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칼럼] 돈 말고, 아기 기저귀가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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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칼럼] 돈 말고, 아기 기저귀가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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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옥 (시인, 수필가, 나성영락교회 은퇴 권사)


어떤 만남은 예고 없이 다가와 마음을 멈춰 세운다. 겨울 저녁, 장본 것을 차에 싣고 돌아가려던 순간, 한 아기 엄마가 조심스레 내민 말 한마디가 그날의 공기를 바꾸어 놓았다.

“돈 말고… 아기 기저귀가 필요해요.” 작지만 떨리는 그 목소리는 오래 잊히지 않는 울림을 남겼다.

주말이면 우리는 손자와 함께 아들네 집 근처 ‘오리 공원’을 찾곤 한다. 호수 위를 미끄러지듯 떠다니는 물새들, 손자가 던지는 과자를 받아먹으려고 다가오는 오리들, 그 사이에서 깔깔거리는 네 살 손자의 웃음은 그곳을 언제나 작은 천국처럼 만들어준다.

남편의 건강이 좋지 않아 한동안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조금씩 기운을 되찾으며, “할아버지, 오리공원 놀이터 가요!” 손자의 전화에 다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날이 돌아왔다. 그 한마디 만으로도 마음 깊은 곳에 포근한 햇빛이 스며드는 듯했다.

오랜만의 가족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리는 한 대형마켓에 들렀다. 장난감을 새로 선물 받은 손자는 계산대에서 자기 장난감도 계산을 하자 세상을 다 얻은 얼굴로 뛰어다녔다.

그 작은 기쁨이 우리 모두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었다.

그때였다.

장본 것을 차에 싣고 있는데 한 아기 엄마가 유모차를 밀며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혹시… 아기 기저귀 좀 사주실 수 있나요?” 부끄러움을 무릎 쓰고 아기 엄마로서 용기를 낸 조용한 요청이었다.

며느리는 곧바로 지갑에서 돈을 꺼내 건넸다. 그러자 아기 엄마는 난처한 듯 웃으며 말했다.

“돈이 아니라… 기저귀가 필요해서요.”

아들과 며느리는 망설임 없이 그 아기 엄마를 데리고 다시 마켓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기저귀 한 상자를 들고 나오는 그들의 얼굴에는 작은 친절을 실천한 사람에게서만 볼 수 있는 밝고 따뜻한 빛이 떠올라 있었다.

돌아서는 아기엄마의 표정도 한결 밝아져 있었다. 힘겨운 생활 속에서도 아이를 키워내는 그 마음에

하나의 숨 쉴 틈이 생기기를 바랐다. 며느리는 안타까운 얼굴로 “그 아기 엄마 임신까지 한 상태 래요.” 우리는 이 겨울을 무사히 지나 새 생명을 맞이하는 계절이 조금은 더 따뜻하길 바랐다.

겨울은 가난한 이들에게 더더욱 추운 계절이다. 그래서인지 차갑고 어두운 이 계절에는 많은 사람들이 더 자주 서로에게 작은 빛이 된다. 누군가의 손이 되어주고, 누군가의 길 위에 불씨 하나 놓아주며 서로를 살려내는 따뜻한 미담도 많이 나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아들 내외의 얼굴에 빛나던 환한 미소를 떠올렸다. 주저함 없이 내민 그 따뜻함이 누군가의 겨울을 조금 덜 춥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우리가 오리 공원에서 뛰노는 손자의 웃음 속에 작은 천국을 느끼는 동안에도,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힘겨운 시간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전해지는 작은 도움 하나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을 버티게 하는 온기가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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