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 바퀴를 왜 ‘타이어(Tire)’라고 하는가


홈 > 로컬뉴스 > 로컬뉴스
로컬뉴스

[신호등] 바퀴를 왜 ‘타이어(Tire)’라고 하는가

웹마스터

이보영

한진해운 전 미주지역본부장


인류는 언제부터 신발을 신기 시작했을까? 

인류가 언제부터 신발을 신었는지 정확히 알수는 없지만, 동물의 뼈 조각으로 바늘을 발명해 옷을 최초로 만들어 입기 시작한 때부터 신발도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신발’ 은 ‘신’과 ‘발’의 합성어로 순수 우리말이다. 신발을 만들어 신는 동물은 오직 인간뿐이다. 인류에게 있어서 최초의 ‘교통수단’ 은 신발이다. 바퀴는 기원전 3500년경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수메르인들이 도자기를 빚는 물레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최초의 바퀴는 통나무를 납작하게 잘라 원판 형태의 바퀴에 가운데 구멍을 뚫어서 수레나 마차에 사용했다. 큰 바퀴가 필요하게 되자 나무로 큰 원을 만들고, 그 안에 바퀴살을 끼워 넣게 되었다. 또한 나무의 내구성이 약해서 금방 닳게 되자 바퀴의 수명도 늘릴 겸, 바퀴살을 탄탄하게 조이기 위해 바퀴의 외륜에 철판을 붙이게 되었다. 이 철판이 바퀴와 바퀴살, 바퀴 링 등 바퀴의 휠에 소요된 부품을 하나로 묶어주고, 조여주는 역할을 한다고 해서 ‘타이어(Tire)’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묶는다는 타이(Tie)에서 파생한 것이다. 미국은 Tire, 영국은 Tyre, 프랑스는 Tirer로 표기하고 있다.


설(說)에 의하면, 타이어는 자동차의 수 많은 부품 중에서 가장 피곤한 역할을 감당한다고 해서 ‘타이어드

(Tired)’가 어원이라는 설도 있다. 뜨거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철에도 날씨 변화에 상관없이 한결같이 자동차의 무게와 사람, 화물의 무게를 감당하면서 달려야 하는 타이어는 늘 피곤한 것이 사실하다. 19세기경부터는 바퀴에 철판대신 고무를 겉옷처럼 입혔더니 굴러갈 때 한결 부드럽고 탄력적인 느낌이 좋았다. 고무를 입힌 타이어는 미국의 발명가 찰스 굳이어(Charles Goodyear)가 고안하여, 1844년 특허를

획득하고, 1903년부터 상용화를 시작했다. 최초의 고무바퀴였다.


1888년 스코틀랜드의 수의사인 존 보이드 던롭(John B. Dunlop)은 자신의 아들이 삼륜자전거를 타고 놀다

넘어져 얼굴을 다친 것을 보고 쇠바퀴보다 안전한 고무바퀴를 만들고, 그곳에 공기를 주입해 탄력을 주는 방법을 개발하면서 공기압 타이어의 시초가 되었다. 이후, 프랑스의 미쉐린(Michelin) 형제가 1895년 공기압 타이어를 자동차용으로 발전시켜 상용화되었다. 1946년부터 등장한 ‘래디얼 타이어’는 안전성이 우수하고 고속주행에 적합하여 보편화되었고, 현재까지 대부분의 승용차는 ‘래디얼 & 튜브레스(Radial & Tubeless) 타이어’를 사용하고 있다.


비행기 타이어는 자동차 타이어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우선 비행기 타이어는 이·착륙할 때마다 엄청난 무게와 마찰을 감당해야 한다. 따라서 비행기 타이어는 자동차 타이어에 비해 약 6배 정도인 200psi의 압력을 견딜 수 있게 만들어 진다. 자동차 타이어의 공기압은 30~40 psi이다.( psi: Pound per Square Inch, 1제곱 인치 당의 중량)


자동차 타이어에는 일반 공기를 주입하지만, 비행기 타이어에는 비발화성 기체인 질소를 주입한다. 질소는 타이어가 고열을 받아도 발화나 폭발하지 않고, 저기온에서도 얼지 않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타이어의 수명은 운행거리와 기간을 따지지만, 비행기 타이어는 착륙회수로 수명을 정한다. 자동차와 비행기 타이어가 얼핏 겉모양과 구조는 비슷하지만 압력, 강도, 크기에는 큰 차이가 있다.


한국에는 고무타이어가 언제부터 알려지게 되었을까?

1880년 중반부터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해 서양문물이 조선 땅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당시 선교사들의 활동, 생활방식, 생활도구 등은 조선인들에게 큰 호기심을 발동시켰다. 특히 선교사 부인들이 주로 애용했던 자전거는 가장 신기한 물건이었다. 두 발로 페달을 밟으면 말 만큼이나 빠르게 달리고, 자전거 고무바퀴는 소리도 없이 사람의 무게를 부드럽게 이동시켜 주었다.


그 신기한 모습은 조선인들에겐 대단한 구경거리였다. 고무바퀴가 우리 땅에 처음 등장했던 시절이었다.

그후 1920년대에 일본인들이 인력거(人力車)를 조선에 들여 오면서 고무바퀴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였던 1941년 5월 드디어 서울 영등포에 ‘조선다이야공업주식회사’가 창설되었다. 일본은 한반도를 기지로 삼아 대륙 진출을 꾀했다. 이를 위해 조선 안에 타이어 제조공장이 필요했고, 일본의 ‘브리지스톤(Bridgestone)’을 조선에 진출시켰다. 이들이 세운 회사가 바로 조선다이야공업주식회사였다. 해방 후, 파산 직전에 있던 이 회사를 효성그룹의 조홍제 회장이 인수하여 오늘의 ‘한국타이어’로 발전시켰다.


타이어의 발달은 교통 속도와 승차감에 큰 변혁을 일으켰다. 어린시절 동(東)자표 검정 고무신 한 켤레로 사시사철을 보냈는데,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계절별, 색상별, 스포츠별로, 다양한 신발들을 때와 목적에 따라 골라 신는다. 나를 담는 그릇이 많다는 건 축복이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