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의 행복칼럼] ‘면목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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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의 행복칼럼] ‘면목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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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수주의자이지만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한다. 그의 삶의 궤적에 아쉬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멋진 사나이였다. 나는 그의 ‘사나이즘'(남자다움)을 부러워하고 존경한다. 그의 사나이즘은 그의 정치 여정 곳곳에 나타난다. 요즘 정치권의 안타깝고 부끄러운 소식을 접하면서 그의 소신과 정치적 용기 그리고 희생정신이 그립다. 


노무현의 사나이즘이 크게 빛났던 장면은 2002년 당내 경선 연설 장면이다. 좌익활동을 했던 노무현의 장인을 경선 상대였던 이인제 후보가 문제 삼았다. 인천 경선 연설에서 노무현 후보가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소명하는 사자후를 토했다. 그를 지지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 연설문을 거의 외운다.  

   

“음모론, 색깔론 그리고 근거 없는 모략 이제 중단해 주십시오. <중략> 제 장인은 좌익활동을 하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중략> 제가 결혼하기 훨씬 전에 돌아가셨는데, 저는 이 사실을 알고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잘 키우고 지금까지 서로 사랑하면서 잘 살고 있습니다. 뭐가 잘못됐습니까? 이런 아내를 버려야 제가 대통령 자격이 있고 이 아내를 그대로 사랑하면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말입니까? 여러분이 판단해 주십시오. 여러분이 그만두라고 하면 대통령 후보 그만두겠습니다.” 대충 이런 내용이다. 연설문을 쓰며 가슴이 먹먹했다. 

   

노무현의 사나이즘이 가장 빛난 때는 퇴임 후 검찰청 소환을 받고 김해 봉하마을을 떠날 때이다.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뇌물수수 혐의 피의자로 소환되었다. 노 대통령은 봉하마을 사저 앞에서 기다리던 기자들에게 아주 멋쩍은 표정으로 카메라 앞에서 “국민 여러분께 면목이 없습니다. 실망시켜 드려 죄송합니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핑계도 변명도 없는 그의 말에 진정성이 가득했다. 

   

노 전 대통령은 유명한 동영상을 많이 남겼다. 소통을 중시한 그는 많은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기억에 남는 장면들도 많다. 평검사들과 대화, 100분 토론 대담, 그리고 상록수를 열창한 그의 동영상은 큰 사랑을 받는다. 그러나 내게는 굳은 표정으로 “면목이 없습니다!”라고 말한 이 장면이 최고다. 

   

요즘 ‘면목이 없습니다’라는 말이 그립다. 요즘 대한민국은 오리발 공화국이다. 변명할 수 없는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도 시치미를 뚝 뗀다. 평범한 국민이 보아도 닭발이 분명한데 오리발이라고 우긴다. 혼신의 힘을 다해 변명하고 핑계 대는 그들이 안쓰럽다. 그들이 ‘면목이 없습니다’라고 말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정치와 세상을 너무 모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말 불편한 것은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는 정치권을 준엄하게 꾸짖는 기독교 지도자의 목소리가 없다는 것이다. 부끄럽게도 교회나 교계의 도덕성이 정치권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한국 교계 선거에 봉투의 등장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현실을 심각하게 아파하거나 문제 삼는 목소리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와 해외 한인교회의 위기는 오래된 이야기다. 젊은이들이 떠난 교회는 텅텅 비고 있다. 우리 자녀들도 신앙을 버린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는 신앙 전수에 실패한 세대다. 교회가 빛과 소금의 영향력을 잃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는 그야말로 면목이 없는 세대다. 그런데 면목이 없다는 사실도 잊고 산다. 어쩌면 면목이 없다는 현실 자각이 희망의 출발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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