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기] "강에서 새롭게 만난 미국 역사, 뭉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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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행기] "강에서 새롭게 만난 미국 역사, 뭉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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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시피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10개의 주. 유람선 투어를 하며 강변에서 만난 4명의 베트남전쟁 참전용사가 기념비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디어회사의 모형 트랙터. 주문받기 전에 대량 생산해 놓은 쟁기. 미네소타주 와바샤에 있는 국립독수리연구센터에서 만난 국조 '흰머리수리'.  미니애폴리스 다운타운에서 만난 세계적 만화가 찰스 슐츠의 만화 캐릭터 찰리 브라운의 친구 슈뢰더(왼쪽)가 피아노를 치는 동상. 미네소타가 배출한 만화가 찰스 슐츠와 노벨 문학상을 탄 가수 봅 딜런의 벽화. (위에서부터)   


모니카 류 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 미시시피강 유람선 투어<2>


미시시피강을 따라 형성된 10개의 주

청교도·퀘이커 그룹 이주한 낙농지역

강 북쪽 위스콘신주의 미항 라크로스 

베트남전 참전용사들 만나 "감사"인사 

일리노이 몰린의 농기계회사 '존 디어'

독수리연구센터서 본 국조 '흰머리수리'

유명 대학 많은 학구도시 미니애폴리스

만화가 찰스 슐츠,노벨상 가수 봅 딜런


미시시피강을 끼고 있는 낙농지역은 1830년대에는 노르웨이 출신 이민자들이 선호한 지역이라 한다. 1600년대 미국이 형성되던 초창기에는, 영국에서 보스턴, 필라델피아 등 ‘뉴월드’에 청교도와 퀘이커 두 그룹이 이주하였다. 1830년대에도 노르웨이에서 퀘이커 신자들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 미시시피강을 끼고 있는 주(州)들로 이주하였다. 그들의 대부분은 낙농업자이었다고 한다. 지도에서 미시시피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10개의 주(州)를 볼 수 있다.  


퀘이커 신자들은 교회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이루고, 여성들은 성실한 가정생활뿐 아니라 자녀교육에도 적극적이었고, 사교적이어서 서로 잘 어울렸다고 한다. 퀘이커 공동체는 비폭력주의, 남녀평등, 청빈과 정직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다. 종교단체로는 처음으로 1947년에 노벨상을 받았다. 자신들의 문화유산을 전시하는 박물관, 도서관, 역대 서류 보관소, 나름대로 전통적 빌딩이 있음을 자랑한다. 아이오와주 베스터하임박물관에서 그들의 역사를 읽을 수 있다.


미시시피강을 끼고 북상하면서, 북동쪽에 있는 위스콘신주의 라크로스 항구에 잠시 머물렀다. 이 항구는 어느 곳보다도 아름다웠다. 항구의 다운타운에는 그들의 역사를 잘 나타내는 준수한 빌딩들이 많이 있었다. 빌딩 앞에는 노상 레스토랑들이 한가하게 자리하고 있고, 몇몇 손님들은 여유롭게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강변에서 중년은 넘어선 것처럼 보이는 네 명의 참전용사들을 만났다. 그들은 강가에 세워져 있는 모뉴먼트 주위에서 담소하고 있었다. 모뉴먼트의 꼭대기에는 날개를 편 미국의 국조(國鳥) 독수리가 자리하고 있고, 그 밑에는 청동으로 조각한 반쯤 펼쳐진 형태의 성조기가 기둥 중간을 감싸안고 있었다. 제일 하단의 받침대는 육각형의 까만 대리석으로, 미국 육군 안장이 새겨져 있었다. 안장의 하단 받침대의 정면 얼굴에는 ‘(나라)를 위하여 헌신한 모든 분을 기리며’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한국 전쟁에 참전하시었을 나이로는 보이지 않는데, 어느 전쟁에 참전하시었나요?” 하고 물어보았다. 그들은 환히 웃는 얼굴로 반가워하면서 “베트남입니다”라고 답하였다. 가끔 동료 전우들을 그곳에서 만난다고 했다. “전쟁에서 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했더니, “저희도 감사하지요!” 하고 답하였다. 나는 한국 사람이고, 나의 큰오빠가 한국 전쟁에서 20대에 전사했다는 이야기도 해 주었다. 사진을 찍어도 좋다고 해서, 한 장은 네 사람만, 또 다른 한 장은 남편도 포함해서 함께 찍어서 간직하고, 카피본을 그중 한 분에게 전송했다. 여기에 올린 사진은 네 분 참전용사들의 모습이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전쟁의 흔적이 없는 곳은 없었다. 국가를 위해 싸우다가 세상을 하직한 젊은 망자(亡者)들을 기리는 모뉴먼트들을 보았다. 모든 모뉴먼트는 젊은 그들의 이야기를 함축(含蓄)하여 가슴 깊이 안고, 높디높은 하늘로 젊은이들의 영을 올리고 있는 듯했다.   


