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감성 사이] 인공지능과 예술, 그리고 한국문화의 확장
김미향
오클렘그룹 대표
얼마 전 뉴욕에서 열린 ‘Art of Noise’ 전시는 음악과 디자인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왔는지를 보여주며 큰 화제를 모았다. 오래된 공연 포스터, 아날로그 음향장비, 그리고 새로운 디지털 설치 작품들이 한 공간에 놓이며 음악이 단순히 소리만이 아닌 시각과 공간의 경험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이 소식은 최근 몇 년간 세계 무대에서 펼쳐진 한국 공연들을 떠올리게 한다. 블랙핑크의 코첼라 무대, BTS의 UN 공연은 음악을 넘어선 종합예술로 기록되었다. 조명·패션·무대연출·메시지까지 결합한 이러한 무대는 단순한 콘서트가 아니라 문화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오늘날 예술계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는 인공지능(AI)이다. AI가 만든 음악과 디자인은 빠른 속도로 보급되고 있다. 일부 공연장은 인간 예술가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AI 제작 포스터 사용을 금지하기도 한다. 예술의 본질이 인간의 감정과 호흡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움직임이다. 그러나 동시에 AI는 무대조명 설계, 안무 시뮬레이션, 음향믹싱 등에서 창작을 보조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한국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독자적 해석을 제시해 왔다. K-팝은 기술과 예술을 가장 적극적으로 결합한 장르로, AI·메타버스·실시간 소통을 공연무대에 자연스럽게 도입했다. 에스파가 가상 아바타와 함께 무대를 꾸미고, BTS가 온라인 콘서트에서 수백만 명과 동시에 연결된 장면은 단순한 음악공연을 넘어선 새로운 문화 경험이었다. 이는 AI와 인간 예술이 대립이 아닌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자, 세계가 주목하는 방향성이기도 하다.
문화 디자인과 음악의 융합 또한 중요한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전통적으로 음악은 귀로 듣는 예술로 여겨졌지만, 오늘날 관객은 무대에서의 시각적 요소, 공간의 분위기, 함께 호흡하는 집단적 경험까지 포함해 음악을 인식한다. 한국 공연은 이러한 다층적 경험을 선도적으로 실현해왔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국악과 미디어 아트의 결합 전시, 국립극장의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무대는 관객에게 새로운 감각적 몰입을 제공한다. 이는 한국이 단순히 세계 예술의 추세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하는 문화적 거점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음악산업의 구조변화에서도 한국은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스트리밍의 확산으로 음반 판매 중심의 수익모델은 이미 한계를 드러냈다. 이에 대응해 한국은 팬덤을 기반으로 한 구독형 경제모델을 정착시켰다. 하이브의 위버스, YG와 JYP의 팬 커뮤니티 플랫폼은 단순한 음원 소비를 넘어 팬과 아티스트가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굿즈, 온라인 팬미팅, 실시간 라이브 공연, NFT와 메타버스까지 결합한 이 모델은 이미 미국과 유럽 음악계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한국은 문화 콘텐츠뿐 아니라 산업구조 혁신 자체를 수출하는 단계에 올라섰다.
이러한 흐름은 중요한 시사점을 담고 있다.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이 창작 환경을 바꾸고 있는 지금, 한국은 수동적 소비자가 아니라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주도적 위치에 서 있다. 공연 무대에서의 실험, 전통과 현대의 융합, 팬덤 중심의 산업 모델은 모두 한국이 세계 문화예술을 한 단계 격상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술의 본질은 인간적 감정과 공동체적 경험에 있다. 동시에 기술은 그 경험을 확장하고 세계와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도구로 기능한다. 한국은 이 두 가지 요소를 균형있게 결합해 왔다.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감성과 기술을 아우르는 융합적 능력이 한국 문화예술의 가장 큰 강점이다. 앞으로도 이러한 특성이 유지된다면, 한국은 세계 예술의 변화를 단순히 따라가는 수준을 넘어, 그 변화를 주도하고 격상시키는 핵심 축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