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의 행복칼럼] 백악관을 디딤돌로 만든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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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의 행복칼럼] 백악관을 디딤돌로 만든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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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미국 39대 대통령을 지낸 지미 카터(Jimmy Carter)의 근황이 알려졌다. 피부암이 간과 뇌로 전이 된 그는 병원치료를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남은 시간은 호스피스의 도움을 받으며 가족들과 함께 보내려 한다는 소식이었다. 아마도 인생의 마지막 지점을 맞이한 지미 카터가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듯하다. 

   

지미 카터는 조지아주 플레인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해군장교로 복무했다. 그리 출중하지 않은 장교생활을 짧게 했으며, 부친이 별세하면서 땅콩농장을 이어받아 농부로 살았다. 정계에 입문하여 조지아주 주지사 재임 중에 대통령에 출마한 카터는 당시 현직 대통령이었던 제럴드 포드를 이기고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미국 보수 신앙인으로 신앙을 삶에 실천하는 지미 카터는 인기 없는 백악관 주인이었다. 어쩌면 신앙적 원칙을 고수한 지미 카터가 잔인한 정치판과 국제무대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지미 카터는 재임 중에 유약하고 무능한 대통령으로 평가받았고, 재선에 실패했다. 레이건 대통령에게 패한 카터는 조지아주 플레인으로 귀향했다. 

   

고향으로 돌아온 카터 대통령은 세상을 섬기는 일을 찾았다. 그가 찾은 일이 ‘사랑의 집짓기운동’ 즉 Habitat 운동이었다, 가난하고 집이 없어 소외된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며 사랑을 전하는 이 운동에 카터 대통령은 헌신했다. 전직 대통령이 허름한 작업복을 입고 모자를 눌러쓰고 건축자재를 나르며 봉사하는 모습은 지구촌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지미 카터는 사랑의 집짓기운동 외에도 평화운동을 했다. 그는 분쟁지역을 방문해 조정하는 평화대사의 역할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4년 북한과 미국의 갈등이 최고조일 때 빌 클린턴의 요청으로 북한을 방문해 문제를 풀었다. 카터 대통령은 여러 분쟁의 조정과 지구촌의 빈곤과 질병의 퇴치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래서 지미 카터는 대통령 이후가 더 화려했던 유일한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카이 버드(Kai Bird)는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에 기고한 글에서 카터의 탁월한 삶과 정치적 결단들을 유려하게 그려내고 있다. 카이는 ‘지미 카터가 (미국의 모든 정치인이 목표로 삼는) 백악관을 더 큰 삶을 위한 디딤돌로 사용한 유일한 대통령’이라고 주장한다. 카이는 수 년 간 카터 대통령을 인터뷰했는데 카터는 90세가 지난 최근까지도 하루를 아침 7시에 시작할 만큼 왕성하게 활동했다고 한다. 그는 최근까지 현역으로 살았다.

   

모두가 존경하는 지미 카터 대통령의 비결은 신앙의 원칙을 지킨 삶이다. 잘 알려진 대로 지미 카터는 신실한 신앙인이다. 그는 자신이 출석하는 마라나타 침례교회에서 수십 년간 주일학교 성인반 교사로 봉사했다. 백악관 시절 외에는 이 자리를 늘 지켰다고 한다. 그의 신실함이 부럽다! 

   

카터의 위대함은 그의 관록에 있지 않다. 그에게는 백악관의 권좌가 하나의 디딤돌에 불과했다. 작은 명예와 지위에 전전긍긍하는 천박한 우리에게 카터는 딴 세상 사람 같다! 베드로는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진다!(벧전1:24)”라고 했다. 곧 마르고 떨어질 것들을 붙잡고 아등바등하는 삶을 벗어 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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