위스콘신주와 남쪽으로 인접한 일리노이주에는 몰린(Moline) 이라는 시(巿) 가 있다. 농부이며 대장장이였던 존 디어(1804-1886 )가 농기구를 현대식으로 개발한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원래 동북부 버몬트주(州) 출신이었던 그는 서쪽으로 이동하여 중부 일리노이에 정착하였다. 10년 후에 둔탁한 철이나 나무로 만들어서 쓰던 재래식 삽을 스테인리스스틸 갈퀴(쇠스랑)와 삽으로 진화(進化)시킨다. 그의 후손들은 이 농기구 발전 아이디어를 더 살려서, 농산물 대량 생산에 필수인 트랙터를 개발하고, 자연스럽게 농업을 기업화하였다. 적극적인 ‘마케팅’ 도입과 경리부서의 분리 등으로 단단한 기업화 과정의 초석을 깔았다. 


회사가 이렇게 될 때까지 디어 가족의 삼대가 활약했다. 이 회사의 이름, 디어(Deere)는 동물 사슴과 발음이 같은데, 끝에 ‘e’가 붙는다. 사슴과 관계 없는 디어 회사는 껑충 뛰어오르는 노란 사슴의 모습을 상표로 쓴다. 2018년 포춘(Fortune) 500에 미국 최대의 주식회사 중의 하나로 등재되었다. 삼 세대 전의 농부는 아이디어를 갖고 쉼 없는 연구와 실험 끝에 새로운 농기구를 만들었고. 그 후손들은 디젤, 개솔린 같은 에너지 자원을 이용하여 능률적인 농업을 할 수 있는 농기계를 개발하였으며, 삼대 후손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마케팅’해서 세상에 알렸다. 그리고 그들은 부(富)를 축적할 수 있었다. ‘주문배수’ 방정식에서 벗어나서, 미리 대량으로 생산을 해 놓고, 주문이 들어오면 시간을 끌지 않고 즉시 배달하는 방식을 사용했다고 한다. 요즘 우리에게 익숙한 아마존 사업방식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그러한 상업 수단은 생소했었다. 이들의 가족사는 나 같이 평범한 의사가 병원 밖 세상을 볼 수 있게 유도한다. 그리고 생각하고 배우게 한다.

                    

미니애폴리스로 들어가기 전에 도심지를 좀 벗어나서, 독수리 연구센터에 먼저 들렀다. 이 나라의 국조(國鳥)가 독수리이다 보니, 리서치센터가 있을 법도 하다. 독수리 연구센터에서는 한 쪽 눈이 장님인 ‘흰머리수리(Bald Eagle)’를 거두고 있었다. ‘bald’란 대머리라는 뜻인데, 이 경우는 머리털이 희어서 그리 부른다. 다른 한 마리의 독수리는 날갯죽지가 잘려서 날지 못한다고 했다. 이 센터에서 십여 년을 살고 있었다. 


여담이지만, 벤저민 프랭클린은 이 새가 ‘도덕성이 없는 새’, 비겁한 새라고 국조로 만드는 것에 반대하였다고 한다. 250년이 지난 2024년에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으로 국조로 공식화되었다. 참고로 한국은 까치, 일본은 꿩, 프랑스는 수탉이 각 나라를 상징하는 새들이다.


