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의 행복칼럼] 천국 로열패밀리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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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의 행복칼럼] 천국 로열패밀리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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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쉐어USA 대표 


동부행 비행기 옆자리에 동두천에서 대대장을 지낸 노신사가 앉았다. 그는 조지아에서 근무하는 군인 아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그는 3대가 군인이요, 3대가 한국에 근무했음을 자랑했다. 이륙에서 착륙까지 귀가 아프고 입이 아프도록 대화했다. 그의 한국 사랑에 내 애국심이 초라해서 부끄러웠다. 

   

그는 아버지가 한국전에 참전했음을 자랑했고, 한국전 전사(戰史)를 줄줄이 꿰고 있었다. 그는 한국군 전쟁영웅인 백선엽 장군이나 김백일 장군 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한국전에서 많은 미군 장군들의 아들들이 참전했음을 자랑했다. 6·25 전쟁에 참전한 미군 장군의 아들이 142명이나 됐고, 그중 35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고도 했다. 그의 말대로 한국전에 미군 장군들 가족이 남긴 아름다운 희생과 헌신은 감동적이다. 우리에게는 참으로 부러운 이야기들이다. 

   

제2대 미 8군 사령관이었고 낙동강 방어 전투를 성공적으로 지휘한 워커 장군의 외아들 샘 워커 대위는 미 24사단 보병 중대장으로 6·25에 참전해 최전방에서 전투했다. 워커 장군이 1950년 12월 23일 교통사고로 갑자기 사망하자 맥아더 장군은 아들에게 아버지 유해를 모시고 귀국할 것을 지시했다. 워커 대위는 부대원들을 두고 혼자만 떠날 수는 없다며 버텼다. 결국, 맥아더 장군의 특별명령에 그는 귀국했고 한국으로 복귀하려 했으나 재참전은 못 했다. 

   

제4대 미 8군 사령관으로 취임한 벤플리트 장군은 결혼 후 13년 만에 얻은 외아들을 한국전에서 잃었다. 중위였던 아들이 전투 중에 전사한 것이다. 벤플리트 장군은 아들 시신을 찾지 못했지만, 위험한 시신 수색작전을 중지하도록 명령했다. 장군의 품격이 빛나는 사건이다. 이런 아름다운 전사(戰史)를 5시간 들었다. 그들이 실천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부러웠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란 프랑스어로 “귀족이 지켜야 할 의무”란 의미다. 유럽 귀족들의 헌신은 유럽사회를 지탱해 온 힘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 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 정신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시작되었다. 근대와 현대에서도 영국 왕실과 미군 장군들이 보여 주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온 세계의 귀감이 된다.

   

우리 역사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있다. ‘100리 이내에는 굶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경주 최씨 집안이나 가난한 서민의 먹을거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뽕나무를 기르지 마라’고 했던 충청도 명재 집안이나 운조루(雲鳥樓)로 유명한 전남 구례의 유이주 집안 등등이 남기는 사연은 감동적이다. 

   

어느 선교대회에서 평생 선교현장을 누빈 노(老) 선교사에게 누가 ‘무엇이 기나긴 세월 선교활동의 힘이 되었나요?’라고 물었다. 망설임도 없이 ‘받았으니 돌려줘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 젊은 시절 좋은 직장 버리고 평신도 선교사로 헌신한 후 선교지에서 살았고, 안식년마다 공부하느라 젊음도, 건강도, 물질도 모두 바친 선교사의 고백이었다. 그는 ‘저는 영적 왕자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습니다!’라며 한 마디 더 보탰고 장내는 숙연해졌다.

   

선교는 왜 하는가? 하나님 자녀의 의무요 특권이다. 선교는 왕 되신 하나님의 공주와 왕자로 스스로 인정하는 사람들이 평안과 풍요를 내려놓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주님 고난을 묵상하는 거룩한 사순절 기간이다. 지진을 만난 튀르키예, 전쟁을 만난 우크라이나, 가난으로 신음하는 저개발국 등등을 향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실천되는 사순절이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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