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영수의 코미디 40년 연예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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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영수의 코미디 40년 연예비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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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코미디언 김형곤


김형곤은 1981년부터 25년 간 긴 세월을 KBS 개그맨실에서 생사고락을 같이 한 개그맨 동지이고 우정어린 절친 후배이며 한가족처럼 애증의 세월을 함께한 사이였다. KBS 개그프로그램 유머 1번지 1주일 일정을 살펴보면 대본 만들기 아이디어회의 1일, 소재가 모자라면 추가 1일, 대본연습 1일, 본녹화 1일, 야외녹화 1일, 추가녹화 및 더빙 1일이다. 적어도 일주일에 4일 많게는 6일을 서로 만나야 한다.


그리고 매일 밤 8시에는 강남 성인코미디클럽에서 주인 김형곤과 연기자 엄영수로 다시 만나 공연한다. 그뿐인가 지방공연 해외공연 각종이벤트 특집녹화까지 1년 365일 줄창 만나니 같이 사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개그맨실은 가로×세로 3m가 안 되는 작은 방인데 예전 TBC시절 여성 톱탤런트 1인 녹화 개인대기실이었다고 한다.


3×3=9m²가 안 되는 좁은 곳에서 화장실 면적을 빼면 너무 작은 초라한 방인데 여기서 적게는 26명 많게는 50~60명의 개그맨이 부딪치고 생활했으니 80년대 개그맨 연기자가 어떤 대우를 받고 작업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겠다. 활동이 왕성한 젊은이들이 전 프로에 나가 활약을 하는 터인데 코미디언실에 정식입성을 아직 못했고 떠돌이로 개그맨끼리 뭉쳐다녔다. 아마추어에 가까운 가장 낮은 등급의 출연료를 받았다. 우리에게는 특별출연료도 후원금도 없었다. 가리지 않고 주는 대로 받고 시키는 대로 일해 시청율을 올려놓은 성과도 있는데, 탤런트 한 분이 쓰던 방에 개그맨 전체가 생활을 한다니 서글펐다.  


김형곤은 스탠딩코미디의 달인이었다 시사문제, 토크쇼를 특히나 잘했는데 항상 준비가 철저했다. 개그맨 중에 신문잡지, 신간도서를 제일 많이 읽고 보는 사람이고 유명한 노래나 시, 영화는 바로바로 자기 것을 만들어 사회변화 그 흐름을 훤하게 뚫어보고 있었다.


같이 파트너가 되어 많은 공연을 했는데 항상 내가 받쳐주었고 웃기는 역할은 김형곤의 몫이었다. 우리가 오래갈 수 있었던 이유는 나를 MBC에서 KBS로 영입하는데 일등공신이 김형곤이었다. 1980년대에는 MBC, KBS 방송국 간 교류가 금지돼 있었다. 경쟁과 견제가 심해 상대 방송국에 출연하면 출연정지를 때렸다. 연기자가 자유롭게 프로그램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없었다. 전속금 없이 전속을 강제하고 명목없이 아무 때나 바로 아웃시킬수 있었다. 그 살벌한 시대에 나는 KBS 유머1번지, MBC 청춘만세 두 프로를 다했다는 것은 행운이었으며 적국의 경쟁상대에서 같은 프로그램의 동지가 된 유일한 개그맨이었다. 물론 김형곤의 덕이었다.


나이 들어 개그맨이 되니 기수문화 서열중심인 방송국 분위기 때문에 어린 사람들과 거리가 있었다. 그렇다고 신인인 나를 대우해 달라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 김형곤이 한방에 해결했다. "엄영수 형은 늦깎이로 데뷔해서 나이가 많은 분이다. 지금 여러 프로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항상 겸손하고 예의바른 분이다. 내가 오늘부터 형님으로 깎듯이 모시니 여러분도 그렇게 해달라. 실장으로서 부탁한다."


어느 날 김형곤이 우리 사무실을 찾아왔다. "영수형! 미국 월드컵 응원가자. 애국애족도 해야지. 내가 단장인데 형이 부단장해. 월드컵조직위원회와 내가 얘기가 다 돼 있어. 건설사와 스포츠용품사가 세계 중계방송에 나간다니까 협찬하기로 했어. 형수도 같이가자. 돈좀 벌거야." 바로 OK했다. 우리는 계약서도 필요 없이 모든 일은 말이 법이었다


내용은 이렇다. '제15회 미국월드컵 1994년 6월 7일~7월 17일. 응원 경유지 LA-라스베이거스-보스톤-뉴욕-댈러스. 응원단 연예인 출연 김형곤, 엄영수 부부, 심형래 부부, 양종철, 변진섭, 최성수, 서인석. 협찬 ○○건설 2억원, ○○스포츠용품사 응원복 10가마, KAL 대형 보잉 점보제트기 2대, 전세기 응원관광단 1000명 모집.' 다음 날부터 한국 주요 일간지에 5단 광고가 나기 시작했다. 김형곤이 이제 국제적인 일에 기획솜씨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역시 김형곤! 과연 김형곤! 그래 김형곤이었다.