미네소타주(州)의 미니애폴리스시(巿)는 내가 남쪽에서 들렸던 어느 도시들보다 학구적인 인상을 풍기었다. 우수한 대학들이 많이 있기 때문일 수 있겠고, 고교 때 수석자리를 놓치지 않았던 수재 동창 친구가 미니애폴리스에 살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붉은 벽돌로 된 건물들 사이사이에는 거대하고 반듯하게 잘 지어진 화강암 빌딩들이 서 있었다. 미니애폴리스시에서 제일 높은 곳에 하느님이 계셔야 한다고 대성당을 그 지역의 제일 높은 언덕에 지었다고 한다. 종각과 십자가가 대성당의 제일 높은 곳에 서서 아픈 인생살이, 피 흘린 크고 작은 전쟁, 염원하는 평화의 불가사의를 등에 업고, 고단한 하루를 지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인간네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미네소타에는 자랑할 만한 유명인들이 몇 명 있다. 그중에 유명 캐릭터 찰리 브라운을 탄생시켜 세계적인 만화가(漫畫家)가 된 찰스 슐츠(1922-2000)와 노벨 문학상을 받은 봅 딜런(1941- )을 들 수 있다. 찰스 슐츠는 독일과 노르웨이 계통의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고교시절 동급생들은 그의 그림을 졸업앨범에 뽑아주지 않았다고 한다. 2차 대전 때 출전하여 유럽에서 복무한 적도 있다. 미니애폴리스 다운타운에는 여기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그의 만화 캐릭터인 찰리 브라운의 친구 슈뢰더가 피아노를 치고 있는 동상이 있다. 피아노 건너편에서 루시가 땅에 배를 깔고 얼굴을 맞대고 열심히 참견하고 있다. 아이들을 의미하는 뜻에서 동상들을 작게 만든 것 같다. 열 발자국 정도 가면, 라이너스 밴 펠트(Linus van Pelt)인지, 찰리 브라운인지 스누피를 무릎에 앉히고 잔디에 앉아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동상도 있다. 내가 이 캐랙터들의 이름을 혼동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루저(looser)’인 찰리 브라운이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이 75년 전, 찰리 브라운 만화가 처음으로 발표된 날이라고 한다. 


미네소타에서 태어난 봅 딜런은 작곡가, 가수, 화가, 그리고 문인으로 알려진 다재다능한 사람이다. 그의 창의적이고 왕성한 작품활동과 내용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으리 만큼 특수하였던 것 같다. 미니애폴리스/세인트 폴의 중심가를 떠나 외각으로 드라이브해서 나가다 보면 그들이 자랑하는 봅 딜런의 젊었던 시절과 지금의 모습이 그려진 벽화를 볼 수 있다. 유대인 혈통인 그는 한때 기독교로 개종하여 성가를 작곡하기도 했다. 그가 2016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되었을 때 수상 소감을 미루고, 한동안 침묵했던 것이 큰 화제가 되었다. 왜 그랬는지 나도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어떻든 그는 규정된 시일 안에, 요구되는 연설을 했고, 90만달러 정도의 상금을 받았다. 


이 여행에서, 노벨상을 받은 하나의 단체와 노벨상을 받은 한 개인에 대해서 알게 되어 이를 숙고(熟考)해 보았다. 그리고 농부에서 대장장이로 탈바꿈 할 수 있었던 사람과 그의 후손들의 업적은 어떤가! 그들은 조상이 했던 것처럼, 농기구 발전에 몰두하고, 트랙터를 만들었다. 그들의 협조자들은 그 기술을 기업화 할 수 있었다. 이 신화같은 이야기는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네에게 가보지 않은 길을 택하여야 할 때, 지혜와 용기를 가지라고 말한다. 그들의 성공사의 진정한 내막은 밖에서 읽을 수 없지만, 그것이 단순히 DNA뿐 아니라, 환경적인 요소까지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가정해 보니 왠지 의미가 더 깊어 보인다. 크든 작든, 인류애의 실천에 초석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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