도 쇼 문화는 악극단체가 주도하는 극장쇼나 가설극장 전국순회공연 쇼가 대세였다. 이 시기에 고도의 경제성장이 급속도로 이루어지면서 TV문화가 확산됐다. 대형 야간업소가 밤무대 쇼를 만들었다. 


거액의 출연료를 주고 많은 연예인을 써서 과연 경영이 될까 의심을 했지만 문을 열자마자 손님이 메어 터졌다. 대박이었다. 폭발적으로 전국이 유흥업소화가 됐고 그야말로 밤마다 불야성을 이루었다. 밤무대 쇼는 매력이 있었다. 극장쇼는 먼 발치서 단순히 쇼를 지켜보는 감상 수준이었다. 밤무대쇼는 술과 음악과 노래와 춤이 있고, 시중을 들어주는 파트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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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스타들을 한 곳에서 여러 명 만날 수 있다. 악수도 한다. 사인도 받고 사진도 찍는다. 운이 좋은 날은 스타와 합석을 해서 술잔을 주고받는다. 장시간 대화를 한다. 특실룸에서는 직접 마이크를 잡고 누구나 스타가 될 수 있다. 흥이 나면 고액의 격려금도 좋아하는 스타에게 전한다. 그때의 기분은 천하가 내 것 아닌가. 물장사를 하면 돈방석에 앉는다는 말이 유행했다. 많지 않은 비용으로 여러 가지를 즐길 수 있는 업소 밤무대 쇼장으로 고객은 끊임없이 밤새도록 밀려들었다. 경기도 좋았다. 월남전, 중동건설 붐, 세계경제 호황, 수출특수를 타고 업소는 번창일로였다. 


그러다가 극장쇼는 큰 타격을 받는다. 그래서 나온 것이 ~가수 ~스타 리싸이틀쇼다. 양훈 양석천 장동휘 선배 스타 몇 분은 연예계 최고 스타들이 어떻게 술취한 사람 앞에 가서 쇼를 할 수 있냐. 극구 반대하기도 했다. 날이 갈수록 극장쇼 쇠퇴하고 야간업소 밤무대는 활짝 꽃을 피웠다. 반대하던 선배들도 어느새 합류했다.


#. 내 칼럼도 믿지마라

야간업소 일하면 출연료를 줄 때 관행상 어음을 주는 수가 많다. 업주의 갑질이다. 경제적 약자이고 언제든지 말 안 들으면 업주에 의해서 잘리는 무명 연예인의 슬픈 현실이다. 결재날 부도가 났다. 끝까지 믿어왔다. 끝까지 못 받았다. 선량한 척 할수록, 인자한 척 할수록, 꼭 부도를 낸다. 방송부터 시작했고 인지도를 갖춰서 무대를 뛰었기 때문에 현금을 요구할 처지는 됐었다. 


인기도에 따라 현금과 어음을 섞어서 주는데 겁 없이 사람을 믿고 어음을 받았다. 옛날 어머님이 늑대가 물어 뜯어 갈 놈들, 쳐 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들, 이런 말씀을 자주 쓰셨다. 그때 어머님 속상한 정도를 어머님의 억울함을 전혀 몰랐다. 이제 나이들어 부도를 당해보니, 어머님께 그때 위로의 말 한마디라도 해 드리지 못한 것이 한이 된다. 얼마나 아프셨을까, 얼마나 한이 되셨을까?


지금 잘나가는 일류가수 Y양 남편이 요즘 자금회전이 안 돼서 어음을 드렸는데 저를 믿고 일해 주시면 제가 책임지겠어요. 그것도 역시 부도였다. 지금 잘 나가지만 안 갚는다.


누군가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전해왔다. 남편과 헤어지면서 손해를 많이 봤단다. 그래서 자기는 피해자라는 것이다. 더 큰 피해를 받았으니, 너 같은 소액 피해자는 끽소리하지 말라는 뜻이다. 누가 직접 내게 전한다. 저것들 위장이혼했다는 것이다. 어음을 서슴없이 끊어주는 것은 부도내는 맛에 끊어준다고 하지 않나? 그냥 1000만원 잃어버린 것은 차라리 참을 수 있다. 


