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영수의 코미디 40년 연예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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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영수의 코미디 40년 연예비사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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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광·오동피·엄영수. 오동광·오동피 콤비. 함재욱, 나훈아, 원제로.(위에서부터) /엄영수 제공


단짝 코미디의 멸종


#. 고춘자 장소팔, 양훈 양석천(뚱뚱이와 홀쭉이), 구봉서 곽규석(막둥이와 후라이보이), 송해 이순주, 남성남 남철, 허참 정소녀, 나그네 고달퍼, 전성기와 장마철, 홍해 남춘, 배일집 배연정, 재수와 재봉, 임성훈 최미나, 위키남 허리케인, 김인수 권철호, 등신과 머저리, 돌쇠와 멍쇠, 장군 멍군, 어벙이 꺼벙이, 꺽다리와 장다리, 병태와 영자, 이정표와 하마, 이성미 김은우, 김병조 강석, 부르스 브라더스, 함재욱 원제로, 오동광 오동피, 해방 이후 단짝 코미디언으로 활약한 분들의 명단이다.


친근한 이름을 보니 추억이 묻어난다. 나그네 고달퍼는 기대가 됐지만 별 볼 일 없었다. 너무 철학적이었나? 등신과 머저리는 오재미 김진호의 초창기 이름이고, 코미디 스타 이영자의 밤무대 시절 이름 병태와 영자, 병태는 무엇을 하고 있나? 궁금하다. 대중을 웃기고 열광시켰던 웃음의 주역, 왜, 어떻게, 사라졌나? 대부분이 돌아가셨거나, 합의 하에 헤어졌고 길고 긴 세월이 흐르다 보니 말 없이 자진 소멸된 팀도 있고, 서로 다퉈서, 찾는 이 없어서, 혼자서도 너무 잘하니까 기타 등등 이유는 많다. 


검증된 정예의 웃음꾼들이 폐업을 했다면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코미디에 대한, 웃음에 대한 수요가 줄었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 벌, 나비, 개미가 줄어들면 지구에 위기가 온다는 사실을 아는가? 웃음이 줄어들면 코미디가 없어지면, 그보다 더 큰 위기가 온다는 사실은 아직 없다는 것도 아는가 곧 있게 될지도 모른다. 대중은 웃지 않고도 살 수 있는 비법을 터득했거나 웃음보다 더 좋은 건강물질을 만들어 냈을까? 하여튼 듀엣 코미디 콤비가 전멸지경에 놓였다는 것은 코미디가 설자리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웃겨도 웃음이 안나오거나 웃어봐야 별로 득 될 것이 없다. 웃음에 대한 거부 현상, 코미디 기피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갈등과 대립의 슬픈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혼자서 웃기기는 힘이 든다. 단짝끼리 콤비를 만들면 한결 쉽다. 단짝 코미디가 잘 나갈 때는 방송프로그램의 MC를 더블 MC가 휩쓸었고 코미디 프로그램도 싹쓸이를 했었다. 오동광 오동피, 원제로 함재욱 겨우 남은 두 팀은 희귀종이다. 어떻게 살아있나? 코미디박물관 보존용으로 지정해야 한다. 근래 젊은이들은 역경과 시련, 고난과 가난을 체험하지 않은 세대다. 소통과 이해, 인내와 배려가 기성세대에 비하면 비교가 안 된다. 팀 결성도 힘들지만 결성해도 버티기 힘들다. 선배들은 임종할 때까지 무대를 지켰다. 젊은 개그맨들은 데뷔 때 선발대회 출전 때만 짝을 지었다가 방송에 자리를 잡으면 바로 판을 엎어버린다.


#. 연예인의 이름짓기는 중요하다. 발음이 쉽고, 듣기 좋고, 기억되고 멋이 있어야 한다. 뜻도 깊고 맑고 경쾌한 느낌이 나야 한다. 그러나 코미디언의 경우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연예가의 작명가로 손철 선배가 유명하다. 동양화가·시인·작가·쇼 MC·DJ·라이브 음악감상실 태평양 MC, 개그맨 원조세대, 정계·재계·문화예술계·언론계의 마당발이다. 누구라도 이름을 대면 바로 전화를 통해 이곳 현재 상황을 고발하기 때문에 겁이 날 정도다. 듀엣 가수 이두진과 오세복의 예명을 지었다. 이+오=둘다섯, 둘다섯의 히트송 '긴머리 소녀' 작사도 해줬다. 천재적인 발상이다. 이두진이 그만두고 이철식으로 바뀌는 일이 생겼다. 이것도 큰 문제다. 손철 작명가는 예지가 있었다. 같은 이씨로 바뀔 것을 알고 둘다섯이란 작명을 했으니 고칠 필요가 없다. 남성 듀오 엄지와 검지를 지었다. 


