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리의 가부키에서 조앤 리의 가부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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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리의 가부키에서 조앤 리의 가부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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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키의 조앤 리 대표. 조앤 대표가 셰프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최근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레스토랑 체인 2023'을 발표하면서 스시부문에 가부키를 선정했다는 증서.(위에서부터) /카이젠다이닝그룹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선정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스시 체인' 


1억 달러 이상 매출에 직원만 1100명 

"남편 꿈은 최고의 한식, 미국에 소개"


얼마 전,  온라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레스토랑 체인’중 하나로 스시 부문에 한인이 운영하는 카이젠다이닝그룹의 가부키(Kabuki)를 꼽았다.  

 

뉴스위크의 이번 평가는  전국의 체인 커스터머와 종업원 등 4000명의 패널을 대상으로 조사한 3만8500개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했다. 가부키는 음식의 맛, 청결, 위생과 코로나19 대응, 투명성, 접근성, 환경문제 대응, 장애인이나 노약자 배려, 서비스 품질, 종업원 대우 등 총 9개 항목에 걸쳐 모두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91년 패서디나에 1호점을 오픈한 카부키는 현재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 15개의 직영점 포함 총 17개 브랜치를 두고 있다. 올해로 32년째. 그동안 데이빗 리와 조앤 리 부부가 운영하며 ‘최고의 일식집’으로 발전한 가부키는 또 다른 도약을 준비 중이다.  

 

오래 전부터 한식에 관심을 갖고 있던 데이빗 리  회장은   ‘HansikUSA’를 별도로 세워, 한식사업을 펼치기로 했다. 가부키와 카이젠다이닝그룹은 온전히 조앤 리 대표체제로 운영한다. ‘데이빗 리의 가부키에서 조앤 리 대표의 가부키’가 되는 셈이다.  


“미 외식업계의 큰 상을 받게 돼 너무 기쁘다. 미슐랭가이드의 3스타(별점)를 받은 것 같은 기분이다. 소비자들이 가부키의 맛과 운영체계를 인정한 것이니 그 이상의 영광은 없다.” 

 

뉴스위크 상을 받고 한껏 들뜬 조앤 대표를 지난 13일 만나 가부키 사업과 남편인 데이빗 리의 한식사업 등에 대해 들어봤다. 그녀의 입에서는 뜻 밖의 말부터 흘러 나왔다. 승승장구하는 가부키 이야기를 듣겠구나 했던 생각과는 조금은 다른 전개였다.  


#. 가부키에 찾아 온 위기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장사?’ 조앤 대표의 말은 그렇게 들렸다. “2018년 쯤이었어요. 장사는 그런대로 잘 됐는데 ‘인사가 만사(人事萬事)’라고 인사관리가 잘 못 돼서 회사가 어려워졌어요. 게다가 남편은 한창 한식에 열중하던 터라, 회사의 운영이 전반적으로 느슨해졌지요. 인사문제가 계속해서 터지면서 데이빗은 가부키를 아예 접을 생각까지 했어요. 회사운영에 넌덜머리를 냈어요. 이러다가는 진짜 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심각했지요.”  

 

용기를 낸 쪽은 조앤 대표였다. 2019년 초 가부키 운영의 전권을 남편으로부터 넘겨받았다. “운영 전반은 물론 음식 개발부터 모든 것을 남편이 했던 터라, 사실 두려움이 컸어요. 그래도 어떡해요. 어떻게 해서 일군 기업인데...· 

 

조앤 대표는 조직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믿고 함께 갈 사람들을 추렸고 옛날 멤버들을 다시 불러 모았다. “가부키를 거쳐 독립했지만 언제든 부르면 ‘의리’ 하나로 달려 와줄 그럴 사람들이었죠.” 

 

조직을 정비한 다음엔 적자가 심한 지점과 안테나샵들을 처분했다. 어바인과 할리우드점 그리고 댈러스 2개 지점까지 과감히 정리했다. 당장 운영에 모자라는 돈은 친구들로부터 빌렸다. “그럴 일이 없었는데, 가부키 운영이 어렵다고 했더니, 즉석에서 친구들이 100만달러를 모아줬어요. 너무 고마웠죠.” 

