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 늘 교통사고만 당하는 사람, ‘더미(Dum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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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등] 늘 교통사고만 당하는 사람, ‘더미(Dummy)’

웹마스터

이보영

한진해운 전 미주지역본부장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에서, 실제 배우가 과격한 액션연기(무술)나 위험한 장면을 소화하기 힘들 때, 그 분야에 전문적으로 숙달된 사람을 대역(代役)으로 고용하는데, 이들을 ‘스턴트맨(Stunt Man)’이라고 부른다. 스턴트맨 중에는 죽는 역할만 대역하는 배우가 있다. 총에 맞아 죽고, 칼에 찔려 죽고, 불에 타서 죽고, 열차에서 떨어져 죽고, 달리는 말에서 떨어지는 등 다양한 죽음으로 그는 수백 번 죽는 사람이다.


영화의 세계에 항상 죽는 ‘스턴트맨’이 있다면, 자동차의 세계에도 항상 교통사고를 당하는 사람이 있다.

그를 ‘더미(Dummy)’라고 부른다.


자동차 메이커들은 신종(新種)차량을 개발하면 반드시 그 차량의 안전도와 견고성 측정을 위해 고의적

충돌사고 테스트를 거친다. 테스트는 고정된 벽으로 시속 40마일 이상으로 달려가서 정면충돌한 후,

차량의 견고성과 파손 실태를 알아내는 실험이다.


충돌 테스트에서 차량의 외적 파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차량 내의 운전자와 탑승자의 신체적 손상을 정밀하게 진단하는 것이다. 이때 운전석과 옆좌석에 사람을 앉혀야 하는데, 사람 대신 인형을 앉힌다. 이 대역자(代役者)를 ‘더미’ 라고 부른다.


더미는 크기, 몸무게, 뼈의 구조, 관절 등 신체구조와 생김새를 사람과 흡사하게 만든 인체모형이다. 더미는 충돌 테스트에서 머리, 어깨, 가슴, 팔, 다리, 허리, 등에 부위별 부상 정도와 출혈까지 알아내고 차량의 외적 보완점과 실내 개선점을 찾아주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다.


테스트 진행자들은, 촬영팀은 차량 속에 쓰러져 있는 더미의 모습을 촬영하고, 소방요원들은 더미를 탈출시키는데 소요되는 시간, 의사들은 탈출된 더미의 신체 상태를 점검하고, 엔지니어들은 차량의 손상 부위와 정도를 체크하게 된다. 분야별 입체적 점검을 마치면 차량의 종합 보완대책이 마련된다고 한다.


실제로 자동차의 충돌실험을 지켜보던 관람자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 충돌순간 귀를 때리는 굉음, 종이처럼 찢겨진 철판, 산산히 부서져 원래의 모습이 전혀 없는 범퍼 잔해들, 찌그러진 차체와 문짝, 에어백의 폭발, 땅바닥에 질질 흐르는 오일과 냉각수, 정신을 잃고 쓰러진 더미, 충돌 후의 광경이 너무나 끔찍해서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다고 토로한다.


충돌 테스트는 ‘정면 충돌’과 ‘측면 충돌’, ‘전복(Rollover)’, ‘차대차 충돌’로 나누어 진다. 테스트의 방법에 따라 더미는 남성과 여성, 뚱뚱한 큰 체형, 마르고 작은 체형, 유아, 초등생, 중학생 등으로 다양한 모형이 사용된다.


최근 들어 차량의 안전성에 대해 소비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또 사고 배상액이 증가하자, 제작사들은

안전성 충돌 실험에 더욱 신경을 쓰고, 더미의 중요성도 함께 발전하고 있다. 나라마다 테스트의 조건과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더미의 품질도 진화하고, 가격도 만만치가 않다. 


호주에서는 도로에서 캥거루들과 차량의 충돌 건수가 한 해에 약 2만 건이 된다고 한다. 호주 정부는 캥거루 보호를 위해 ‘캥거루 더미’도 생산하여 충돌 테스트에 사용하고 있다.


테스트용 더미는 원래 1945년에 미 공군에서 최초로 사용했다. 전투기의 ‘조종사 비상탈출용 좌석’을 시험하기 위해 시에라사(社)가 제작한 샘(Sam)이란 모델이 더미의 시조였다.


차량의 충돌사고 테스트는 1959년 독일의 머세이디스 벤츠(Mercede-Benz)가 최초로 시작했다. 대부분 자동차 제작사들은 차량사고로 탑승자의 부상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안전성에 대한 연구를 거듭해 오고 있다. 국가차원에서도 법령을 제정하고 차량의 안전성 점검을 강화하는 한편, 운전자들에겐 교통법규를 엄격하게 지키도록 한다.


인류는 이동수단의 혁신이 일어날 때마다 커다란 변혁의 시대를 맞이해 왔다. 말과 마차에서 자동차로,

증기기관차로, 비행기로 발전해 왔다. 최근엔 지금까지 없었던 전혀 새로운 이동수단을 개발하고 있다.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AI)이 운전하는 ‘자율주행차(Self-Driving Car)’가 곧 등장할 예정이며, 사람을 태우고 나는 ‘유인 드론(Drone)’도 보게 될 것이다. 진공튜브열차 ‘하이퍼루프(Hyperloop)'는 전혀 새로운 미래를 여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


새로운 운송수단이 생기면 모든 사람들이 환영할 것 같지만, 과거 역사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기존의 방법에 익숙해 있는데, 신기술의 사용법을 새로 배워서 적응하기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이동수단(자율주행차, 유인드론, 하이퍼루프, 등)의 안전성 테스트엔 또 어떤 더미가 제작되고 사용될 것인가. 새로운 이동수단에 대해서 국가와 사회는 어떤 법규와 질서를 만들 것인가. 이들에 대한 연구가 지금 한창 진행중이다.


사람의 안전을 위해, 대역으로 항상 교통사고를 당하는 더미를 생각하면서, 성서의 한 구절이 떠 오른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한복음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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