김병조 손철 콤비가 결성됐다. 만화주인공 매드(김병조)와 대니스(손철)의 대화란 주제로 1974년 YMCA강당에서 개그발표회를 열었다. 당시 상황에서 이것은 획기적이었다. 그러나 대중은 아직 준비가 안됐다. 대중은 그저 대중일 뿐이다. 높게 보면 오히려 실패 확률이 높다. 손철 선배의 명작 '오동광 오동피', 무명 신인 듀엣 코미디언의 코미디를 감상한 후 붙여준 이름이다. 


#. 듀엣 코미디의 전설 오동광 오동피 살아남다. 김형곤은 코미디클럽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35년 경력으로 노래 성대모사 슬립스틱 연기의 달인이다. 빰을 때리고 맞는 장면이 압권인데, 때리고 맞으니 보는 사람이 슬퍼진다. 객석은 웃고 울다를 몇 번씩 반복하며 결국 인생이란 항상 역전과 전화위복이 있다는 데에 동의하게 된다. 쉬는 날 지방 공연가는데 도와달려며 후배 차를 나오게 한다. 기름값도 수고비도 안주고 전국일주를 하고 휴게실마다 들려 먹고 마시고 계산을 맡긴다. 서울에 돌아와 볼일 보러 여기저기 끌고 다니고 새벽에 집까지 데려다 달라며 그냥 가는 게 아니라 동네입구 생맥주 치킨집에 들려 술마시고 시간 끌고 통닭 두 마리 주문 포장시켜 갖고 가면서 계산 바가지 다 씌운다. 이런 일에 수 없이 시달려도 모르는 척 못본 척하며 다 당해준다. 이렇게 순진하고 착하기 때문에 그 유연함 그 너그러움으로 코로나를 잘 벼텼고 인기 없고 방송 안 해도 빚 안 지고 잘 살고 있다.


이런 일도 있다. "회장님, 한국에서 참 열심히 하는 재주 많은 후배입니다. 잘 클 수 있도록 격려 부탁드립니다. 김 사장님도 협찬 좀 해주세요…." 외국에서 꽤 많은 후원금을 받았다. 호텔, 잠들 무렵 ‘낮에 얼마 받았냐.’ 몽땅 뺏아 갔다.


출연료는 항상 절반씩 나누는데 오동광은 있으면 있는대로 몽땅 없어질까봐 다 써버리고, 오동피는 있으면 있는대로 몽땅 없어질까봐 마누라에게 다 맡긴다. 세월이 흘러 요즘 와서 두 사람의 가정살림 형편을 비교해 봤더니 서로 비슷하다고 한다. 인생은 코미디 한 판이다. 이들 콤비가 헤어지지 않고 잘 버티는 이유는 다투는 사람이 없으니 거래처가 많다. 주는대로 받고하니 가격대가 저렴하다. 주문하는데로 쇼를 맞춰주니 편하다. 일단 올라가면 몸을 던져 웃긴다. 뺨을 맡는 연기는 30~40대를 맞게 되는데 공연을 몇 번하면 머리가 '띵' 하고 뺨이 아프면서 정신이 없다고 한다. 계속 누적돼서 직업병이 생겨 공연이 많은 날은 타이레놀을 복용해 고통을 이겨내고 있다. 이렇게 매일매일 웃기기 위해 몸을 던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몸을 내다 버리고 있는 것이다. 무게 잡을 줄도 모르고 연예인인 척 하지도 않는다. 


#. 마지막 코미디 콤비 함재욱 원제로 끝까지 안 죽는다. 1980년 5월 18일. 광주탈출을 시도하다가 계엄군 검문에 걸렸다. 연예협회 코미디언 증명서와 나훈아 즐겨입는 반짝이 무대의상을 공연차 왔다는 증거로 제시하자 근무병들이 난생처음 코미디언을 본다며 환대했고, 신기한 듯 의상을 서로 입어보며 익산까지 편히 갈 수 있도록 조치했다. 코미디언이 자랑스러웠고 직업에 대해 새삼 긍지를 갖게 됐다. 


그해 가을에 부산 보림극장에서 이 시대의 마지막 고별 악극단 극장쇼의 막이 올랐다. 악극단원과 인기연예인(전영록, 서영춘)이 총출동하여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을 지켜보며 눈물바다를 이뤘다. 사회는 늘 하던대로 함재욱 원제로. TV시대에 돌입하면서 방송 진출 기회를 놓쳐 더욱 난감했으리라. 그러나 성실과 신의 노력으로 변함없이 무대를 지키고 있다. 


헤어질 뻔한 위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살아생전에 다시는 같이 무대에 서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격하게 서로 다투었다. 다음 날 공연시간이 되니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업소로 발길을 돌렸는데 파트너가 똑같은 입장이 되어 나와 있더란 것이다. 기왕업소에 왔으니 우선 공연을 해서 일당을 벌고 난 후 깨끗하게 마무리하겠다 결심하고 마이크를 잡았는데, 하다 보니 접촉이 되고 마음이 열려 그놈의 정 때문에 손을 잡고 자그마치 51년을 계속하고 있다. 나훈아 남진 이정희 송대관 한국의 톱스타들과 리사이틀 디너쇼를 진행한 백전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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