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수영의 마음산책] 극단적인 정치 양극화, 그저 제도 탓일까
권수영
연세대 교수
한국상담진흥협회 이사장
한국의 많은 정치평론가들은 한국과 미국의 양당 정치구조, 혹은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이 두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특히, 극단적인 분열을 초래한 탄핵정국을 계기로, 이제는 한국의 대통령제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정치제도나 국가시스템이 권력투쟁을 조장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국민들이 이러한 극단적인 갈등과 분열을 경험하는 원인을 단순히 정치제도에서만 찾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해 볼 필요가 있다.
필자에게 한국과 미국에 두드러진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양극화 현상은 이제는 세계적인 현상처럼 보인다. 만약 이를 단순히 양당제나 대통령제의 결과로만 해석한다면, 글로벌 차원에서 나타나는 양극화의 본질을 설명하기 어렵다. 현대사회에서 인터넷이 모든 것을 연결하는 시대적 흐름을 논할 때, 우리는 ‘디지털 디바이드’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이는 디지털 기술을 능숙하게 활용하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 간의 격차를 의미한다. 오늘날 우리는 모두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실상은 디지털 인류와 아날로그 인류가 공존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스스로 디지털 인류인지 되묻곤 한다. 한국의 식당에서 종업원을 기다리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테이블에 부착된 키오스크로 주문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직원들은 물을 가져다 주지만, 직접 주문을 받으라고 요청하면 거절당하기 일쑤다. 이는 우리가 일상에서 체감하는 디지털 디바이드의 한 단면이다. 편리함을 위해 도입된 디지털 기술이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이는 아날로그 인류라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기성세대 중에서도 디지털 인류로 편입하려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필자의 모친 역시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SNS를 능숙하게 활용하며 정보를 얻고 소통하는 방식에 익숙하다. 때로는 필자가 놀랄 정도로 빠르게 변화를 받아들이신다. 하지만 디지털 인류에게는 우리가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함정이 존재한다. 그것이 바로 ‘필터 버블(filter bubble)’과 ‘에코 챔버(echo chamber)’ 현상이다. SNS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관심사와 취향을 분석하여 유사한 정보만을 지속적으로 노출시킨다. 이로 인해 디지털 인류는 다양한 관점을 접할 기회를 잃고, 자신의 의견만 반복적으로 강화하는 에코 챔버 속에 갇히게 된다.
오늘날 사회적 양극화와 갈등이 더욱 심화된 배경에도 이러한 디지털 환경이 자리하고 있다. 극단적인 정치적 대립이 단순히 제도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가 쉴 새 없이 접하는 편향된 정보가 우리의 사고를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는 데서 비롯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특히, 극단적인 극우주의가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 전역으로 급속히 확산되는 현상은 단순히 경제적 불평등이나 이민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디지털 인류가 생성하는 필터 버블과 에코 챔버의 영향력을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디지털 환경은 권위주의적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에게 더없이 유리한 기회를 제공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에도 디지털 인류의 지지가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에코 챔버에 갇힌 국민들은 기존의 정치 시스템이나 언론을 불신하게 되며, 자신이 믿고 싶은 정보만을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해진다. 더 큰 문제는 정치 지도자들 역시 이러한 현상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처럼,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 또한 전통적인 언론을 우회하며 소셜미디어를 통해 지지층과 직접 소통하며 세를 결집하는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다. 가짜 뉴스, 차별과 혐오를 확산시키는 정보의 진원지가 다름아닌 에코 챔버가 되어가는 것이다.
정치제도의 개혁도 중요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가짐이다. 우리가 얼마나 다양한 시각을 수용하고 열린 자세로 소통하느냐에 따라 사회적 양극화의 방향이 결정될 것이다. 필터 버블 속에서 벗어나 균형 잡힌 정보를 접하려는 노력이야말로, 지금 우리 사회, 아니 온 인류가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변화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