 

결코 좋은 일일 수 없지만 코로나19 팬데믹도 그에겐 전화위복이 됐다. “사람을 내보내기가 어려운 일인데, 코로나 때라 인원정리가 수월했어요. 게다가 PPP론을 받아 운영에 숨통을 틔울 수 있었지요. 친구들 빚부터 갚고 나머지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경영을 했어요.” 

 

가부키 매장마다 딸린 패티오도 코로나 시절엔 영업에 큰 도움이 됐다. “남편이 매장을 낼 때마다 패티오를 만들었는데, 당시엔 ‘그 걸 왜 만드느냐’고 못 마땅해 했는데, 그게 ‘빵’ 터진거죠.” 

 장사 자체가 안 됐던 게 아닌만큼 정예멤버가 투입된 가부키의 영업은 오래지 않아 정상궤도에 올랐다. 


#.조앤 대표의 경영수완과 리더십

“해 보니까 자신감이 들더라고요. 멤버들도 잘 따라주고, 무엇보다 가부키의 맛이나 서비스는 흠잡을 데가 없으니까요.” 

 

조앤 대표는 펜데믹 때 생선 유통에 어려움을 겪었다. 글로벌 물류망이 엉망인 상태라 너나없이 어려움이 크던 때였다. 마침 젊은 유통업자를 찾아 투자를 해주고 가부키에 연어(salmon)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했다. 일식집이라 연어 사용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다가 아예 창고를 사서 ‘모아존’이라는 자체 유통업체를 세웠다. “가부키는 연어 외에도 많은 다양한 생선을 필요로 하고 야채 사용도 많아 유통업만으로도 수익이 쏠쏠했어요. 가부키를 거쳐서 독립한 식당업주들도 많아서 좋은 조건에 좋은 물건을 안정적으로 공급해 주니 서로가 득이 됐지요.” 

 

가부키에 연어를 대던 젊은 유통업자도 모아존 창고를 렌트해 쓰는 클라이언트로 상생하고 있다. 

 일단, 정상궤도에 진입한 가부키 사업은 날개 달린 듯 다시 번창했다. “짧은 시간 안에 가부키다워졌어요. 2020년, 2021년에는 적은 인원으로도 많은 수익을 냈어요. 그 사이 알함브라에 사옥도 내고, 부동산에도 투자할 정도가 됐어요. 함께 고생한 매니저급들에겐 새 차를 뽑아주기도 했지요.” 

카이젠다이닝그룹은 현재 약 연 1억3000만달러의 매출에 가부키에서 페이롤을 주는 직원만 1100명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 남편의 꿈은 한식

“남편은 이제 일식보다는 한식을 하고 싶어해요. 누구나 하는 그런 게 아니고 정말 맛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진짜 한국의 맛을 미국사회에 소개하고 싶은 욕심이죠. 벌써 준비한 지 3년쯤 됐어요. HansikUSA 도메인까지 마련했죠. 오는 여름께면 한인 커뮤니티에 선보이게 될 겁니다.”  

 

데이빗 리 회장이 계획하는 한식사업은 투트랙이다. 아주 고급스러운 것과 대중적인 한식을 소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최근까지도 데이빗 회장은 한국의 숨은 맛집투어를 계속해서 하고 있다. 고급스러운 것은 조금 더 시간이 걸릴 예정이나 대중적인 것은 늦어도 6~7월 안으로 오픈할 예정이다.  

 

“한인타운에 메밀전문점이 없어요. 데이빗의 지론은 식당은 최소 메뉴로 전문화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메밀로 만든 동치미국수, 막국수를 얇은 돼지고기에 싸서 먹는 심플한 콘셉트를 잡았어요. 매장마다 한국에서 보던 커다란 항아리를 두고 수도꼭지를 달아, 동치미를 받아내는 볼거리를 제공할 꺼예요. 사이드로 전병같은 것도 있고…, 건강한 맛과 스토리가 함께 있는 메밀전문집이 될 겁니다.”  

