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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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등]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웹마스터

이보영 

전 한진해운 미주지역본부장 


옛날 어느 농촌의 부잣집 주인은 새벽 닭이 울면 바로 하인들을 깨워 일을 시켰다. 농사 일이라는 게 어디 끝이 있으랴. 하인들은 동이 트는 새벽부터 해가 질녁까지, 이른 봄부터 늦가을 추수 때까지 농사 일을 해야 했다. 어느 날 저녁, 하인들은 늦잠을 자려고 꾀를 냈다. 집안에 있는 수탉들의 모가지를 비틀어 놓고 느긋하게 잠을 청했다. 다음 날 닭 울음은 없었지만 어김없이 새벽 동이 트이며 세상은 밝아왔다. 주인은 하인들의 잔꾀를 알게 되었고, 하인들에게 더 고되게 밤에도 일을 시켰다. 하인들은 결국 자기 꾀에 넘어가 중노동에, 주종(主從) 관계의 신뢰까지 깨지는 마음 고생을 겪게 되었다.


이솝 우화(Aesop’s Fables)에 나오는 이야기다. 고 김영삼 대통령이 유신정권 때 가택연금을 당하자 그는 성명서에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를 인용해 발표하자 세간(世間)에 화제가 되었다.

“비록 강제로 가택연금 상태로 가두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자유롭게 풀려 날 것이라”는 뜻이다.

새벽 닭 울음은 기상(Wake up)을 알리는 알람(Alarm)이었고, 새날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였다.

“새벽 닭이 우니 새해의 복 문이 열리고, 개가 짖으니 지난해의 재앙이 사라진다” 는 덕담도 있다.


손흥민 축구선수가 소속된 영국의 ‘토트넘 훗스퍼(Tottenham Hotspur)’ 팀의 상징(Emblem)은 축구공 위에

검은 수탉 한 마리가 서 있다. 이 수탉의 발목엔 ‘박차(拍車: spur)’가 달려 있다. 이는 ‘싸움닭(Fighting

Cock)’을 의미한다. 박차(Spur)는 카우보이들의 부츠(Boots: 장화구두) 뒷축에 달려있는 작은 금속장식으로

말의 옆구리에 신호를 보내 빨리 달리게 독촉하는 장치이다. 토트넘 훗스퍼의 엠블럼은 물러서지 않는 싸움닭처럼 공격적인 축구를 지향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닭(Chicken)에게는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두 대의 자동차가 마주 보고 달려서 충돌하면 두 운전자가 죽든가, 아니면 큰 중상을 입을 것이다. 물론 두 대의 자동차도 폭발하거나 박살이 날 것이다.

영국사람들은 이런 무모한 경기를 ‘치킨게임(Chicken Game)’ 이라 한다. 그런데 겁에 질린자가 갑자기

방향을 바꾸면 충돌사고는 면한다. 이때 방향을 틀어 달아 난 겁쟁이를 ‘치킨(Chicken)’ 이라 부른다.


이태리 중북부의 토스카나(Toscana)주엔 두 도시, 피렌체(Firenze)와 시에나(Siena)가 인접해 있다. 고대에 두 도시는 ‘피렌체성’과 ‘시에나성’ 의 도시국가로 상호 경쟁관계에 있었으며, 영토분쟁으로 전쟁이

빈발해 경제가 낙후되고 백성들의 희생도 점차 늘어갔다. 결국 이들은 평화협정을 맺기로 했다. 문제는 양 도시의 영토 국경선을 어떻게 정하느냐가 이슈였다. 


이리하여 짜낸 묘안이 새해 첫날 새벽에 첫닭이 울 때, 양쪽 나라에서 각각 말을 탄 기병이 출발하여 만나는 지점을 국경으로 정하기로 했다. 기병의 출발은 상대국에서 파견된 감독이 지켜보기로 했다. ‘시에나성’은 크고 힘센 흰 수탉을 선정해 잘 먹였다. 그래야 새벽 일찍 우렁차게 울어 댈 것으로 여겼다.

한편 ‘피렌체성’은 작고 검은 수탉을 선정해 먹이를 조금씩 주었다. 배가 고파야 새벽 일찍 깨어나서 스스로 먹이를 찾도록 훈련시켰다.


드디어 새해 첫날이 되었다. 배가 고픈 검은 수탉은 이른 새벽부터 비명에 가까운 울음을 토해냈다. 피렌체의 기병은 시에나의 감독이 지켜보는 가운데 검은 수탉의 새벽 울음소리를 듣자 달리기 시작했다.

약 40여 km쯤 달려갔을 때, 시에나의 기병은 겨우 10여 km를 달려와 마주쳤다. 이 결과 피렌체는 시에나보다 훨씬 넓은 면적의 영토를 차지하는 ‘토스카나주’의 최대 도시가 되었다. 새해 벽두의 닭 울음소리 대결 결과는 피렌체의 판단이 적중했다.


피렌체에서 생산되는 ‘끼안띠 크라시코 와인(Chianti Wine)’의 상표 라벨에는 검은 닭이 그려 져 있다.

이 얘기는 새해의 출발을 맞이하는 우리에게 어떻게 지혜를 동원해야 하는가에 대한 교훈이 되고 있다.

새해는 피렌체의 기병처럼 '나'와 '너' 사이의 영역을 더 넓히려고 달려 나가는 출발점이다. 똑같은 나날들의 연속인데, ‘새해’라는 말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뭔가 마음의 각오, 소망, 목표, 새로운 출발, 도전, 시작 등등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삶으로 향하려는 자기 변화의 출발점으로 삼으려는 마음의 다짐을 새기는 시간이 곧 새해일 것이다.


정부는 새해 국정 계획을 발표하고, 기업은 년간 목표수익 실천을 다짐하고, 가정은 새해 가훈을 세운다.

인생사는 늘 이상과 실천이 서로 얽혀서, 더 높고 더 넓은 현실을 만들면서 발전하고 성장해 왔다.

“높히 나는 새만이 더 멀리 볼 수 있다”는 ‘리차드 바크’의 말처럼, 자기의 영역과 유익의 추구도 좋지만, 이웃을 살피며 나누는 사람이 더 높이 날아 올라 멀리 볼 수 있는 인생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새해에는 더 높히 날아올라 더 멀리 바라보는 인생을 장만해 보자.


가톨릭 시인, 구상 선생의 시 '새해' 이다.

새해 새 아침이 따로 있다더냐/ (중략) / 네가 새로워지지 않으면/ 결코 새날을 새날로 맞을 수 없고/

네 마음안의 천진을 꽃피워야/ 비로소 새해를 새해로 살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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