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익산(益山)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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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익산(益山) 가는 길

웹마스터

김희식

(주)건축사무소 광장 상무  

                                                           

박물관을 찿아간다는 것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금년 들어서는 백제문화권 지역을 중심으로 찿아다녔습니다. 박물관이라는 공간을 통해 1500년 전의 사람들을 마주하기도 하고, 당시의 흥망과 성쇠, 전쟁과 치열한 삶의 궤적과 순환, 일상 속의 예술과 놀이문화 등도 살펴봤습니다. 


그간 부여, 공주, 전주 국립박물관 등 여러 곳을 순례한 뒤, 지난 주에는 백제문화권의 마지막 종점이라 할 수 있는 익산박물관을 다녀왔습니다. 마침 그곳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전시가 눈길을 끕니다. '전북(全北)의 고대 성곽’이라는 타이틀의 특별전입니다. 백제가 위치하고 있던 곳의 일부인 전북지역에 유난히 많은 200여 곳의 성곽들이 남아있다는 사실도 이번 전시회를 통해서 알게됐습니다.


전시장 내에는 ‘전북지역 성곽 둘레길 코스’도 나와 있더군요. 제1코스(싸리재코스):익산 왕궁리 유적-완주 배매산성-진안 운봉리산성-진안 와정토성-진안 월계리산성. 제2코스(웅치코스):완주 구억리산성-진안 합미산성-장수 침령산성-장수 삼종리산성. 제3코스(슬치코스):완주 삼례토성-전주 동고산성-임실 성미산성-임실 월평리산성-장수 봉서리산성-남원 아막성-순창 합미성-남원 합미성-순창 홀어머니산성 등 성곽 중심으로 되어있는 길입니다. 


“국토의 75%가 산악지형인 한반도에는 일찍부터 산성이 발달했습니다. 지금도 산을 오르다 보면 무너진 성벽이 과거의 모습을 간직한 채 우리 주변에 남아있습니다. 성곽은 적의 침입이나 자연재해로부터 사람의 목숨과 재산을 보호하려는 방어시설이었습니다. 고대에는 성곽을 중심으로 전쟁이 전개되었기 때문에 성곽은 국가를 방어하는 중요 군사시설이었습니다. 

 성곽을 쌓는 것은 국가차원의 종합적인 토목기술이 필요했습니다. 백제시대 전북지역에서는 지금까지 200여 곳의 성곽이 확인되었습니다. 대부분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곳에 이렇게 많은 성곽이 만들어진 것은 백제 국력의 기반이었던 드넓은 평야가 전북 서부지역에 위치하고 있었으며,전북 동부지역에서 백제, 가야, 신라가 서로 치열하게 다투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도 그곳에는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발자취가 담긴 수많은 성곽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익산박물관  學術誌, 2023). 


필자는 당시의 성곽이 오로지 전쟁에서의 승리 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일부 성곽 내에서는 백성들의 집터, 우물, 식량창고, 물을 모아 두었던 집수지 등 당시 사람들이 생활한 흔적들도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의 생존을 위한 삶의 울타리 역할도 했다는 것이지요. 특히 돌로 쌓은 석성의 경우는 돌을 다듬는 기술이 필요했으며 축조방식에서도 흙과 혼합하는 등 다양한 공법을 채택했더군요. 


전시장 안에는 당시 출토된 공사용 상세도면, 성곽지도, 운반경로, 도르래 등 각종 운반도구와 기와, 도기등의 실물도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 서울 동대문 근처를 지나다가 북쪽 둔덕 위에 축조된 성곽을 보게 되었습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성곽 쪽으로 걸어 올라갔습니다. 서울성곽은 조선의 도읍지인 한양을 둘러싸던 도성(都城)으로서 인왕산-북악산-낙산-남산 등의 자연지형을 활용하여 지은 성곽이지요. 600년 역사의 흔적으로 총 연장 12마일 거리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성곽을 따라 돌면서 도성 안팎 풍경을 감상하는 것을 ‘순성(巡城)’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관련 문헌을 이어봅니다. "유본예(1777~1842)는 ‘한경지략(漢京識略)’에 순성놀이에 대해 썼다. 봄과 여름이 되면 한양사람들은 짝을 지어 성 둘레를 한 바퀴 돌면서 성 안팎의 경치를 구경한다고 했다. 한 바퀴 도는 데에는 하루 해, 곧 해가 떠서 질 때까지의 시간이 걸린다고 덧붙였다. 당시 사람들은 도성을 한 바퀴 빙 돌아서 도성 안팎의 풍경을 구경하는 멋있는 놀이라고 호평하기도 했다.”(巡城의 즐거움 13쪽, 김도형著, 2011). 


영국의 처칠이 말했던 "우리가 건축물을 만들면 그 건축물이 다시 우리를 만든다(We shape our building, and afterward our buildings shape us)”라는 귀절이 기억납니다. 옛 사람들이 쌓아 올린 백제의 성곽이나 서울 도성의 성곽들도 훌륭한 건축물의 하나라고 한다면 그 건축물들이 오늘의 우리를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요? 그간의 박물관 순례길이 '오래된 미래’를 바라보는 도정(道程)이었음을 실감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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