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 ‘날짜 변경선(線)’에 얽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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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등] ‘날짜 변경선(線)’에 얽힌 이야기

웹마스터

이보영

한진해운 전 미주지역본부장


한국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있었던 흥미로운 이야기다. 창가에 앉은 한 승객이 계속 창문

커튼을 열어 놓고 창밖을 열심히 내다 보고 있었다. 지나가던 여승무원이 “무엇을 그리 열심히 보고 계십니까?” 라고 물었더니, 승객은 “날짜 변경선을 보려고 계속 내려다 보고 있는데 아직 안보이네요” 라고 대답해서 주위의 승객들이 한바탕 배를 잡고 웃었다는 얘기다.


날짜 변경선은 태평양 한가운데 있지만, 태평양 바다 위에 굵은 선이 그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날짜 변경선(International Date Line)’이란 영국에 위치한 ‘그리니치천문대(Royal Greenwich Observatory)’를 기준으로 동경과 서경 180도에 그려진 지도상의 가상 선(線)이다.


예를 들면, 영국의 시간이 표준시로 1월 1일 낮 12시일 때, 동경 180도에서는 1월 2일 0시(12시간 빠름)가

되고, 서경 180도에서는 1월 1일 0시가 되는(12시간 늦음) 원리이다.

날짜 변경선이 태평양 한가운데로 지나가는 것은 날짜가 바뀌어도 불편을 겪지 않도록 사람들이 살지 않는 곳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특히, 북쪽으로는 미국의 알류산열도(Aleutian Islands)와 러시아의 캄차카반도(Kamchatka Peninsula) 사이로, 남쪽으로는 뉴질랜드 동쪽으로 약간 휘어져 있다. 동일국 안에서 날짜가 변경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옆으로 휘어져 있는 것이다.


지구상에서 아침해가 가장 먼저 뜨는 나라는 어디일까? 남태평양의 섬나라 ‘사모아(Samoa)’ 이다. 사모아는 원래 단일민족이나 정치적으로 2개 국가로 쪼개져 있는 분단국이다. 날짜 변경선을 경계로 서쪽의 섬들은 ‘사모아’로 영국령이며, 동쪽의 섬들은 ‘아메리칸 사모아’로 미국령이다. 두 나라의 거리는 아주 가깝지만 날짜 변경선이 두 나라 사이를 지나기 때문에 나라 간의 시차는 24시간이다. 따라서 해가 가장 늦게 지는 나라는 ‘아메리칸 사모아’ 섬이다.


사모아는 2011년 12월 31일까지는 지구상에서 해가 가장 늦게 지는 나라였다. 주산품인 코코넛과 생선을 이웃나라 호주와 뉴질랜드에 수출하고, 대신 생필품을 수입하고 있다. 날짜 변경선 때문에 주요 무역상대국인 호주와 뉴질랜드와의 무역거래에 불편이 많았다. 2012년 1월 1일을 기해 날짜 변경선의 서쪽 시간대를 선택함으로써 무역의 불편이 해소되었고, 지구상에서 아침해가 가장 먼저 뜨는 나라가 되었다. 아메리칸 사모아는 날짜 변경선을 조정하지 않고 있어서 지구상에서 가장 늦게 해지는 나라가 되었다.


태평양 가운데의 이 날짜 변경선을 기준으로 날짜는 물론, 자연환경에 대한 명칭까지 바뀌게 된다. 날짜 변경선을 기준으로 동쪽에서 생성된 열대성 저기압을 ‘허리케인(Hurricane)’ 이라 부른다. 그리고 서쪽에서 발생한 열대성 저기압은 ‘태풍(Typhoon)’ 이라고 한다. 허리케인은 그 이름을 ‘하와이 남자 아이의 이름’을 붙여서 명명하지만, 이 허리케인이 소멸되지 않고 계속 서쪽으로 이동해 날짜 변경선을 넘어가면 태풍의 이름(태풍위원회가 만든 이름)으로 바뀐다.


아시아에서 미국으로 항해하는 상선(Container Ship)들이 날짜 변경선을 지날 때, 늘 행하는 의식이 있다. 바로 ‘고사(告祀)’ 행사이다. 배의 안전한 항해와 바닷날씨가 잔잔하기를 기원하는 제사의식이다. 고사를 지낸 후, 고사 음식으로 선원들 간, 또는 상하급 간의 흥겨운 시간, 친목도 다지고, 좁은 공간에서 일하면서 쌓인 피로와 정신적 갈등을 해결하는 계기로도 고사를 지냈다.


지구의 자전(自轉)은 매 시간 서(西)에서 동(東)으로 15도씩 돌아서 360도에 이르면 24시간이 된다.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 자오선을 기준으로 15도 단위로 끊으면, 지구 전체가 24개 구역으로 나누어 진다. 보통 대부분의 나라는 1개의 시각대를 정해서 사용하지만, 중국, 미국, 러시아, 캐나다 같은 나라는 땅이 너무 넓어서 1개의 시각대론 생활이 매우 불편하다.


중국의 경우, 5개의 시간대가 대륙에 걸쳐 진다. 그러나 중국은 현재 수도 베이징(北京)을 기준으로 1개의 시각대로 통일해 사용하고 있어서 불편한 상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예를 들면 중국의 서부지역 학교들과 동부지역 학교들이 동일시간에 시작한다면, 서부지역 학생들은 꼭두새벽에 학교에 등교하고, 동부는 한 낮에 등교하는 상황이 연출되는 꼴이다.


반면 미국은 본토 기준으로 4개의 시간대가 대륙에 걸쳐 진다. 주(州)마다 시간대가 다른 것도 불편함은 있지만, 그래도 인간이 사회생활에 적응하는데 편리성과 규칙성, 자연의 순리에 효과가 많기 때문에 시차를 유지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자 그동안 억제되었던 여행들이 봇물 터지 듯이 폭증하기 시작했다. 여행은 계획에서부터 시간과 날짜를, 즉 출발지의 시간과 도착지의 시간, 날짜를 계산해야 한다. 만약, LA국제공항에서 5월 3일 오후 11시에 한국행 비행기를 탑승했다면, 인천국제공항 도착은 5월 5일 오전 4시가 될 것이다. 비록 비행시간은 13시간 걸렸지만, 날짜는 이틀이 훌쩍 지난 것이다. 날짜 변경선은 시간의 중심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인간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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