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률 칼럼] 식모방이 있던 구반포 주공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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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 칼럼] 식모방이 있던 구반포 주공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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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년 전 북한산 기슭 단독주택으로 이사 오기 전 오랫동안 나는 반포아파트에 살았다. 반포주공아파트, 1973년 한강변에 지어진 낡은 아파트다. 처분하고 이사온지 얼마 뒤 재개발 소식이 들리더니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었다. 방 다섯 개짜리로 사십평대 아파트였는데 갑절로 뛰었다. 최근 들어 40억~50억원 한다고 한다. 남들은 나를 보고 좀 모자란 사람쯤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고가의 집을 판단미스(?)로 처분하고 ‘돈 안되는’ 단독으로 이사왔기 때문이다. 북한산 기슭 지금 동네는 살기에는 쾌적하지만 재테크 측면에서 빵점이다. 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집값은 똑같다. 그러나 나는 후회하지 않고 비교적 만족해 하며 살고 있다.  


전설적인 건축가 르 꼬르뷔지에는 집을 두고 “영혼을 위무하는 공간”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집은 다른 얘기다. 재테크의 가장 효율적인 수단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그래서 영끌 아파트(영혼까지 끌어모아 아파트를 사야 한다는 의미)란 말이 낯설지 않다. 


반포아파트에 살 때다. 가끔 방문한 지인들은 상당히 놀란다. 방 배치 때문이다. 지금 살고 있는 단독주택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우리 집에서 안방의 존재감이란 아예 없었다. 가장 붐비는 곳은 다섯 개 방중에서 젤 넓은 서재다. 커다란 회의용 탁자가 가운데 놓여 있는 서재에는 가족의 공동공간쯤 된다. FM을 듣고 커피를 마시며 가족간 화제가 공유된다. 자기 방이 있는 아이들도 과제물을 들고 서재로 몰려 들었다. 의자가 식구 수대로 아무렇게나 놓여 있고 구석에는 내가 낮잠을 즐기는 작은 소파가 있다. 하버머스가 얘기하는 이른바 공론의 공간(public-phere)인 셈이다.  


오랫동안 살았던 구반포 주공아파트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다. 단지 전체가 5층이다. 단지 내에는 테니스장이 여러 개 있고 봄· 가을에는 인근 유치원, 초등학교에서 소풍 올 정도로 공원공간이 넓다. 무엇보다도 현관문, 방문 크기가 작아 사십년 전 한국인들 체구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케 한다. 정작 놀라운 것은 부엌 안쪽에 숨겨져 있는 작은 방이다. 두 사람이 누우면 딱 붙어, 서로 체온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작다. 이불을 개어 올려놓는 선반이 있고 그 아래 옷을 걸 수 있는 대나무 횟대가 있다. 이쯤 되면 한국의 중년 세대는 눈치챘으리라. 콧구멍만한 이 작은 방은 지금은 기억조차 희미한 식모 방, 70년대 시대 상황을 짐작케 한다. 이 구석 작은 방이 우리 부부가 사용하는 안방이다. 그래서 방문객들은 놀라게 되는 것이다.


작은 방의 살림도 단촐했다. 바닥을 꽉 채운 얇은 매트리스 한 장, 아내가 학창시절부터 봐왔던 이십년이 조금 더 된 초소형 텔레비전, 그리고 작은 화장대가 전부였다. 기막히게 숨겨져 있는 이 작은 방을 사용하면서 나는 가끔씩 묘한 감회에 젖게 된다. 이른바 식모로 이름 붙여진 꽃다운 처녀들이 이 구석 방에서 주인 집 식구들의 눈치를 보면서 얼마나 숨죽여 살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맘이 짠해진다.


이처럼 나는 방 배치에 관해 나만의 고집을 가지고 있다. 방 세 개짜리 아파트에 살던 신혼시절, 첫 아이가 태어나자 미련 없이 가장 큰 방을 아이 방으로 넘겼다. 그날 이후 가장 큰 방은 딸아이 방으로, 두 번째 큰 방은 아들 방으로 굳어졌다. 아파트마다 있는 부엌 귀퉁이 작은 방은 아내와 내가, 혹시라도 여유 방이 있으면 서재로 사용해 왔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짧은 인생 동안 많은 방을 거치며 살아간다.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듯 방도 정이 드는 경우가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구반포 살던 시절, 부엌 옆 식모 방은 나에게 그런 방이었다. 그 시절, 구석방에 드러누우면 유난히 옛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렇다. ‘식모방’은 이 땅의 장년세대들에게 추억의 기제가 된다. 그런 기억들이 과거로 포장된 채 하나둘 사라져 간다는 것은 참 쓸쓸한 일이다. 중국발 황사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서울의 밤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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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 칼럼니스트: 서강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고려대를 졸업했다. 사우스캐롤라이 매체경영학 박사를 했다. KDI 연구위원, 영화진흥위원, EBS 이사, 공기업 경영평가위원 등을 역임했다. 한국의 주요 일간지에 기명칼럼을 연재했으며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유려한 문장과 설득력 있는 글로 사랑을 받아 왔다. 그의 에세이는 한국의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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