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야기] 올바른 기준(基準)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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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야기] 올바른 기준(基準)이 필요하다

웹마스터

제이슨 송

뉴커버넌트 아카데미 교장 


심리학자들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 긍정적이고 따뜻하며 자랑스러운 기억보다 잘못과 실패와 상처가 더 많이 떠오른다고 한다. 맞는 말 같다.  


하지만 과거는 돌이킬 수 없다.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잠을 설치게 하는 기억과 생각에 묶여 살지 않으려면 그런 사건과 과정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깨달았는지 냉정히 파악한 뒤 교훈과 원리를 절 적용해 좀 더 효율적이고 향상된 삶을 살기로 계획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그것이 상책이다. 그래야 조여오는 압박감을 이겨내고 실수도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이럴 때 기준(基準)이 필요하다. 한자로 기준은 터 기(基), 준할 준(準)자인데, 견고한 표준 내지 잣대를 의미한다. 영어로는 스탠다드(standard)라 하며 고대에 사용했던 프랑스어 “standhard”, 즉 스탠드(stand)와 하드(hard)의 합성어로서 “한 곳에 꿋꿋이 서 있다”, “쓰러지지 않고 똑 바로 서 있다” 그리고 “깃발이 기울지 않게 세운다”란 뜻이다. 


군대의 집결지 역할을 하는 깃발, 금방 눈에 띄는 군기를 모두가 볼 수 있게 세우는 것을 스탠다드라 했다. 특히 계곡이나 협곡같은 궁지에 몰렸을 때 평지에 군기를 세우는 것을 “스탠다드를 세우다”라 했고, 그럴 때 군사가 아군의 깃발을 보고 모여 정렬한 뒤 더 잘 싸울 수 있었다. 


그런데, 줄을 똑바로 하거나 대오(隊伍; 여럿이 일정하게 늘어선 줄)를 정렬하려면 꼭 한 사람만 “기준”을 외쳐야 한다. 여러 사람이 각자 “기준! 기준!”을 외치며 이곳 저곳에 군기를 꽂는다면 어떻게 될까? 정렬은 불가능하고 혼돈만 일어날 것이다.


과거를 평가할 때도, 미래를 계획할 때도 올바른 기준이 필요하다. 기준이 삐뚤어졌거나 아예 없다면 삶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 기준 없이는 앞날을 계획할 수도 없고, 아무렇게나 막 살아도 잘 잘못을 가릴 수 없다. 두리뭉실하게 “열심히 살겠다, 최선을 다 하겠다”는 말은 별 의미가 없다. 마치 성적이 저조한 학생이 “새 학기에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런 말을 들을 때 교사는 답답하다. 무엇을 어떻게 잘 할 것인지, 어떤 기준을 적용해 자신을 평가하고 어떤 결과를 얻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를 추구하고 진도를 측정할 것인지 불투명 하기에 그렇다.  


현대사회는 기준이 침식돼 가고 있다. 그래서 갈등과 마찰이 더 많이 발생한다. 너무 당연한 것 아닌가? 기준 없이는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없고, 또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지 분별할 수 없다. 아래, 위, 좌, 우, 동서남북, 남과 여의 차이 등을 가려낼 수도 없다. 그릇된 기준, 그리고 일관성 없이 왔다리 갔다리 하는 기준은 혼란과 불안만 자아낸다. 기준이 아예 사라지면 무법시대가 될 것이다. 그렇기에 올바른 기준, 하나의 정통 기준이 필요하다. 그 기준이 있어야만 사회와 가정이 안정을 되찾을 수 있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각자의 양심을 기준으로 삼아선 안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자주하고, 변명과 핑계를 늘어놓고,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조성하려고 꾀를 부리는 게 영악한 인간의 본성이다. 그래서, 사람은 원래부터 정의나 공익을 추구하지 못한다. 남은 그렇게 해야 한다고 침을 튀기며 주장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래서 정통성과 권위를 토대로 한 기준이 존재해야 하며, 그래야 질서있는 관계와 가정과 사회를 형성할 수 있다.  


또 기준은 개인, 특정인물, 정치인, 또는 어떤 기관에게 맡길 수 없다. 이기적인 사람들이 모여 만든 단체나 집단이 어떻게 올바른 기준을 세워 추구할 수 있단 말인가? 집단의 경우 집단의 이익, 즉 관련된 사람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공익을 추구하는 척 한다. 정치인을 생각해 보면 금방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갈 것이다.


가장 정확하고 공평하고 올바른 기준은 성경 말씀, 신의 기준이다. 이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개인과 사회가 신의 기준에 따라 살면 공의와 정의가 실현된다. 


새해에는 그저 자신이 생각하기에 옳다고 느껴지는 도덕적인 언행을 하기로 작정하기보다 신본주의 사상, 정확한 스탠다드에 따라 살아보자. 그러면 2023년을 돌아볼 내년 말 쯤, 한 해를 훨씬 더 잘 살았음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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