매일 밤 그 시간에 피곤하고 졸린 몸을 이끌고 무대에 섰다. 90일 동안 일하고 한 푼도 못 받았다. 1989년경 신문마다 인천 대형호텔에 동양 최대의 나이트클럽이 생겼다는 광고가 났다. 연예인들이 앞 다투어 로비를 해서 일하러 들어갔다. 메이저 신문에 전면 대형광고를 몇 달 동안 뿌려대고, 개런티도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으로 후하게 다해줬다. 드디어 대형부도가 났다. 모든 걸 어음으로 결재하고 매일 매일 장사를 현찰로 해서 하루 한가마니씩 현찰을 미국으로 실어날랐다.


나이트클럽 안에 세 들어 라면 파는 아줌마, 물품 보관소하는 아저씨 등이 보증금을 통째로 날렸다. 직원 월급조차 심지어 청소부, 광고 포스터 붙이러 다니는 선전원에게까지 1년짜리 장기어음으로 주고 현찰 챙겨서 미국으로 떴다.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유머1번지 코너가 빵뜨면서 미국에 초청공연가니 그 사기꾼이 아주 잘 먹고 잘 살고 있었다. 나쁜 일을 하면 망한다. 천벌 받는다. 오래 못산다는 것은 사기꾼들이 지어낸 립서비스다. 믿어서 비극을 만들고 믿어서 일생을 고생하는 사람 연예계 와서 너무 많이 본다. 믿지 않아서 죽지는 않는다. 믿지마라. 내 칼럼도 믿지마라.


#. 무명의 100가지 특혜

전설 따라 삼천리 오늘은 무명가수…. 유명 연예인을 꿈 꾼다면 무명으로라도 밤무대에 서라! 절반의 성공은 거둔다. 무명 정치 신인이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순간 100개가 넘는 특권이 생긴다는 말이 있다. 밤무대의 특혜를 따져보자.


먹고 마시고 잘 수 있는 거쳐가 생겼다. 굶어 죽거나 병들어 쓰러지는 일은 면했다. 당당한 문화예술인이다. 무명이건 불명이건 단명이건 간에 프로가 됐다. 싸구려라도 가격이 있다. 상품이다. 직업이 가수다.

대스타도 될 수 있다. 젊으니까 밤마다 대중 앞에서 노래를 한다. 반응을 직접 체험한다. 정확한 심사를 받는다. 악단의 지적도를 받는다. 날로 실력이 향상되게 돼 있다. 오케스트라의 완벽한 생음악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것은 시골 벌판에서 허공에 대고 맨 목소리로 연습하는 것과는 품격이 다르다. 무대에서 조명을 받고 꽃가루가 날리고 뒷배경에 영상이 뜨는데 노래가 깔리니 감정이 절로 잡히고 기량이 고급화가 된다.


자취방에서 누가 들을까 이불 뒤집어 쓰고 읊조릴 때와는 천앙지차다. 무명이기 때문에 겸손하다. 무명에 거만까지 겹치면 바로 퇴출이니까 시간이 가면 손님과 교류한다. 오 사장, 박 회장, 김 박사를 알고 작사가, 작곡가를 통해 곡도 받고 음반도 만든다. 유명스타들 공연하는 모습을 보고 스테이지 매너를 익히고 그들이 받는 예우와 개런티를 알고 스타에 의욕을 불태운다. 


자극도 받고 열도 받고 욕심도 내면서 스타를 향해 닦아간다. 물론, 사람 사는 곳이라 건달도 사귀고 주먹쟁이에게 시달리기도 한다. 턱없는 실력에 욕심을 냈다가 낭패를 당하기도 하고 사기꾼 만나서 고향에 있는 논밭 다 날리고 망신당하고 증발하는 사람도 없는 것은 아니다.


밤무대는 웬만한 가요학원 음악학교 음악대학보다 더 많은 더 다른 더 높은 것을 가르친다. 사회생활과 인간관계와 심성교육을 철저히 가르친다. 선생님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교육기관이 따로 있는게 아니다. 우리의 생활이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이 스승이요 학교다. 그것을 알고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 환경에서는 오래 참고 버티면 드디어 무엇인가는 이루어 질 수밖에 없다. 어느 날 나훈아, 조용필, 조항조, 진성, 송대관, 태진아, 최진희, 김수희, 혜은이, 인순이 수도 없는 대형가수 초특급 스타가 탄생하게 된다. 밤무대는 방송으로 가는 행운열차, 스타탄생의 징검다리 역할을 해왔다.


무명을 겁내지 마라. 무명이기에 유명이 되는 것이다. 오랜 기간 더 오랜 기간의 무명은 새로운 스타를 창조했다. 밤무대의 진실이다. 밤무대의 전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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