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칼럼] 병원·약국·환자의 다른 약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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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칼럼] 병원·약국·환자의 다른 약 리스트

웹마스터

임영빈

연세메디컬클리닉

노년내과 전문의 



스탠포드시니어클리닉에 90세 남성환자가 본인의 약들을 한 노트카드에 적어서 정리해 가져온 것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약 이름들을 아는 것뿐만 아니라, 어떤 약은 어디에 쓰이고, 하루에 몇 번 복용하는지 이해하고, 예전에 어떻게 약들을 바꿔왔는지 확실히 기억하고 알려주었다. 


이런 습관을 언제부터 들이기 시작한 것이었나? 그가 80대부터 약을 정리하기 시작해서 이렇게 90대까지 잘 정리하고 있었을까? 아니었다. 은퇴 전에 회계를 본 경험을 토대로, 정리하는 습관이 있어 본격적으로 약을 복용하기 시작할 때인 50대 전후로 이런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 때부터 쌓이고 쌓인 약학 지식이 경험으로 남아 이 날까지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한국 어르신에게는 약 이름을 배우는 것이 버거운 것이 사실이다. 약의 영어 이름을 직역한 한국어로 부르니 생소하고 왠지 화학물질이라는 느낌 같을 것이다. 그러니, 자신에게 익숙한 방법으로 외우곤 하신다. 예를 들어 “길고 커다란 하얀색깔 약”, 또는 “작고 둥그런 핑그색 알약”이라고 부르며 외우신다. 하지만 색깔과 모양은 제약회사마다 다르게 제조할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외우는 방식은 위험할 수 있다. 



내가 복용하는 약들을 구태여 내가 알아야 하나? 전문 의학지식이 없는 내가 왜 알아야 할까? 그렇다면 자연적으로 다음 질문이 떠오를 것이다. 병원에 리스트가 있지 않나? 병원에서 의사가 처방을 하기 때문에 약 리스트가 물론 있다. 그리고 처방된 약들을 받는 쪽인 약국에서도 약 리스트가 존재한다. 또 하나 약 리스트가 존재하는데, 바로 그것은 환자가 실제 복용하는 약들 리스트다.



당연히 드는 생각은 ‘아니, 의사가 약을 처방하고, 약사가 약을 지어주고, 환자가 약을 받는데 무엇이 문제가 된다는 거지?’라는 질문이다. 이상적인 세상에는 이 세 가지 리스트가 일치한다. 하지만, 여러 약이 처방되고, 경우에 따라 처방이 바뀌니, 현실적으로 세가지 리스트가 언제나 일치하는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다. 뒤죽박죽 섞인 약들을 가지고 어떻게 복용해야 하는지 헷갈려 하거나 정작 중요한 약을 잊어버리는 경우를 매일 자주 경험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그럼 정리하면 되지 않나? 맞다, 그래서 복용약들을 정리하는 절차를 ‘약물조정’(Medication Reconcilliation)이라고 의료계에서 부르며 수시로 행한다. 하지만 정리를 하려는데 의사가 환자한테 “무슨 약을 복용하고 계시나요?”라고 물어볼 때 환자가 “네, 저는 로잘탄 50mg, 로수바스타틴 20mg, 탐슐로신 0.4mg은 하루에 한 번씩 복용하고 멧포민 500mg과 메토프롤롤 25mg은 하루에 두 번씩 복용합니다”라고 말 할 수 있는 환자가 얼마나 될까? 대부분 앞서 언급한 듯이 “길고 커다란 하얀색깔 약을 하루에 한 번 복용합니다”라고 얘기한다. 물론 생소한 단어들이고 발음까지 하기 어려우니 쉽게 와닿지 않는다. 



이런 약학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언어를 새로 배우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익숙하지 않아서 생소하게 들릴 뿐이지 조금만 터득하면 쉽게 눈에 들어올 것이다.    문의 (213) 381-3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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