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근 칼럼] 슬픈 6월


홈 > 로컬뉴스 > 로컬뉴스 > 오피니언
로컬뉴스

[이우근 칼럼] 슬픈 6월

웹마스터

‘호텔 르완다’는 르완다 내전 때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1994년 4월 후투족 출신 대통령이 암살당하자 후투족은 암살의 배후로 추정되는 투치족에 대해 씨 말리는 대량학살을 감행한다. 6월까지 이어진 학살의 희생자가 약 100만 명에 달했다. 크메르루주의 킬링필드와 더불어 나치 만행 이후 가장 잔혹한 홀로코스트였다. 영화는 학살 과정에서 투치족 1200여 명의 목숨을 구해낸 한 호텔 지배인의 용기와 인간애를 감동적으로 그렸다. 놀랍게도, 그는 후투족이었다.  


아프리카 대륙에는 기묘하게도 직선으로 그어진 국경선이 많다. 국경선은 강과 산맥의 자연적 경계에 따라, 또는 역사·혈통·언어 등 생활환경에 따라 오목 볼록하게 그어지기 마련이다. 직선의 국경선은 아프리카의 자연환경을 무시하고 원주민의 역사와 언어와 문화를 짓밟은 서구열강의 분할통치, 그 범죄적 탐욕의 산물이다. 직선의 국경선에는 아프리카의 슬픔이 짙게 배어있다. 


아프리카인들은 대자연의 순수한 생명력으로 생태친화적인 삶을 이어왔지만, 불행히도 종족 간의 대립의식이 깊었던 탓에 식민제국의 먹잇감이 되고 말았다.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다는 유럽의 인간사냥꾼들은 아프리카에 멋대로 국경선을 그어 원주민의 역사를 찢고 언어와 문화를 흩어버렸다. 국가적 통합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든 야만의 분할통치는 아프리카인들의 자립의지를 꺾고 종족 대결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르완다도 예외가 아니다. 르완다를 식민통치한 벨기에는 전 인구의 15%에 불과한 투치족의 족장을 내세워 85%에 이르는 후투족을 통치하게 하는 종족 분리정책을 폈는데, 이것이 두 종족의 적대감을 더욱 부추겨 내전으로 치닫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비극의 경계선은 아프리카에만 있지 않다. 한반도를 남북으로 갈라놓은 휴전선도 강대국들에 의해 인위적으로 그어진 고통의 분계선이다. 대한민국은 정전협정 테이블에 앉지도 못했다. 국경선도 아닌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은 이념이나 체제는 물론 언어와 문화, 심지어 자연환경과 주민의 신체 형태까지 확연히 달라졌다. 


기억해야 할 희생이 어찌 르완다의 비극뿐이랴. 르완다 대학살이 막바지로 치닫던 6월, 우리에게는 또 다른 비극의 기억이 찾아든다. 동족상잔의 6·25 전쟁은 현충일이 66주년에 이르도록 아물지 않은 핏빛 상처로 남아 있다. 구름은 무심히 북으로 흘러도, 수십 년 이산가족들은 휴전선 앞에서 힘없이 발길을 돌려야 한다. 5백여 명의 국군포로가 아직도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채 북에 남겨져있다. 르완다의 끔찍한 6월은 과거사가 되었지만, 한반도의 슬픈 6월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남북의 대결은 남남갈등으로 이어졌다. 세습독재 북한체제에서 민족사의 정통성을 찾으려는 뒤틀린 이념의 교조주의, 대한민국을 식민지라 자학하는 주체사상의 노예들이 진보의 아름다운 이름을 더럽히고 있다. 북한은 세계 최악의 인권상황이 펼쳐지는 디스토피아다. 정치범수용소와 노동교화소에 20여만 명이 감금되어 있고, 기관총과 고사포를 동원한 집단공개처형의 광란극이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진다. ‘이밥에 고깃국’은 저들의 70년 단골 구호다. 


‘호텔 르완다의 후투족 지배인은 투치족 구출에 제 목숨을 걸었다. 종족을 넘어선 인간애가 내전의 폐허에서 르완다를 다시 일어서게 만드는 힘이 되었다. 후투와 투치는 다른 종족이지만, 우리의 남북은 수천 년 동안 하나였고 앞으로도 하나로 살아가야할 한 민족이다. 북녘 강산은 어느 신성가족의 사나운 손아귀에 대대로 내맡겨질 유형(流刑)의 땅이 아니다. 북한주민의 처절한 삶, 그들의 짓밟힌 인권에는 눈감은 채 오로지 무슨 혈통의 눈치만 살피는 얼빠진 이념의 도그마를 어찌 민족애라 부를 수 있는가? 


슬픈 6월, 언필칭 민족주체의 무리가 내지른 야만의 광풍이 이 땅을 휩쓸고 간 전쟁의 달, 아물 줄 모르는 분단의 아픔이 깊이 새겨진 보훈의 달이 무심히 지나가고 있다. 아니, 6월의 슬픔은 계속되는 중이다. 세습왕조의 핵무장과 인권유린을 감싸기에 바쁜 누군가의 달력에는 없는 슬픈 6월이.


c0e20fecbe4c7afb6ef71a1877a5d29d_1624833634_8644.jpg
이우근 칼럼니스트: 변호사로 현재 숙명여대 석좌교수로 있다. 경기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서울중앙법원장 등 법관으로 근무하던 30년 동안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문학, 철학 등 인문학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현재는 PEN International, Korea 회원으로서 인권위원장을,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서 문인권익옹호위원장을, 학교법인 이화학당 이사를, Seoul National Symphony Orchestra에서 명예지휘자를, FEBC(극동방송)에서 신앙 칼럼을 맡고 있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