 

“고급스런 한식의 콘셉트는 미국에서는 볼 수 없던 ‘한국의 맛’을 알리는 작업이 될 것이라고 해요. 한국의 방송에 조차 나오지 않은 숨은 고수들의 맛을 찾아, 그들에게 투자도 하고 메뉴를 추가 개발해 공동으로 미 주류사회에 내놓겠다는 야심이죠. 그런데, 아무리 봐도 돈 벌기는 힘든 구조로 보여요.(웃음)  

데이빗은 “‘한식은 이런 거야. 어디에 내 놓아도 빠지지 않는 음식’이라고 알리는 게 자신이 꼭 하고 싶고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 공부, 공부, 공부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했다. 부부가 오늘 날 가부키를 미국 내 최고의 일식집으로 키우는데 남다른 공부 열정도 있었다. 

 

남편인 데이빗 리는 학구파다. 연세대 기계공학과를 나와 LA로욜라 메리마운트대학에서 엔지니어링 석사를 했다. 캘폴리 포모나에서는 호텔경영학을 하며 MBA를 땄다. 코로나 팬데믹 때 시간을 내 하버드대학에서 3년 과정의 경영자과정을 이수했다. “남편보고 하버드대에 가서 경영공부도 하고 무엇보다 네트워크를 좀 넓히라고 했어요. 그런데, 가서는 사람 사귀는 건 안하고 정말로 공부만 하고 오더라구요.” 

 

조앤 대표도 2016년 연세대학교 외식산업 고위자 과정을 이수했다. “지금 생각하면 가부키 일하면서 어떻게 다녔나 싶어요. 그래도 뭔가 한 번 하면 꼭 성과를 내는 스타일이라 고위자 과정이지만 개근상을 목표로 했어요. 그런데, 수업 첫 날 업무차 일본에 있다가 참석하지 못해 그만 그상을 받지 못한 게 영 아쉽네요.” 

 

조앤 대표는 외식산업 고위자 과정을 통해 한국의 유명 외식업체 대표들과 폭 넓은 교류를 하고 있다. 그를 바탕으로 다양한 사업기회도 주고받을 수 있으니  만족스럽다고 한다. 오는 19~26일에는 한국 외식업체 대표 일행이 LA를 방문한다. 그들은 미국에 매장 오픈 계획도 있다고 귀띔했다.     


#. “여보, 당신 애와 내 애가 우리 애를 울려”

데이빗 리와는 재혼이다. 데이빗은 1981년 LA에, 조앤은1983년 뉴욕에 있었다. 대륙횡단 거리만 해도 무려 2800마일이나 되니, 둘의 만남엔 시간과 거리를 뛰어넘을 만한 인연이 있었나 보다. 둘의 만남은 1991년. 뉴욕에서 결혼해 아들과 딸을 낳은 조앤 대표는 이혼 후 LA로 왔다. 친정 어머니 도움을 받아 두 애를 키우며 생활하던 조앤 대표는 지인의 소개로 오픈한 지 오래지 않은 패서디나 가부키로 일을 도우러 갔다. 일도 돕고 괜찮으면 친정 도움을 받아 가부키를 인수할 작정이었다.  가부키 1호점을 오픈했지만 데이빗 리도 지금의 장손인 아들 하나를 둔 채 이혼의 아픔이 컸던 시절이었다. 가부키의 경영사정도 썩 좋지는 않았다. 

 

“데이빗에게 제가 인수하겠다고 했어요. 친정 어머니도 추천했고요. 그런데 안 팔겠다는 거예요. ‘반반투자’를 역제안했어요. 그래서 동업을 하게 됐고 서로 이혼의 아픔이 있던 터라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함께 살게 됐죠.” 

 

“지금이야 애들도 다 크고 시집장가가서 손주들까지 봤으니 못 할 이야기도 아니죠. 많은 사람들이 조앤에 대해 궁금해 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애들 셋을 구별없이 잘 키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아직 가부키 운영이 어려울 때라 밤 10시까지 일을 해야 했기에 고만고만한 애들을 두고 사우나 한 번 가기 힘들었어요.” 