김형곤은 그간의 행적이 보통사람은 아니었다. 코미디클럽을 만들기 시작해서 트랜스젠더게이성인클럽, 연예기획사 비룡그룹 설립, '회장님 회장님 우리회장님' 대학로 장기연극공연 3년 성공, 영화제작, 미국전역 순회공연, 전국유명호텔 순회공연 수익금 시설기증 등 하는 일마다 성공적이었다. 내가 미국 월드컵축구 한국팀 응원을 위해 부부동반으로 참가한다니 꿈만 같았다. 현지까지 가서 직접 축구단을 응원하는 것도 감격적이고 영광인데, 거기에 라스베이거스 가서 쇼도 보고 관광도 하고 보람된 일을 한다는 데에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드디어 관광단 모집이 마감되고 발표를 보니 너무나 쇼크! 경악을 금치 못했다. 참가자가 분명 O명은 아니다. 있기는 있다. 몇 명인지 당일 봐야한다. 너무 적으면 재미없어 그 몇 명마저도 포기할 것 같다고 한다. 아니 이럴 수가 있나? 응원단이 1000명이 넘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했었는데, 우리가 인기가 없어서? 누가 방해를 해서? 국제적으로 무슨 사건이 생겨서? 여행사는 점보기가 뜨기도 전에 부도가 나서 파산을 했다고 한다. 그래도 가기는 간다, 남은 한두 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간다. 


미국은 예약을 미리하면 대폭할인을 해주는 제도가 있어 미국 항공사 버스회사 호텔에 전액을 현금으로 오래 전에 지불한 결과다. 완전 참패, 이런 망신이 있나. 미국에 응원간다고 자랑하고 다녔고, 고정 프로그램 녹화도 한 달 이상 빠진다고 양해를 받아 놨는데…. 받기로 했던 출연료를 못 받는 것은 물론 오히려 응원 관광비를 500만원 내야했다. 내 연예인 생활 중 이런 수모, 이런 적자는 처음이었다. 응원단 없이 응원을 가다니, 기가 막히다.


곧, 기사가 뜨고 거센 비난이 쏟아질 텐데 그래도 다행이다. 보도가 안 돼서 아직 아무도 모른다는 것. 경기장 가면 현지에는 미국 교민들이 전 지역에서 몰려올 것이고 미국인들까지 합세해서 응원하면 어쨌든 응원은 될 것 같으니 그런대로 돈은 못 벌어도 체면 유지는 할 수 있지 않을까. 미국이 우리에게는 멀고도 가까운 나라라더니 정말 실감이 난다.


월드컵 조직위원회와 얘기가 돼서 중계방송에 넣어준다는 조건으로 스포츠용품 회사에서 유니폼을 받았고 건설회사에서 돈도 받았는데 이것 또한 중계가 안 되면 물어내야 할텐데 걱정이 생겼다.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 오면서 물었다. 중계는 어떻게 되나? 조직위와는 확실히 약속했나 조심스러웠다. 김형곤이 한번도 이 문제로 고민하거나 통화하는 걸 못 봤고 내게 아무 얘기도 없었다.


김형곤 말이 걸작이었다. "내가 조직위가 어디 있는 줄 알기를 해, 보기를 했어. 근데, 안심해. 축구란 게 중계하다 보면 공차는 것, 패스, 슛 이런 거 밖엔 없잖아. 짜증이 난다고, 뭐 꺼리가 없을까? 카메라가 특이한 장면을 찾을려고 별 수단을 다 쓰거든. 그때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단체로 모여서 질서있게 응원하면 카메라가 틀림없이 온다니까. 영수 형이 왼쪽, 내가 오른쪽 올챙이춤을 유도하면 사람들이 따라한다니까. 옷 공짜로 나눠주면 미국 사람들도 공짜 좋아해. 운동복이 한 벌 생기는데 훌렁훌렁 벗고 신나서 즉석에서 갈아 입고 올챙이춤 난리가 난다. 카메라 앞으로 펄쩍펄쩍 뛰면 가슴에 새긴 광고문구가 세계로 나간다, 나간다니까. 보라구! 한국 교민들 분위기에 감격해 잘 따라와. 여기 사람들은 순진해. 아무 걱정마. 그리고 경기장 전체가 중계가 되면 우린 분명 운동장에 있었고, 응원을 했잖아. 카메라가 작게 비춰서 그림이 작아서 못 찾았거나 빨리 스쳐서 못 봤으면 자기들 눈이 잘못된 거지, 왜 우리가 책임을 져야 돼. 화면안에 작드래두 다 있기는 있었잖아. 맞지! 노프로 블럼, 노프로 블럼. 전 경기장을 위에서 잡는 부감샷이 나가면 끝난 거라니까." 


그렇긴 하네…. 졌다! 졌어! 역시 통 큰 김형곤! 대단한 대한의 아들! 봉이 김선달, 정수동의 김삿갓 후예, 개그계의 최고스타 김형곤의 이 코미디는 영원히 역사에 남는다. 어떻게 이렇게 기발한 생각을 했을까! 방송을 알고 기업을 알고 코미디를 알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기업인들이 어떤 사람인가 만에 하나 기업에 손해 나는 일을 자초하겠나. 깊은 생각을 한 것이다. 기업체 회장님들께서는 알면서도 젊은이들이 조국을 위해 응원간다니 기왕이면 기분 좋게 보내준 거다. '기업의 사명이다' 생각하고 격려 차 속아주신 거다. 기업인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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