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영수의 코미디 40년 연예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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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영수의 코미디 40년 연예비사<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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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진과 엄영수(위). 골프모임에서 엄영수, 권노갑, 남진.  /엄영수 제공

수퍼스타 남진


#. 남진이란?

살다 보면 어느 날 물이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 날이 온다. 숨이 넘어가지 않는 날도 곧 따라온다. 언제일진 몰라도 꼭 한 번 온다. 목소리가 안 나오는 날은 더 빨리 이미 와 있다. 


남진 수퍼스타의 목소리 보존비법이다. 탄산음료, 얼음 냉수, 술, 담배를 삼가한다. 여름에도 차 안에 에어컨을 틀지 않는다. 말을 아낀다. 일찍 귀가한다. 무대의상은 공연 바로 직전에 갈아 입고 공연이 끝날 때까지 옷에 구김이 안 가도록 계속 바른 자세로 서 있어야 한다. 사람과 인연을 맺으면 도중에 절대로 깨는 법이 없다. 


동창생 군대동기, 지인, 선후배, 종친회, 향우회, 친구, 일가친척의 애경사 초대에 스케줄이 없으면 반드시 응한다. 주변 사람에게 전화로 부지런히 안부를 묻고 근황을 전한다. 함께 공연한 사람에게 감사인사 문자메시지를 먼저 보낸다.


1982년 여름 MBC라디오 여수 해변노래자랑에서 초대가수와 초대 개그맨으로 만났다. 41년 간 엄 박사로 불러주신다. "엄 박사! 연예인이 훨씬 더 불리한 세상이다. 무조건 머리를 숙이고 목소리를 낮추어야 한다. 우리가 일반인보다 나은 게 하나도 없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연기만 할 수 있으면, 노래만 할 수 있으면 그나마 감사하다. 화풀이는 어리석은 짓이다. 어차피 노래나 연기로 승부를 내야지." 남진은 항상 옳은 쪽에 서 있다. 생각이 젊다. 마음이 밝다. 온몸으로 노력한다. 그래서 톱스타 행진 58년차! 


#. 영화배우 남진과 최무룡

남진 선배는 전성기 때 70여 편이 넘는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미워도 다시 한 번' '별아 내 가슴에' '우수' 등 음악과 영화를 동시에 히트시켜 충무로의 한 시절 흥행을 주도하였다.


남진: 영화배우 중에 가장 존경하는 한 분을 꼽으라면 당연 최무룡 선배다. 몇 편의 영화제작 실패로 빚쟁이들에게 가혹하게 시달렸다. 때거리가 없어 밥을 굶는 후배, 오갈데 없어 길거리 나 앉은 선배, 치료비 달라는 동료를 위해서 우선 있는 대로 다 꺼내서 쥐어주고 망신당하기 일쑤였다.


웬지 인간적인 매력이 넘치는 분이다. 얼마 전 김지미 여사께서도 언론에 나와 “여러 사람을 알고 지냈지만 가장 기억되는 가슴 속에 남아있는 분은 최무룡 배우였다”라고 회고했다. 최무룡 선배가 고향 파주에서 국회의원 선거를 나왔다. 파주 선거사무실을 예방했다. 충무로 식구들이 버스를 대절해서 엑스트라, 일꾼, 짐꾼, 스태프 배우, 조합원 등 총망라하여 2만원, 3만원씩 들고 찾아왔다. 깜짝 놀랐다.


연일 끝도 없이 이어지는 행렬을 보고 인생을 참 잘 사신 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출마에서 단번에 금배지를 달았다. 매일매일이 우리의 삶이 선거운동이다. 기라성 같은 영화계의 스타! 김진규, 박노식, 남궁원, 독고성, 서영춘, 이주일, 신성일, 허장강, 장동휘, 장혁, 이예춘, 김희갑, 황해, 신영균, 박암, 최남현, 김희라, 트위스트 김, 남포동, 이대근 명 연기를 보여준 인기최고의 배우들이다.

이중에는 수백억의 재산을 사회에 기부한 선행의 주인공도 있지만, 아쉽게도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분, 조기은퇴한 분도 있다. 너무나 애닲은 일이다. 


남진: 젊은 나이에 인기가 덜 하거나 몸이 약한 배우는 살아 남기 위해 항상 무리하지 않고 운동을 열심히 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저축하게 되고 어떤 사업으로 돈을 벌까를 연구하게 된다. 아무데나 가서 아무하고나 어울리지 않는다. 건강이 넘치고 인기절정인 배우는 돈 잘 벌겠다. 몸 튼튼 하겠다. 야간문화에 익숙해지게 된다. 술, 담배, 야식, 여자, 카드, 마작, 화투와 밤새도록 붙어 있으니, 모든 것이 망가지게 된다. 인생은 전화위복이다. 


#. 수퍼스타의 매너 

권노갑 고문께서 지난 2월, 94회 생신 축하연에 사회를 했던 본인과 축사를 했던 남진 선배를 초청하여 골프모임을 마련했다. 


