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의 행복칼럼] 교회는 선교 공동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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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의 행복칼럼] 교회는 선교 공동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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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쉐어 USA 대표

   

신앙생활에 교회가 중요하다. 현대에 등장하는 이단 가운데 교회론적 이단이 많다. 교회론의 오해가 많다는 말이다. 아쉽게도 신학교에서 교회론은 가볍게 다뤄진다. 반면 사역현장에서 교회론은 중요하다. 건강한 교회와 건강한 사역을 위해 건강한 교회론이 필요하다.

   

교회가 주님의 몸이라는 것은 교회가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대체기관이라는 의미다. 교회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선교사였던 예수님을 대신하는 선교공동체다. 그러므로 교회는 ‘선교공동체’라는 말은 교회의 본질과 존재론적 사명을 설명한다. 에밀 브루너는 이 말을 “불은 타오름에 의해 존재하고, 교회는 선교사명 때문에 존재한다”라고 근사하게 풀어냈다.

   

오래 전 잠시 교제했던 목사님이 ‘자신은(자기가 섬기는 교회는) 선교하지 않는다’고 기회있을 때마다 말하는 것을 들었다. 정말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듣는 것이 힘들었다. 그렇게 위험하고 무식한 얘기를 공개적으로 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는 교회도 모르고 선교도 모르는 무식하고 근본 없는 목사라고 생각한다. 여러 사건과 사고를 통해 우여곡절을 겪었고 교제가 끊어졌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런 목사를 종종 만난다. 

   

최근 일부 선교학자들이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를 말하는데, 의도는 동의하나 그 용어는 동의하지 않는다. 역전(驛前)앞과 같은 말이다. 교회론의 무지에서 나온 용어다. 그만큼 교회가 존재론적 사명인 선교를 잃었다는 방증이다. 교회 자체가 선교공동체다! 선교에 의한, 선교를 위한, 선교의 공동체가 교회다. 교회는 선교로 존재를 증명한다.

   

선교는 교회의 존재적 의미요, 교회 건강의 척도다. 교회는 선교 없이 존재할 수 없다. 화란 선교회 사무총장 요한네스 블로우(Johannes Blauw)박사는 <교회의 선교적 본질(The Missionary Nature of the Church)>에서 성경적으로 교회와 선교가 불가분의 관계라고 주장한다. 그는 성경 전체에서 교회의 선교적 본질의 기초와 의미를 찾고 모든 교회는 세상에 파송되었고, 세상 속의 교회요 세상을 위한 교회라고 규정한다.

   

사도행전의 교회는 사도들 모임의 확대판이다. 사도들 모임은 예수님 사역 연장선에 있다.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떠난 이 땅에 예수님의 사역을 이어서 복음을 전하고, 병자를 고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을 했다. 사도들이 했던 일은 예수님께서 복음서에서 하셨던 일들이었다. 교회는 그 사도들의 일, 즉 예수님의 일들을 이어받았다. 이것이 교회 사도성이다. 교회의 사도성은 교회의 모든 속성에 우선한다. 사도성이 없다면 교회가 아니다.

   

좋은 교회는 예수 향기를 품은 교회요,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교회다. 좋은 교회는 선교하시는 예수님 모습을 보여주는 선교공동체다. 초대 교회가 위대한 것은 부흥하고 성장해서가 아니라 예수님 마음을 가득 품은 교회였기 때문이다. 좋은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요 좋은 성도는 선교하는 성도다.

   

초대교회의 능력은 선교적 야성에서 나왔다. 예수님의 마음과 시선으로 세상을 선교했던 초대교회는 복음으로 로마를 정복했다. 사도만 선교하지 않았다. 초대교회 모든 성도가 선교사였다. 선교하는 교회가 행복한 교회다. 선교를 통해 섬기고 나누며 하나님의 사랑을 나눌 때 영원한 행복이 살아 숨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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