 

억척같은 그녀는 그래도 연년생인 두 아들과 둘째와 3살 터울인 딸까지 함께 잘 지낼 수 있도록 외출을 해도 다 같이 다니게 했다. “지금도 셋은 골프도 함께 치고 놀러 다니며 잘 뭉치니 보람이 있어요.”   

 

벌써 38살이 된 큰 아들 앨버트는 제법 유명한 셰프로 활동하고 있고, 한 살 아래 찰스는 이민법 변호사가 됐다. 딸 애나는 가부키의 HR을 맡고 있다. 재혼 후 얻은 막내 솔로몬은 큰 애와 10살 터울로 래퍼이자 카이젠그룹이 투자한 음식과 문화를 접목한 ‘Hibi 엔터테인먼트’를 운영하고 있다.   

 

“엊그제 리빙트러스트를 만들었어요. 자녀 4명에 재산을 정확히 4등분하도록 했지요. 남편과 가끔 농담삼아 ‘여보, 당신 애와 내 애가 우리 애를 울려요’라는 책을 내면 어떨까 하며 한참 웃은 적이 있어요. 힘든 환경에서도 잘 성장해 준 애들이 정말 자랑스러워요.”   


#. 가부키의 새로운 실험

2023년 조앤 대표의 가부키에는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며칠 전 부사장으로 영어가 부족한 이민 1세대 총셰프를 선임했다. 

 

“다들 놀래더라고요. 주류사회를 상대로 장사를 하려면 부사장이나 사장의 영어능력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죠. 데이빗 리가 운영할 때도 직원들과의 모든 회의는 영어로 했어요. 그런데, 지금 부사장이 된 분은 영어만 조금 안 될뿐 나머지는 다 돼는 사람이예요. 셰프인데다 숫자를 잘 알아 코스트를 줄일 줄 알고, 사람관리 잘하고 무엇보다 직원들로부터 존경까지 받고 있어요. 그렇다면 영어가 핸디캡이 될 수 없지요. 영어는 잘 하는 사람 뽑아서 딱 붙여줬어요.”  

 

가부키 운영도 권한과 책임을 확실히 위임했다.  부사장 아래로 3명의 디스트릭 매니저를 둬서 브랜치를 4개씩 나눠 관리하도록 했다. “경쟁을 통해 수익을 내고 그에 따른 인센티브를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거죠. 부사장은 사장인 저와 오너 프라핏을 쉐어할 수 있도록 할 겁니다. 데이빗은 자신이 다 끌어가는 스타일이었지만 저는 사람을 믿고 맡기려고 해요. 물론, 실적을 낼 수 있도록 채근하고 격려를 해야겠지요.”

 

스태프 숫자는 줄였지만 월급이나 보험혜택은 오히려 좋게 바꾼 것도 조앤 대표의 방침이다. “한마디로 일은 ‘빡세게’ 대신 돈은 여유있게 가져가자는 주의죠. 그렇게 해 보니, 일의 연속성도 생기고 오히려 매출이 오르더라구요. 일은 조금 많을 수 있지만 보수나 혜택은 동종업계 어디에도 뒤지지 않게 할 겁니다. 가부키에 15년 이상 일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고요.”  


#. 더 큰 꿈?

가부키는 3년여 전부터 한국의 청강문화산업대학교 푸드스쿨 졸업생들에게 인턴십을 제공하고 있다. 취업난을 겪는 한국의 청년들에게 취업과 경력개발에 도움을 주자는 차원이다. 또, 한국의 식당에서 일해 경력을 쌓았지만 구조적으로 창업에 어려움을 겪는 유능한 셰프들을 찾아 가부키에서 일하며 미국에서 창업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계획 중이다. 

 

"한국의 요리사들이 정말 일도 잘하고 능력도 출중해요. 그런데, 몇 년을 배워 창업을 하려고 하면 어려워들 해요. 그런 분위기가 아닌 거죠. 데이빗 말이 '한국에 정말 괜찮은 젊은 요리사들이 많다'는데, 그런 사람들을 발굴해서 기회를 주는 일, 그런 일에 우리 부부는 따로 아닌 하나가 될 것입니다." 


김문호 기자 mkim@chosun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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