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시니어] “청춘을 바쳤던 전쟁의 기억들 안고 살아가”
홍석관 6.25 참전 유공자는 101세 최고령이지만 아직도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보청기를 낀 것 외에는 건강한 삶을 유지하고 있다. / 이훈구 기자
101세 홍석관 예비역 육군 대위
남가주 최고령 6.25 참전용사로 활동
남가주 6.25 참전 유공자 중 최고령인 홍석관 예비역 육군대위(101). 1925년생이니 한세기를 넘게 살고 계신다. 100세가 넘은 고령의 나이이지만 귀에 보청기를 착용한 것 외에는 건강해 보이신다. 살아 있었다면 할리우드의 명배우 폴 뉴먼이 동갑내기라는 홍석관 옹은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몸으로 이겨낸 주인공이기도 하다. 6.25 사변 발발 이듬해인 1951년 육군종합학교 24기로 입교하여 소위로 임관 후 7사단 5연대 1소대 수색대 소대장을 맡았다.
그의 부대는 강원도 양구 지역에 투입되어 수많은 전투현장을 경험했다. 강원도 양구 지역은 6.25 사변 중 가장 치열한 격전지였던 곳이었다. 도솔산지구전투, 펀치볼지구 전투, 가칠봉지구 전투, 피의 능선전투, 단장의 능선전투, 백석산지구 전투 등 숱한 전투가 벌어졌고 생과 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통해 초창기에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가장 절박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가 극한 전투의 상황을 경험하면서 있었던 일화 중 하나다. 양구지역에 투입되어 수색정찰을 벌이던 중 어떤 사람에게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질문을 하자 대뜸 고개만 돌리며 “몰라요”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분명 고개를 돌린 쪽을 보라는 신호 같았다. 직감적으로 그 방향으로 가 보니 커다란 타작마당이 강강수월래를 해도 될 만큼 넓은 공간이었다고. 이미 인민군들은 도주한 이후였고 사병들과 곡괭이와 삽을 갖고 와 파 보니 인천상륙작전 이후 땅을 파 중화기들을 묻고 철수한 것이었다. 그 양이 얼마나 많던지 중대장이 트럭 4대 분량이라고 보고할 정도였으나 실제로는 그 이상이었고 7사단 창설 이래 가장 큰 전과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훈장 상신에 관심도 없었고 당시의 전황상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매일 고지의 주인이 바뀌는 상황에서 인민군들이 잠입해와 서류들을 훔쳐가는 일도 비일비재했던 것이다. 당연히 전과가 남아 있지 않은 경우가 허다했고 우선은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에 전공이 묻히고 말았다. 종전 후에는 육군고급부관학교에서 학술부장을 하면서 여군들이나 통역병, 속기병들을 교육하였다.
#. 한인봉사회와 안마태신부
그의 운명을 바꿔 놓은 것은 성공회 소속 안마태 신부가 설립한 ‘한인봉사회’였다. 안마태 신부와 함께 마약, 술에 관한 강의를 했으며 이 인연은 미국으로 이민으로 까지 이어지게 된다. 1975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교구의 요청으로 시작한 한인 이민 사회를 위한 사회사업 및 선교, ‘한인봉사회’의 조직 확대 역시 이에 대한 연장선으로 그는 이 단체를 통해 영주권을 받을 수 있었다. 서울대 사범대 출신의 그는 특히 심리학을 전공한 까닭에 상담을 진행하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한인봉사회’ 덕분에 일본과 미국의 산업시찰의 기회가 많았고 자녀들이 무엇보다도 미국에 오고 싶어 했으므로 어려운 과정들을 하나 하나 극복해 나가면서 미국생활의 정착을 잘 해나갔는데 아들이 지금 목사가 되어 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다.
#. 100세 건강의 비결은 ‘바나나’
101세인 그는 규칙적인 생활의 달인이다. 또한 매일 윌셔양로보건센터에 간다. 단체생활 역시 100세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아침 5시에 기상하면 곧바로 스트레칭 후 바나나를 먹는다. 바나나에는 탄수화물이 25% 들어있고 비타민 A와 C가 풍부해 눈 건강과 우리 몸의 저항력을 높이는데 도움을 준다. 또 잘 익은 바나나는 펙틴이라는 식이섬유가 들어 있어 장의 기능을 활발하게 해줘 변비 예방에 효능도 있다. 노년에 입맛이 없더라도 바나나를 챙겨먹고 저녁은 단식을 한다. 보건센터에서 매일 ‘빙고게임’을 하고 있기 때문에 치매 예방은 확실하고 무엇보다도 햇볕을 자주 쐰다. 100세가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그는 바나나와 저녁 단식과 햇볕 쐬기를 가장 중요한 비결로 꼽을 정도. 청춘을 바쳤던 전쟁의 기억은 그럼에도 잊혀지지 않아 월 1회 전우들과 만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그는 오늘도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훈구기자 la@chosundaily.com