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의 행복칼럼] 나를 지켜주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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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의 행복칼럼] 나를 지켜주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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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쉐어USA 대표


20여 년 전일이다. 미 8군 카투사(KATUSA) 군종목사였다. 어느 수요일, 대구에 있는 캠프 헨리(Camp Henry)로 출장을 가야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서울역으로 갔다. 너무 일찍 도착한 탓에 한 시간 남짓 기다려야했다. 사무실로 돌아갔다 오기는 애매한 시간이어서 역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기다리는 시간에 요기를 하기로 하고 빵과 우유를 사서 의자에 앉는데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었다. 노숙자 한 사람이 영어신문을 읽고 있었다. 영어신문을 읽는 노숙자라 호기심이 생겼다. 지나가는 척하며 다가가 보니 국내 기사가 아닌 미국인 칼럼리스트의 글을 진지하게 읽고 있었다.  

   

호기심이 생겨 빵과 우유를 사서 건네며 말을 걸었다. 놀랍게도 그는 명문대 영문학과 출신이었고, 불과 1년 전만해도 대기업 부장이었다. 회사에서 퇴직당한 그는 아내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못한 채 공원으로 출근했다. 그러다 한 여인을 만나 바람을 피웠고 아내에게 발각돼 거의 알몸으로 쫓겨났고 6개월 만에 노숙자 신세가 되었다. 

   

ROTC장교 출신이었던 그는 내 군복의 십자가를 보고 내가 군종목사란 것을 알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눈물로 얘기하던 그의 얘기를 눈물로 들었다. 마음이 너무 아파 가슴을 후벼파는 것 같았다. 기차를 거의 놓칠 뻔 했다. 그만큼 시간가는 줄 모른 채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주머니를 뒤져 얼마 되지 않은 내 용돈을 다 주었다. 그리고 용기를 내고 빨리 벗어나라고 권했다. 그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몇 번씩 말했다. 기차를 타기 위해 달려가는 내 등 뒤에 대고 “목사님! 감사합니다! 좋은 소식 전하겠습니다” 라며 울먹이던 그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한동안 서울역에 가서 그를 찾아보았다. 구석구석 뒤져도 그를 찾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그가 보이지 않는 것에 안도하면서 한편으로 그가 보이지 않아 걱정했다. 그의 연락처를 받아 놓지 못한 것을 후회하면서 삶이 회복되기를 기도했다. 지금도 서울역을 지나면 그가 생각난다. 

   

그가 스스로 고백한 그의 실수는 대략 세 가지였다. 자신의 외형적 실수는 실직을 알리지 못한 것이나 외로운 시절에 만난 여인과의 부적절한 만남이었다. 이 두 가지보다 더 뼈저린 실수는 가족들과 관계정립의 부실이었다. 그의 인생이 처참하게 무너질 때 그를 붙잡아 주는 가족이 아무도 없었단다. 

   

많은 사람들이 조기퇴직을 하고 적잖은 사람들이 외도를 한다. 그리고 다수가 이혼을 한다. 그렇다고 이런 사람들이 모두 노숙자가 되지 않는다. 이런 위기에서 삶을 지탱해 줄 끈들이 우리를 붙잡아 준다. 그런데 이런 줄이 끊어지면 무너진다. 그는 자신이 휘청거릴 때 자기를 붙잡아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보고 스스로 무너졌다며 울먹였다.  

   

모든 인생은 자기 삶을 지탱해 주는 관계의 끈이 있다. 보듬어 주는 가족, 나를 사랑하는 교회, 그리고 나를 수용하는 공동체가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이런 공동체들과 관계의 끈이 우리 삶을 지켜주는 안전벨트다. 한해가 저물어가는 분주한 시간에 삶을 지탱해 주는 관계(끈)의 소중함을 느끼며 귀한 이웃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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