이스트벨리CC에서 만난 펜: “나는 남진 스타를 좋아합니다. 스타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만날 수도 없다. 그게 무슨 대중문화 예술인입니까? 언제든지 우리가 원하면 올 수 있고 만나서 같이 웃고 울고 대화를 나누고 어울릴 수 있어야지. 스타라고 어디 있는지도 모르다가 10년에 한 번 갑자기 나타나서 노래 몇 곡하고 또 사라지고 인생은 깜짝쑈가 아닙니다. 대중에게 친절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연예계 골프의 달인 남진 선배께서는 라운딩 중에 쉬지 않고 추임새를 넣어 분위기를 이끌었다. "엄 박사! 골프는 우선 공을 맞히는 것으로 시작되니까 고개들지 말고 정확히 맞히고 나서 다른 일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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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잘 맞아 버렸다! 워메 어찌그리 잘 친다냐! 나를 이겨 먹을려고 나 몰래 라운딩을 다녔다 이거이지. 굿, 굿샷! 나이스! 베리 굿! 방향만 제대로 맞았으면 너무 잘 친공인데, 아쉽다. 아쉬워. 누가 보기 전에 얼른 한 개 더 쳐라! 한 번도 지나치지 않고 격려와 배려의 응원을 정성을 다해 전해준다.


라운딩을 마치고 악수할 때, 야! “나, 이제 한 걱정 덜었다. 엄 박사가 스윙을 어떻게 할까? 궁금했는데, 어디 가서 누구하고 골프쳐도 그런대로 따라 다닐수 있겠다 싶어, 정말 맘이 놓인다.” 


골프 강의와 조크를 적당히 섞어 바람을 잡고 라운딩 내내 웃음이 넘치는 명랑골프였다. 최고의 인기스타 남진 맞는가? 싶을 정도로 골프 매너도 후배에 대한 관심도 완전 수퍼스타였다. 연예계에 대뷔해 한 번도 ‘아낀다’ ‘관심있다’ 말은 없었지만 고개가 절로 숙여지며 존경과 감사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 도전 극복의 배후세력 오빠부대

평생 꽃길만 걸어온 것처럼 보이지만 팬들은 실상을 모른다. 군생활 3년을 월남전 참전 해병대 용사로 극히 위험한 전쟁터에서 보냈다. 파월용사에 대한 격려와 응원, 사기진작에 크게 기여했다. 졸병과 고참, 부자와 빈자, 고위층과 서민대중 누구나 병역의무 앞에 평등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포탄이 해변가 모래밭 중앙에 꽂혀 만약 터졌다면 부대원 전원이 몰살했을 것인데 불발탄이 되어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월남 근무기간이 끝났으나 재기를 위한 컴백 무대가 온 국민의 관심사였기 때문에 문화예술계, 방송계뿐 아니라 사회전체가 열광에 빠질 수 있어 제대할 때까지 월남에서 근무하였다.


나의 성공 때문에 조용한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뚜렷한 자기만의 철학이 있었다. 전역 후 서울시민회관 남진 컴백 리싸이틀은 인산인해 개관 이후 3일 간 최다 관객동원 신기록을 세웠다. 이때 오빠부대 팬클럽이 탄생한다. 나의 견해다. 조직적인 오빠부대가 금력으로 동원됐다는 것은 음해 세력의 가짜뉴스였다. 어떤 증거도 없었다. 오빠부대는 파격적 정숙치 못한 행동이라 규제해야 한다는 것은 대중의 자연발생적인 성원과 환호와 열정을 무시하는 것이다.


어쩌면 팬클럽은 양심적인 내면의 소리를 자유롭게 전하여 대중문화예술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본다. 젊은 노동자에 대한 편견이 문제였다. 치솟는 남진 인기에 대한 시샘은 남진 팬클럽의 전국화를 유발시켰고 50년이 지난 지금에도 남진쇼에는 팬클럽에서 한정식 밥상을 차려 쇼 출연자, 스태프 공연관계자, 용역등 전 인원이 식사를 하며 비용은 남진 스타가 제공한다.


남진쇼를 하는 날에는 쇼보다도 호남식으로 차려지는 식사가 더 큰 기대가 된다. 한 끼라도 건너뛰면 두고두고 섭섭하다. 승승장구 욱일승천 일취월장 그리고, 얼마 후 남진 스타는 홀연히 미국으로 떠났다. 더 큰 미래를 위해 충전과 휴식과 사색이 필요했을까? 정치적 탄압에 항거하여 망명성 외유가 불가피했을까?


변신을 위하여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가야 했을까. 여러 가설이 있다. 남진에게도 시간을 주자. 진정한 스타는 순항이 아니라 생사를 넘나들며 도전과 극복의 연속이 있어야 한다. 100세가 넘어서도 신곡을 낼 것 같다. 멈춤과 쉼이 없이 산을 오른다. 신인가수를 위한 방송과 콘서트가 전성기 때보다 더 많다. 우리는 수퍼스타 남진의 다음 무대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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